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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께서는 참 꽃을 좋아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그 어른 댁에는 그래서 온통 꽃들로 가득 찼었다’라든지 ‘어른께서는 이런 저런 꽃들을 철 따라 가꾸시면서 매우 행복하고 자랑스러워 하셨다’든지 하는 긴 이야기를 위해 많은 현란한 꽃 이름들을 우선 나열해야 당연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이야기를 이을 수 없습니다. 제가 이어 나아갈 수 있는 묘사는 고작해야 다음과 같은 정경(情景)일 뿐입니다.
문을 들어서면 복숭아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그 옆에는 벚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나무들을 언제나 혼동하곤 했습니다. 꽃이 피어 그 나무들이 스스로 ‘내가 벚나무요, 내가 복숭아나무요’하기 전까지는 늘 그랬습니다. 조금 더 들어오면 채송화가 문에서 마당에 이르는 다섯 발짝쯤 되는 길 양 옆에 죽 심겨져 있었습니다. 그 납작한 꽃들이 제각기 노랑 빨강 색깔들을 활짝 피어 열 때면 저는 저보다 더 키가 큰 꽃의 숲 속을 거니는 것 같은 느낌을 갖곤 했습니다. 대청마루랄 것은 못되지만 마루를 지나 건넌방 옆에 가면 커다란 호두나무가 한 그루 있었습니다. 노란 쐐기들에게 하도 자주 쏘여 저는 그 나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호도는 지금껏 제가 좋아하는 ‘열매’입니다. 바로 그 옆에 장독대가 있었는데 항아리를 받치는 돌들 틈에 맨드라미들이 몇 그루 있었습니다. 꽃술이 넙적넙적한 그런 맨드라미였는데 저는 그 꽃잎을 살살 쓰다듬기를 좋아했습니다. 미끄럽지도 도톨거리지도 않는 그 촉감이 늘 따듯했습니다. 가끔 누가 실수를 해서 흘린 흔적처럼 봉숭아 꽃이 필 때도 있었는데 그 꽃을 볼 때마다 저는 노랫말 따라 ‘처량하다’고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없이 곱기만 하다고 느끼면서 조금 갈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활짝 핀 꽃그늘 밑에서 초라해진 잎을 보면서 ‘정말 처량하고나’하는 생각을 잠깐 했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그 ‘처량함’이 제게 와 닿을 수 있기에는 제가 너무 어렸음에 틀림없습니다.
계절을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정경이 이러하고 보면 그 어른께서 꽃을 얼마나 좋아하셨고 그 꽃 사랑이 얼마나 아름답게 그 댁에 마련되어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을 만도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런 묘사가 꽃을 좋아하는 분의 댁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나 쉽게 짐작하실 겁니다. 꽃들의 종류가 너무 가난합니다. 곰살궂게 가꾸어야 꽃답게 될 꽃나무다운 꽃도 실은 없습니다. 게다가 이른바 ‘좋아하는’ 정도가 지극함을 드러내는 요즘 말로 하면 ‘마니아’다운 모습도 이 정경에서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화분은 집안에 하나도 없습니다. 난을 키우는 ‘고상함’도 없습니다. 분재를 하는 ‘예술적 기교’도 없습니다. 화려하거나 기품이 있거나 넉넉하거나 소담스러운 꽃꽂이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다만 제풀에 자라 제철에 맞추어 스스로 피고 지는 그런 꽃들 한줌뿐입니다.
그럼에도 그 어른께서는 꽃을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꽃을 화분에 옮겨 심는 일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일은 꽃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하시는 듯했습니다. 분재에 대해서는 더 아픈 반응을 보이곤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일은 상대를 그렇게 묶어 자기 마음대로 휘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셨던 듯한데 말씀을 분명히 하신 적은 없습니다. 꽃꽂이는 사랑하는 것을 싹둑싹둑 잘라 물에 담구면서 제법 ‘사랑한다’고 하는 것인데 어쩌면 그것은 철저한 위선일 수도 있지 않으냐는 조금은 분노가 섞인 못마땅함을 드러내시기도 하시는 듯했지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어른께서는 그렇게 꽃을 사랑하셨습니다.
그 자식이 자라 ‘사랑’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녀석은 사랑이란 화분 만들기도, 분재 키우기도, 꽃꽂이를 하는 것도 아니라고 다짐했습니다. 채송화처럼, 봉숭아처럼, 복숭아나무와 벚나무처럼, 그리고 호두나무처럼, 그렇게 철 따라 제 꽃을 피면서 스스로 아름답게 살고, 사랑하는 사람이 그렇게 또 스스로 아름답게 살도록 하는 것이 사랑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여리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착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순하셨습니다. 꽃 한 송이 꺾지 못하시면서 꽃을 사랑하시던 그 어른께서, 그렇게 여리고 착하고 순한 그 어른께서, 어째서 반세기 전에 일었던 이 땅의 소용돌이 속에서 자신의 시신도 남겨놓지 못하고 주검더미에서 사라지는 모질고 흉하고 덧없는 삶을 사시다 가셨는지 참 알 수 없습니다. ‘너무, 너무, 너무’하신 바로 그 ‘너무 함’이 그 어른의 삶을 그렇게 만들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조차 듭니다.
자식의 연인이 그 녀석에게 ‘어떻게 된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 한 송이도 바치지 못하느냐’고 불평했을 때, 그 자식은 사랑하는 여인에게 네 권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봄에 피는 꽃’ ‘여름에 피는 꽃’ ‘가을에 피는 꽃’ 그리고 ‘겨울에 피는 꽃’이라고 이름 한 ‘꽃 그림책’ 한 질(帙)이었습니다.
그 자식이 너무 여리지 않았기를 빌 뿐입니다.-월간에세이 11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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