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우리 안의 맹수 길들이기
서지문   |  2006-01-16 01:35:13  |  조회 2337 인쇄하기
영어를 배우면서 신선하게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나는 나를 용서할 수 없어’, ‘나는 내가 견딜 수 없이 싫어’, ‘나는 내 응석을 받아주고 있는 중이야’하는 따위의 자신을 객체화한 표현이었다. 이제는 서구어의 영향으로 우리말에도 이런 표현이 자리를 잡았지만 원래 우리말에는 없던 표현이다.

우리는 누구나 살면서 자신이 진저리치게 싫어지는 순간도 있고 자신의 어리석음이 원망스러운 때도 있고 가끔은 자아의 유치한 욕망을 너그럽게 들어주고 싶기도 하다. 자아는 말썽을 부리고 밉살스러워도 헤어질 수도 없고 망각 속에 묻어 둘 수도 없고 흉기로 협박해서 내 명령에 절대복종하게 할 수도 없으니 마음에 안 드는 ‘자아’는 우리에게 지어진 짐이고 형벌이고 업보이다.

우리가 몸이 건강할 때는 우리 몸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데, 팔, 다리, 코, 귀 어느 부분 어느 기관이건 집요하게 의식을 하게 되는 것은 그 기관에 탈이 났다는 신호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자아가 우리의 의지에 순종하고 말썽을 안 부릴 때는 매 순간 의식을 안 해도 되는데, 자아가 왕왕 제멋대로 굴면서 나의 인격을 훼손하고 나를 남 앞에 떳떳하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신체기관보다 ‘자아’를 더 자주, 그리고 계속 의식하게 된다. 우리가 ‘자아’의 괴롭힘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숨이 끊어 질 때이지만, 그러나 늘 자아를 설득하고 다잡아가며 똑바로 훈련을 시키면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자아를 가질 수도 있다.

이번에 불거진 황우석교수의 줄기세포 소동을 보면서 황교수의 의식과 정신상태가 어떠했길래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 놀랍다 못해 경악스럽다. 그런 정교한 거짓말을 꾸며낼 수 있다면 아이큐가 무척 높은 사람일텐데, 아무리 치밀하게, 그래서 같은 팀의 연구원들도 모르게 꾸몄다 하더라도 그런 사기가 탄로가 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는 정말 백치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이지 이 세상 천하의 모든 사기꾼은 죄스러울 뿐 아니라 어리석은 인간이다. 자기는 남보다 약게, 남들처럼 힘 안들이고 한 걸음에 명예와 부를 거머쥔다고 생각하지만 결국 남는 것은 불명예와 자책과 허무이다. 황교수는 우선 거짓업적을 자랑해서 무제한의 국가적, 국민적 지원을 받으면 연구가 힘을 받아서 그 거짓을 진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만 지원을 받은 다음에는 연구보다는 사회적 명사, 국민적 영웅의 역할을 즐기는데 치중했다. 거짓된 인간이 진실을 되찾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더 어렵다. 거짓의 유혹에 휘말리지 않도록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하지 말고 철통경계를 펴야한다.

인격이란 무엇인가? 존 스튜어트 밀은 그것을 ‘a completely fashioned will’ (완벽히 가다듬어진 의지)이라고 말했다. 내 의지를 늘 가다듬어서 내가 힘들게 타이르고 명령하고 씨름을 하지 않더라도 내 자아가 늘 옳고 정당한 행동을 한다면 그보다 마음 든든하고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일이 어디 있겠는가? 반대로, 나의 영특한 머리를 갖고 세상을 속여서 영화를 누리다가 그 거짓이 탄로 나서 나라에 치욕을 안기고 나는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된다면 그 자책과 회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나 공정하고 사려 깊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된다면 그것은 인생 최고의 행운이고 성공이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 자주 우리의 탐욕과 이기심과 시기심을 드러내고야 만다. 그래서 우리의 인격을 맹수만큼이나 철저히 길들여야 그 발톱에 나 자신과 나의 주위사람이 긁히거나 찍혀 죽지 않을 수 있다.

계획적인 사기나 범죄행위를 하는 비정상적인 인간이 아닌 보통 사람의 경우에 인격이 탄로 나는 것은 대개 말하기 전, 행동하기 전에 5초의 여유가 없을 때이다.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즉각 나오는 반응이 우리의 인격의 지표이다. 5초의 생각할 여유만 있었더라면 내가 그렇게 매정한 말을 하지 않았을텐데, 그렇게 이기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을텐데, 등등의 후회가 3년도 가고 30년도 가지만 과거를 돌이킬 초능력은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는다.

5초의 여유가 없었을 때 드러나는 인격이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것, 그 숭고한 영광을 위해서는 어떤 노력과 정성이 아까우리?-2006.1.1일자 고대신문 '탁류세평' 기고문
<고려대학교 문과대 교수,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312 북한식 시장경제가 성공하려면  김영희 06-01-20 2549
311 김정일은 북한의 쇄국을 풀어야한다  이수근 06-01-19 2526
310 지도자의 덕목  신봉승 06-01-16 2386
309 허영교수 “재판관련 헌법적 문제제기 적극 수용을”  김영희 06-02-23 2490
308 "부시 행정부, 북 위폐문제 조용히 다뤄야"-새뮤엘 샌드버..  김영희 06-01-16 2331
307 미국과 독일의 새로운 밀월(Honeymoon) 관계는  진덕규 06-01-16 2445
306 [포럼1921신년사]2006 우리는 시간안에서 살아갑니다  정진홍 06-01-16 2261
305 우리 안의 맹수 길들이기  서지문 06-01-16 2337
304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생존자 야오원위안(姚文元)의 사망  진덕규 06-01-16 2468
303 DJ가 평양 간다고?  김영희 06-01-06 2269
5152535455565758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