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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석을 부르다 보면 학번이 가까운 학생들이 한 책상에 나란히 앉아있는 것을 자주 보게 된다. 그것을 보면 친구는 많은 사람들 중에서 골라서 사귀는 것 같지만 사실 우리 인생에서 선택의 범위는 그리 넓지 않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물론, 친구의 경우에는 가족의 경우와 같이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교에서 중, 고교시절에 짝이 된 아이들도 짝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생(寫生)을 갈 때나 소풍을 가는 날에도 일부러 떨어져서 가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조금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더라도 짝과는 많은 행동을 같이 하게 되고, 아주 소름끼칠 만큼 싫지 않은 짝이라면 오래 가까이 있다 보니 정이 들어서 나중에 동창모임 같은 데서도 옆자리나 마주보는 자리에 앉게 된다.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교정도 낯설고 학과목 등록도 까다롭고 수강환경도 낯설고 아는 얼굴도 별로 없어서 어설프고 불안할 때 우연히 학번이 가까운 친구가 사람도 좋고 함께 여러 가지 의논도 하고 탐색도 해 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큰 행운인가. 그러나 학번이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이기적이고 얄미운 사람들이어서 이사람 저사람 열심히 관찰을 해보다가 누구를 찍어서 접근을 해서 친구를 만들어야한다면 얼마나 처량하고 속상하는 일인가.
사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큰 축복은 필연적으로 주위에 있게 되는 사람들--부모형제, 학교의 급우, 직장의 상사와 동료, 이웃--을 잘 만나는, 다시 말해서 인품도 좋고 나의 발전적 삶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발전적 삶에 도움이 된다는 말은 직접적으로 나의 출세를 도와줄 사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기쁨과 슬픔에 공감함으로서 격려와 위로가 되어주고, 내가 어리석은 행동을 하려할 때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나의 ‘은인’이 아니겠는가.
아마 대학생 쯤 되면 이미 깨달았겠지만, 우리 인생에서 선택의 폭은 그리 큰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의 많은 시간을 우리 아버지는 신이 아니고 우리 어머니는 천사가 아니라는 사실 때문에 낙담하고 슬퍼한다. 부모 뿐 아니라 형제나 친척 역시 우리의 의사와 아무 상관없이 굴비 두름처럼 우리와 한데 엮이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어려서는 우리 아버지가 더 멋있고 막강한 사람이었으면, 우리 어머니가 더 예쁘고 상냥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공상을 해 보지만 시간이 가서 우리가 어머니, 아버지의 나이가 되면 우리는 어머니, 아버지 보다 훨씬 못한 어른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 하게되고, 종래에는 어머니,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이 얼마나 컸는가를 깨닫고 불효의 회한을 평생 지니고 살게 된다.
예전에 남녀가 유별(有別)해서 대학에 올 때까지, 또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오빠나 가까운 친척 남자 밖에는 대하지 못하고 살았던 여성들은 ‘백마 타고 나타날 왕자님’을 기다리곤 했다. 그런데 ‘백마 탄 왕자님’은 네스호(湖)의 괴물만큼이나 실존여부가 불분명한 생물이다. 여성들의 환상 속에는 자주 출현했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와 결혼한 여성은 없다. 그래도 놀랍게도 대부분의 여성들이 결혼해서 살고 있다. 세계 50억 인구의 절반인 25억명의 남성 중에서 제일 훌륭한 남성을 고르겠다는 야무진 꿈을 가졌던 여성도 대부분은 실지로는 선택의 대상이 25명도 되지 않음을 깨닫고 선택 가능한 상대 중에서 최상의 선택을 했을 것이다.
사실은 배우자이건 친구이건 직업이건 취미이건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대상의 폭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선택하는 사람의 안목의 성숙도와 인간적 자질이 더 중요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욕심이나 어리석음으로 인해 놓쳐버린 사람, 기회, 일을 후회하면서 사는가.
어렸을 때 어른들이 보시던 ‘토정비결’에서 ‘귀인을 만날 수’라는 구절이 몹시 인상 깊었다. 우리는 누구나 ‘귀인(貴人)’을 만나고 싶어한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를 만나는 사람에게 ‘귀인’이 될 수 있을까에는 덜 관심을 갖는 것 같다. 좋은 사람을 만나는 것은 상당 정도는 운(運), 즉 ‘우연’의 작용이다. 그러나 나의 인품과 자질을 향상시켜서 남들이 가까이지내고 싶은 사람이 된다면 ‘귀인’을 만날 가능성도 일층 높아 질 것이 분명하다.-고대신문 탁류세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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