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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 듣는 사람
김경한   |  2006-01-05 08:16:30  |  조회 2615 인쇄하기
불행의 대부분은/경청(傾聽)할 줄 몰라서 그렇게 되는 듯 /비극의 대부분은/경청하지 않아서 그렇게 되는 듯 /아, 오늘날처럼/경청이 필요한 때는 없는 듯 /대통령이든 신이든/어른이든 애이든/아저씨든 아줌마든/무슨 소리이든지 간에/내 안팎의 소리를 경청할 줄 알면 /세상이 조금은 좋아질 듯…'.

현장 비평가들이 2002년도 '올해의 좋은 시'로 뽑은 정현종 시인의 '경청'이라는 작품이다.

세상에는 참 좋은 소리가 많다. 산에서 듣는 솔바람 소리, 먼 절간의 종소리도 좋고, 저녁 식탁에서 그날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일러주는 아내의 목소리도 듣기에 편안하다. 조선시대 명재상 백사 이항복은 "동방화촉(洞房華燭) 좋은 밤에 가인(佳人)이 치마끈 푸는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듣기 좋은 소리라고 했다던가.

하지만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이가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특히 대화는 문자 그대로 말의 주고받음이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 못지않게 듣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은 그의 말을 잘 듣는 것이다. 그래서 스티븐 코비는 '성공하는 사람들의 일곱 가지 습관' 중 하나로 '먼저 경청하라. 그 다음에 이해시키라'는 항목을 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말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지만 듣는 사람은 의외로 적은 것 같다. 무슨 자리에서건 화제를 독점하거나 남의 이야기를 가로채 혼자 떠들어대는 사람이 있다. 또 식당 같은 데서 여럿이 모임을 하는 경우 처음에는 한두 사람이 말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듣는 사람보다 말하는 사람의 숫자가 많아진다. 그러자니 모두가 경쟁적으로 목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고 급기야 어느 누구의 이야기도 알아들을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다.

비단 개인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나 집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대부분 자기편 목소리 내기에 급급할 뿐 다른 편의 소리에는 아예 귀를 막아버린다. 일방적인 주장을 내세우고 걸핏하면 집단행동에 들어가 붉은 머리띠를 두르고, 각목을 휘두르며, 크레인 위에 올라가고, 단식으로 위협한다. 최근 일부 고려대생이 폐쇄적인 자기논리에 빠져 상식 밖의 작태를 보이다가 온 국민의 지탄을 받은 것도 바로 그런 사례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경향은 국회의 대정부 질문이나 청문회 같은 데서 극치를 이룬다. 자기들은 근거 있는 소리, 없는 소리, 마구 질문을 늘어놓고는 정작 상대방이 답변하려 들면 무조건 간단히 하라고 윽박지르고 초입에서 말을 잘라버리기 일쑤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더욱 답답한 것은 나라를 이끌어가는 최고지도자들마저 국민의 목소리에 널리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름지기 지도자는 말을 아끼고 되도록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편향적 정책이나 탁상공론식 행정을 피하고 국민통합도 이룰 수 있다. 지난달 재.보선에서 집권 여당이 23대 0으로 참패한 것도 그들이 편견과 오만에 빠져 거칠고 품위없는 자기들 말만 해대면서 국민의 소리를 듣지 아니한 때문은 아닐는지. "폐하께서는 신하들의 간하는 소리를 넓게 들으시어, 뜻있는 선비들의 의기를 더욱 북돋워주셔야 합니다. 충성스러운 간언이 들어오는 길을 막으셔서는 안 됩니다." 천하통일의 원대한 포부를 품고 위(魏)나라로 출정하는 날 아침 제갈공명이 눈물을 흘리며 황제에게 바친 저 유명한 '출사표(出師表)'에 나오는 구절이다.

잘 들으려면 마음에 충분한 여유 공간을 가져야 한다. 비단 사람의 소리뿐만 아니라 이따금씩은 자연의 소리도 엿듣고, 나아가 신의 소리에도 귀 기울일 수 있어야겠지. 기도는 절대자에게 무언가 일방적으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음성을 듣고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계절의 여왕, 푸른 5월. 바야흐로 갖가지 소리가 아름다운 때다. 그와 함께 나의 사정을 지성껏 들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는가. 노사(勞使)가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 늦은 시간까지 의사당에 남아 발언을 경청하는 국회의원의 모습, 국민의 소리에 진지하게 귀 기울이는 지도자의 모습은 얼마나 미덥고 존경스럽겠는가.

첫머리에 옮겨 쓴 정현종의 시는 이렇게 끝난다. '…그걸 경청할 때/지평선과 우주를 관통하는 /한 고요 속에/세계는 행여나/한 송이 꽃필 듯'.
-2005.5.20일자 중앙일보
<김경한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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