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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 어차피 식민지 지배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면 일본에게 받은 것을 천행으로 알아야 합니다.”
유명대학의 사회학 원로교수가 한 말입니다. 그 분 생각으로는 기차도 놓아주고, 공장도 지어주었으며, 학교까지 세워주었으니 은혜로운 일이 아니었느냐는 감탄이겠지만, 정말 못난 생각입니다. 바로 거기에 우리 역사에 대한 비하卑下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읽어서 마음에 간직해야 역사인식歷史認識이 싹트게 됩니다. 역사를 읽고 나서 그냥 버리게 되면 잘 못 쓴 소설을 읽은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잘 못 된 역사인식을 입에 담는 것이 바로 식자우환입니다. 식자우환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뜻과 꼭 같기 때문입니다.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여사가 1894년부터 4차례에 걸친 조선방문을 결산하는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으면 당시 참담했던 조선의 현실을 짐작하게 됩니다. 그러나 낯선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기록임도 도처에서 발견됩니다.
- 관아 안에는 조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굴 거렸다.
이 대목은 조선 전체를 아우르는 구절이 될 수는 없습니다. 당시 시골 관아官衙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면 당연히 수긍해야 합니다. 어느 한 부분을 보면서 전체를 연관 지으려 한다면 더 큰 오류를 범하게 됩니다. 조선 땅을 처음 밟은 이사벨 비숍 여사였기에 시골관아의 부패상을 조선 조정에까지 확대하여 적용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 조선에서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흔히 그러하듯이, 왕은 계속해서 ‘주십시오.’ 만을 요구하는 측근자와 탐욕스러운 기생동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선의 실상을 잘 못 이해한 외국 여성의 짧은 식견이라고는 해도 이쯤 되면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우리의 속담이 이렇게 절절할 수가 없습니다. 벽안의 여성이 읽어 내린 이 같은 조선 관아의 풍속은 시골관아의 아전들에게나 있었던 일이지, 나라 전체에 만연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론은 아주 간단하게 성립됩니다. 황희, 맹사성, 이황, 유성룡, 조광조, 이순신, 송시열, 최익현 등 조선왕조 전체를 아우른 고위관리들의 이름을 적어가자면 끝이 없지를 않겠습니까. 이분들의 생애는 어떤 경우에도 기생충으로 비하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 지식인집단이 건재하였기에 조선왕조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지독하게 가난하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가 있었질 않았습니까.
사실이 이러한데도 지금의 집권층 일부 지식인들이나 사이비 교수들은 위에 인용된 이사벨 비숍 여사의 잘못된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의 기득권층旣得權層을 당시의 부패세력과 같은 집단으로 몰아붙이면서 개혁의 대상이라고 소리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는 것이 병이라는 식자우환識字憂患도 이쯤 되면 중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선무당에게 칼자루를 들려주면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지를 않겠습니까.
선현들이 남긴 고전을 읽는 것은 마음에 간직해 두기 위해 읽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읽고서도 쓰임을 찾지 못하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 대저 정치를 잘 하려면 지난 시대의 치란治亂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한다. 지난 시대의 치란의 자취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역사를 상고할 수밖에 없다.
세종대왕의 가르침입니다. 이렇듯 기막힌 명구절도 읽어서 식자우환이 되는 것 보다는 차라리 읽지 않는 편이 더 안전합니다. 그래서 침묵은 금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또 새해를 맞았습니다. 올 병술 년은 천박하고 무지한 생각들은 뒤편으로 물러나고, 밝고 반듯한 생각들이 앞장을 서서 빛나는 역사 만들기에 나서는 뜻 깊은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봅니다.-초당 신봉승 선생의 글마당에서
<극작가, 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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