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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대통령의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인가
이수근   |  2005-11-23 08:00:59  |  조회 2454 인쇄하기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5월 연세대학교 리더십센터 초청 특강에서 “어린 시절의 최대 관심사가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고 밝혔습니다. 그는 “멋지게 보람 있게 가치 있게 살기 이전에 삶에 대한 불안 없이 살고 싶었습니다”며 “시대가 여러분과 좀 달라서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것보다 현실적으로 먹고 사는 것이 중요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노 대통령은 자신의 체험을 갖고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증언을 했습니다. 궁핍으로부터의 탈출이 가치 있는 그 어떤 것보다 상위의 개념이자 실천목표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지금의 학생들과는 시대가 달랐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산업화를 몸으로 겪었던 세대의 한결같은 관심사였습니다. 궁핍으로부터 탈출이 그 시대의 절대 화두였습니다. 그 시대를 살았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궁핍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혼신을 다해 일을 하였습니다. 노 대통령도 삶에 대한 불안, 즉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불안에서 벗어나서야 ‘가치 있는 삶’으로 인권변호사의 길을 걸었던 것입니다. 한 개인과 마찬가지로 국가도 같은 경로를 밟았다는 것을 노 대통령은 왜 젊은이들에게 부연해 설명하지 않았는지 아쉽습니다.

우리나라는 절대빈곤 문제를 해결하자 민주주의의 도정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절대빈곤의 시대를 벗어나기 위한 국가적 총동원체제에서 많은 흠을 남겼던 것도 사실입니다.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있었고, 흠을 알고도 불가피하게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습니다. 민주화 시대에 그런 흠을 바로잡고 전진하는 것은 자연스런 흐름일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사실을 밝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오늘과 내일의 생생한 교훈이 될 것입니다. 그런 작업이 지난 시대를 단죄하는, 그것도 시효가 지난 것을 억지로 부관참시 하는 듯한 그러한 전제에서 출발해선 안됩니다.

민주화된 시대의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에서 무차별적인 도청이 이루어진 실례를 보더라도 그렇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이 재임 중 안기부나 국정원에 도청하라고 지시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두 분 모두 평생 도청의 피해자여서 도청 금지 엄명을 여러 차례 지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밑에선 도청이 이루어졌습니다. 그것이 국가의 구조입니다.

도청은 없다던 그 시절 국무총리는 집무실에서 텔레비전의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긴한 대화나 전화통화를 했습니다. 청와대 일부 비서관들은 사무실의 전화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휴대전화는 절대 도청할 수 없다고 단언한 그 시점에 정부와 정치권의 요인들은 타인 명의의 휴대전화 서너 개를 갖고 다니기 일쑤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이 최근 허탈해 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가를 움직이는 구조에는 그런 일이 알게 모르게 있게 마련입니다. 그런 것이 드러나면 적법한 절차 내에서 문제를 해결하면 됩니다. 그것이 역사의 진보를 담보하는 것입니다.

국정원 도청 문제는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고영구 원장 시절의 국정원은 과거사 진상규명 과제를 선정, 규명작업을 벌였습니다. 내외 인사로 구성된 위원회는 지금도 국정원의 과거사를 캐고 있습니다. 물론 도청문제는 해당사안이 아니었습니다. 도청문제를 몰라서 규명 작업에 올리지 않았을까요. 김대중 정부의 도청문제를 캐면 참여정부의
밑동이 드러나기 때문에 피했을 것입니다. 엉뚱하게도 다른 쪽에서 이 문제가 불거지자 검찰이 손을 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역사는 이런 것입니다. 그래서 또 전진하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시대가 달랐습니다”라고 말하면서 그 달랐던 시대의 문제를 현재의 잣대로 엄격하게 재단하려고 전력투구 하는 참여정부의 과거사 캐기는 여간 역설적이지 않습니다. 미래의 교훈을 삼기 위한 것이라면 정부가 보유한 방대한 자료를 학계에 공개하여 연구토록 하는 것이 적실한 한 방법이 아닐까요. 연구비도 넉넉하게 조성해 준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개발연대의 세대와 민주화 세대 간의 세력 싸움, 정권을 놓고 건곤일척 다투는 여야 세력간 추악한 다툼으로는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민주화가 궤도에 올랐다는 그 시대에도 국정원의 휴대폰 도청 같은 컴컴한 구석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드러났을 때 차분하게 처리하면 되는 것입니다. 노 대통령이 과거에 매달리기 보다는 미래의 비전에 몸을 던지는 것이 달라진 시대에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참된 자세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 대통령을 보고 싶습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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