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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파크스: 세상을 바꾼 한 여인의 삶
진덕규   |  2005-12-13 01:11:04  |  조회 2541 인쇄하기
BBC 국제판 (2005.11.3일자)에 실린 로자 파크스(Rosa Parks) 에 대한 추도사에는 우리나라 젊은 여성의 글도 실려 있었다. Jinok, South Korea로 표기된 그 글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나는 그 녀에게 정중한 조의를 표하려 합니다. 그 녀에 대해 아는 것은 별로 없지만 그 녀는 참 용기를 지닌 불굴의 개척자임이 분명합니다. 한 사람의 젊은 여성으로서 그 녀의 용기와 적극적인 열정을 내 삶의 한 역할 모델로 삼으려 합니다. 신이시여, 그 녀를 축복하소서!”
이 글을 쓴 젊은 여성과 같은 마음에 사로잡혀 로자 파크스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한 달도 더 지난 지금 그 녀의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그 녀에 대한 우리 언론의 보도 때문이기도 하다. 단 한 줄의 기사도 싣지 않았거나 기껏 실었다 해도 그 녀의 사망을 보도한 기사가 전부였다. 다행히도 BBC 국제판에서나마 우리나라 젊은 여성의 추도사를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었다.

로자 파크스의 부음

로자 파크스는 연약한 흑인 여성으로 1955년 앨러바마의 민권 투쟁에 불을 지폈다. 지난 10월 25일 그 녀의 변호사는 “올해 92세인 로자 파크스 여사가 디토로이트의 집에서 잠자듯이 눈을 감았다.”고 말했다. 그 녀는 지난해부터 진행성 치매를 앓아왔다. 그 녀의 부음이 전해지자 미국 전역에서는 추모의 물결이 끊이지 않았다.
민권운동 지도자인 제스 잭슨(Jess Jackson)도 “그 녀는 조용히 앉아 있었지만 우리에게 모두 일어나 인종 차별의 장벽을 허물라고 지시하는 것 같았다.”고 회고하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역사는 로자 파크스를 기준으로 그 이전과 이후를 구분해야 할 것이다.-- 참 용기를 지닌 진정한 미국의 영웅을 그 녀에게서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평등을 위한 그 녀의 조용한 투쟁은 수백만 명의 가슴 속에 영원히 울릴 자유의 종으로 남게 될 것이다.”

평범함과 비범함은

그 녀를 일약 유명 인사로 만들었던 그 사건은 1955년 12월 1일 몽고메리에서 일어났다. 당시 42세였던 그 녀는 버스를 타고 있었는데 한 백인이 다가와 “일어나 뒷쪽으로 가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 녀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버스 기사도 일어나라고 강권했다. 그러나 그 녀의 대답은 "No!"였다. 버스 기사는 “경찰에 넘기겠다.”면서 위협했지만 그 녀의 대답은 “마음대로 하시오!”가 전부였다.
그 시절 미국 남부에서는 버스나 식당 등 공공 장소에서 흑백 분리가 행해지고 있었다. 1896년에는 미국 대법원이 “공공 시설에서는 흑 백인의 자리를 분리시켜도 좋다”고 판시했을 정도였다. 결국 백인에게 좌석을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녀는 구금당해야 했고 $14의 벌금까지 물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몽고메리에서는 침례교 목사인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에 의해 381일 동안이나 흑인들의 버스 승차 거부 운동이 전개되었다.
1964년에는 미국 전역에서 최고조의 시민운동이 일어났으며, 민권법이 통과되면서 흑백 분리도 마침내 종식되었다. 훗날 그 녀는 “나는 그 때 구속되었지만 무슨 특별한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단지 부당한 차별에 분노했을 뿐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그 차별을 극복할 수 있게 된 것이 더없이 기쁠 뿐이다.”라고 회고했다.

평화로운 세상을 일구는 것은

그 녀는 1913년에 앨러바마에서 출생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11살 때까지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 그 시절에는 흑백 분리 제도 때문에 백인 아이들은 학교 버스를 타고 통학했지만 흑인 아이들은 걸어다녀야 했다. “백인 아이를 태운 통학 버스가 우리 앞을 지나갔다. 그 버스는 나에게 이 세상은 흑인들의 세상과 백인들의 세상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알게 해 주었다.”고 술회했다. 그 녀는 집안에 숨어 백인 우월주의 단체인 KKK(Ku Klux Klan)의 살벌한 행진을 바라보았다.
그 녀는 앨러바마의 한 대학교에서 공부를 했지만 재봉사로 고된 일에 종사해야 했다. 그러나 그 녀의 일이 알려지면서 그 녀는 일자리마저 잃고 협박 전화와 편지에 시달리게 되었다. 결국 그 녀는 디토로이트로 이사를 했는데, 이 곳에서 1988년 은퇴할 때까지 어느 하원 의원 사무실에 근무했다. 그 녀는 만년에 이렇게 술회했다. “비전이 없다면 사람들은 절망할 것이고, 용기와 영감이 없다면 평화와 정의의 꿈도 사라질 것이다.--끝없는 사랑만이 평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
그 녀는 국회 의원이나 장관이 되기 위해 애쓰지도 않았다. 그 녀의 평생은 자기 성찰적인 조용한 투쟁으로 일관되었다. 그 녀가 사망한 후 그 녀의 영구는 여성으로서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이틀 동안 의사당에 안치되어 온 국민으로부터 추모받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정의를 위한 참 투쟁은 자신에게서 시작되고 사랑으로 종결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한 셈이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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