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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새 내각이 출범할 때 코미디 한 토막이 연출된다. 총리와 대신들이 일본인의 체격에 거의 어울리지 않는 연미복을 입고 총리관저 계단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복장의 캐주얼시대를 맞아 유럽에서도 거의 사라진 연미복의 귀족 취향을 메이지(明治)유신 이래 지금까지 내각이 고수하는 데서 일본인의 서양 숭배의 단면이 보인다. 연미복 입은 대신들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부의 아시아 경시정책을 보면 일본은 아직도 "아시아를 떠나 유럽에 들어간다"는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에 머물러 있다.
근대 일본 최고의 계몽사상가로 지금도 1만 엔권 지폐에 그 초상화를 남기고 있는 후쿠자와는 1884년 그가 성원한 김옥균 등 조선 개화파의 갑신년 쿠데타가 실패하자 1885년 지지신보(時事新報)에 탈아론(脫亞論)이라는 사설을 썼다. 그는 말했다. 일본은 조선과 중국의 개명을 기다려 함께 아시아를 흥하게 할 여유가 없다. 일본은 그들과 결별하고 서양의 문명국들과 진퇴를 같이해야 한다. 나쁜 친구를 사귀면 함께 오명을 피할 수가 없다. 우리는 아시아의 나쁜 친구를 사절해야 한다. 그는 또 청일전쟁을 문명(일본)과 야만(중국)의 전쟁이라고 말했다.
후쿠자와는 남루한 행색의 친지를 멀리하듯 조선과 중국을 상대하지 말고 오로지 서양의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여 일본을 근대화하자고 촉구했다. 그 시절의 일본을 위해 그의 처방은 옳았다. 그로부터 1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세계화를 맞아 사회.경제.문화적인 국경이 사라지고 같은 문화코드가 한국과 일본과 중국을 포함한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를 관통하는 시대다. 주식거래가 서울과 뉴욕과 도쿄와 런던에서 실시간으로 동시에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은 일본보다 나쁜 친구도 아니고 남루한 처지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의 의식 진화는 19세기 후반 일본을 열광시킨 후쿠자와의 탈아론 단계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정부 밖에서도 그런 징후는 감지된다. 지난봄 베이징(北京)에서 한국.중국.일본의 유엔협회 대표들이 모여 포럼을 열었다. 주제는 유엔 개혁이었지만 화제의 초점은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선출 문제였다. 베테랑 외교관 출신인 일본 수석대표는 한국과 중국이 일본의 안보리 진출을 아무리 반대해도 일본은 예정대로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된다고 단언했다. 아프리카 다수 국가들과 미국의 지지를 믿었던 것 같다. 탈아에 머물고도 세계의 지도국이 될 수 있다는 태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입구(入歐)는 입미(入美)로 바뀌었다. 그러나 탈아는 아직도 격세유전적으로 외국을 보는 일본인들의 인식과 태도에 드러나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한.일 관계와 중.일 관계에 악재가 될 게 뻔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그토록 집요하게 강행하는 고이즈미의 행태를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 국민 다수가 신사 참배가 일본의 아시아 외교에 미칠 악영향을 걱정하는 것을 보면 유권자들의 표를 얻기 위해서라는 설명도 설득력이 없다. 민족주의로도 설명이 안 된다. 고이즈미는 미국의 복슬강아지라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친미적이다. 한마디로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 야비한 자세다.
일본이 아시아를 떠나 서양을 배회하는 동안 아시아에서 일본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燾) 국가주석은 야스쿠니 분쟁 이후 고이즈미를 아예 상대하지 않는다. 한국은 필요한 경우에만 정상과 외상들이 만난다는 입장이다. 정경 분리에 따라 외교적인 갈등이 경제적인 거래에는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지만 국제관계에서 경제가 다는 아니다. 일본은 아시아 국가로서의 정체성(正體性)을 되찾을 때다. 글로벌시대에 탈미와 탈구는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이 시대착오적 후쿠자와 신앙에 매달려 아시아를 외면하면 비싼 대가를 치를 날이 올 것이다.
-중앙일보 11월25일자에서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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