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부시 행정부, 북 위폐문제 조용히 다뤄야"-새뮤엘 샌드버거
김영희   |  2006-01-16 01:20:17  |  조회 2331 인쇄하기
새해 들어 국제정치가 크게 요동칠 조짐을 보인다. 중남미에서 좌파정권 출현이 줄을 잇고, 중동 평화 정착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가 재기불능이며, 미국의 초조감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사태는 안정과는 거리가 멀다. 김정일의 갑작스러운 중국 방문으로 상징되는 북핵 문제 해결도 오리무중이다. 마침 서울에 온 클린턴 정부 시절의 국가안보보좌관 새뮤얼 샌디 버거(60)를 만나 2006년 국제정치의 방향과 체온을 들어본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추구하는'자유와 민주주의 확산' 정책이 중남미에서 역설적인 결과를 낳고 있습니다. '반미'를 표방하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동을 건 중남미의 좌경화 바람은 지난해 12월 좌파인 에모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지더니 이제는 브라질.멕시코.콜롬비아.페루.에콰도르 등 중남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민주주의 확산이 반미를 낳는 셈이지요. 민주화가 너무 성공한 겁니까.

"중남미의 좌경화가 미국의 국익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은 분명해요. 이 문제는 미국의 무관심과 세계화라는 두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당초 부시 행정부는 2000년 출범 당시 '라틴 아메리카를 중시하겠다'고 장담했어요. 그런데 9.11이 터지고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에 몰두하는 바람에 중남미는 미국 외교의 사각지대가 돼 버렸어요. 또 다른 요인은 세계화예요. 세계화의 효과로 중남미 경제가 거시적으로는 좋아졌지만 세계화가 계층별로 균등하게 적용되지는 못했어요. 빈부 격차와 사회 갈등이 확대됐어요. 중남미 좌경화는 이런 흐름에 편승한 정치적 반발이라고 봐요."

"중남미의 좌경화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의 민주주의 확산정책은 계속될 겁니다. 다만 미국은 이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각국이 독특한 역사적 경로를 거쳐 민주화를 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어요. 한국의 경우 밑에서부터 위로(bottom up) 상향식 민주화를 이룩한 국가예요.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 모델을 중동 등지에 바로 적용하긴 힘들다고 봐요. 특히 이슬람 전통이 강한 중동 사회에 외부 압박을 통해 민주주의를 이식한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세계화는 차베스를 포함해 그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국제사회의 도도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유럽에 엄청난 실력 행사를 했습니다. 가스 공급을 25% 줄인 거죠. 그러나 프랑스나 독일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을 지켰어요. 모스크바에 항의할 경우 자칫 가스 공급이 완전 차단될까 봐 크렘린의 눈치를 본 거죠. 실제로 독일은 40%, 프랑스는 35%를 러시아에서 들여오고 있어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유럽에 대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입김이 한층 강화될까요.

"나는 그 정반대라고 생각해요. 당초 푸틴이 가스 공급을 끊은 것은 인접국 우크라이나를 겨냥한 일종의 정치.경제적 견제구였어요. 친서방으로 가려는 빅토르 유셴코 대통령의 발목을 잡고 가스 가격을 인상하려 한 거죠. 그런데 피해를 본 것은 유럽이었어요. 비유하자면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겨냥했는데 정작 총알을 맞은 것은 유럽인 셈이죠. 그런 뜻에서 나는 이것이 푸틴의 심각한 실수라고 봐요."

-푸틴이 이번 조치로 득보다 실이 많다는 얘기입니까.

"푸틴의 이번 조치는 자신이 석유.가스를 러시아의 정치.경제적 무기로 사용할 뜻이 있다고 공표한 것이에요. 그러나 러시아산 석유와 가스에 의존하는 유럽 입장에서는 이 조치는 자신들이 장차 크렘린의 정치적 포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만일 유럽이 이번 사태 등을 계기로 러시아에 대해 '신뢰할 수 없는 에너지 공급원'이라고 판단할 경우 유럽은 중동이나 북아프리카로 에너지 공급원을 전환하려 할 겁니다. 단기적으로는 푸틴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중.장기적으로 이는 푸틴의 실패로 판명될 공산이 커요."

-이란이 '중동의 북한'이 되고 있습니다. 이란이 핵시설에 대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봉인을 뜯고 우라늄 농축에 나설 참입니다. 북한과 차이라면 이란은 하루 400만 배럴의 석유를 수출하는 산유국이라는 점이지요. 국제사회가 이란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이란이 2~5년 안에 핵 국가가 되는 겁니다. 이란의 핵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가 이란과 공개적으로 큰 흥정을 해야 해요. 미국과 유럽, 러시아가 이란에 만일 핵 개발을 포기할 경우 국제사회는 '이란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복귀시키고 정치.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고 제안하는 거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이 그걸 거부하면 이란 국민은 '우리가 가난하고 고립된 것은 외국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지도자 때문에 그렇구나' 하고 알게끔 하자는 것이지요."

-이란의 핵 개발이 북한 핵 문제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들지 않을까요.

"북한 핵 문제는 현재 미국과 국제사회가 직면한 최대 현안이에요. 왜냐하면 이란은 핵 개발을 준비하는 단계인 반면 북한은 이미 6~10개의 원폭을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한 상태라 차원이 달라요. 또 북한은 이란에 핵 관련 물질을 수출한 적도 있어요. 6자회담이 실패해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남한은 물론 일본.대만 등이 줄줄이 핵 개발에 나서 동북아에 '핵 도미노' 사태가 빚어지는 게 걱정이에요."

-워싱턴의 네오콘은 아직도 북한의 정권 교체를 추진하고 있습니까.

"부시 행정부 내부와 외부에 아직 김정일 정권 교체를 희망하는 네오콘 인사들이 있는 건 사실이에요. 중요한 건 그들이 과거와 달리 지금의 대북 정책 흐름을 주도하지 못한다는 거죠. 부시와 라이스 국무장관도 이미 '북한의 정권붕괴를 원치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잖아요. 북한의 정권 교체는 더 이상 미국의 목표가 아니라고 봐요."

-1990년대와 비교해 작금의 한.미 관계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내가 클린턴 행정부에 몸담고 있던 94년 1차 핵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당시 미국은 제네바에서 북한과 핵 협상을 벌였지만 한국과 사전 협의 없이는 단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한국의 입장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것이죠. 그런데 지난 5년간 한.미 관계에 다소 금이 갔다고 봐요. 부시 행정부가 지나치게 자신의 입장만 내세운 데다 한국을 소홀히 다뤄 왔기 때문입니다. 워싱턴이 그동안 김정일을 겨냥해 불필요하게 강경한 레토릭을 구사한 것도 문제예요. 북핵에 관한 한.미 양국의 전략적 목표는 같아요. 북한의 핵 개발을 막고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지요. 다만 전술상 몇몇 차이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에요. 그러나 최근에는 한.미 관계가 좋아졌다고 들었어요."

-만일 귀하가 백악관 안보보좌관이라면 부시 대통령에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위조지폐 문제는 물밑에서 조용히 해결합시다'고 조언할 용의가 있습니까.

"부시 행정부가 위폐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게 없어요. 어느 나라도 자국의 화폐를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예요. 다만 이 문제를 필요 이상으로 큰 목소리로 다룰 경우 자칫 6자회담이 깨질 우려가 있어요. 따라서 위폐 문제는 6자회담과 별도로, 그리고 가급적 조용한 목소리로 다루는 편이 현명하다고 생각해요.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미국은 북한에 진지하게 제안할 필요가 있어요. 그 제안은 만일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경우 미국은 북한에 안전 보장, 국교 정상화, 경제 지원을 할 용의가 있음을 밝히는 거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미국의 제안이 '진지'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야만 만일 북한이 미국의 제안을 거부할 경우 남한과 중국이 미국과 손을 잡고 대북 경제제재 등 평양을 압박할 수 있거든요."

-귀하는 백악관 안보보좌관 시절에 중동 평화의 기초가 된 2000년 7월 캠프 데이비드 협정을 주도한 주역입니다. 아리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 사후의 중동 평화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샤론 총리의 유고로 중동의 정치 지형에 먹구름이 덮였어요. 샤론은 지난해 11월 리쿠드당을 탈당한 뒤 자파세력과 노동당 인사들을 끌어들여 카디마당을 결성했어요. 샤론의 구상은 요르단강 서안의 일부 정착촌을 철수시킨 뒤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워 주는 동시에 이스라엘 안보를 확보하자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샤론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상황이 불확실하게 됐어요. 아쉬워요."

-부시 대통령은 '승리하기 전에는 이라크에서 철수하지 않겠다'고 천명했는데 그가 말한 '승리'의 의미는.

"미국은 지금 이라크에서의 '승리(Victory)'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어요. 그동안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에 민주정부 수립, 저항세력 완전 소탕을 승리라고 규정해 왔어요. 그런데 지난 2년간 경험을 감안할 때 이는 달성하기 힘든 목표임이 드러났어요. 내 생각으로는 미국이 수니.시아.쿠르드족 3개 세력으로 구성된 정부 수립, 그리고 저항세력을 고립화하는 정도를 승리라고 규정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봅니다. 미국으로서도 16만 명에 이르는 미군을 이런 식으로 무한정 이라크에 묶어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에요. 미국은 이라크 정부 수립 추이를 봐 가며 미군을 점차 철수시킬 공산이 커요."

만난 사람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최원기 기자

*** 샌디 버거는

빌 클린턴 외교를 총지휘한 인물이다. 클린턴의 첫 번째 안보보좌관인 앤서니 레이크나 클린턴의 첫 번째 국무장관인 워런 크리스토퍼도 영향력 면에서 샌디 버거보다 한 수 아래라는 평가다. 1945년생인 그는 71년 하버드대 법대 졸업 후 대선에 출마한 텍사스주 상원의원인 조지 맥거번을 돕는 과정에서 클린턴과 가까워졌다. 버거는 클린턴 대선 캠프에서 외교안보고문으로 활약하면서 큰 공을 세웠다. 97~2001년 버거는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재직하면서 캠프 데이비드 협상을 주도하기도 했다. 퇴임 후 그는 2004년 7월 국립문서보관소에서 외교문서를 절취했다는 혐의로 조사받는 등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중앙일보 1월16일자에서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312 북한식 시장경제가 성공하려면  김영희 06-01-20 2548
311 김정일은 북한의 쇄국을 풀어야한다  이수근 06-01-19 2525
310 지도자의 덕목  신봉승 06-01-16 2386
309 허영교수 “재판관련 헌법적 문제제기 적극 수용을”  김영희 06-02-23 2489
308 "부시 행정부, 북 위폐문제 조용히 다뤄야"-새뮤엘 샌드버..  김영희 06-01-16 2331
307 미국과 독일의 새로운 밀월(Honeymoon) 관계는  진덕규 06-01-16 2444
306 [포럼1921신년사]2006 우리는 시간안에서 살아갑니다  정진홍 06-01-16 2260
305 우리 안의 맹수 길들이기  서지문 06-01-16 2336
304 문화대혁명의 마지막 생존자 야오원위안(姚文元)의 사망  진덕규 06-01-16 2467
303 DJ가 평양 간다고?  김영희 06-01-06 2268
515253545556575859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