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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외교사에 유례가 드문 긴 연설이었다. 지난 13일 북한 핵에 관한 미국의 인식에 정면으로 도전한 노무현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연설은 산티아고.런던.바르샤바.파리 '찍고' 자이툰부대 병영에서 끝났다. 미국의 부시 정부, 그중에서도 네오콘(신보수파)의 속을 뒤집어 놓은 발언들은 전략적으로 계산된, 한 줄에 꿴 시리즈였음이 정부 고위 소식통에 의해서도 확인됐다.
***동포간담회가 '공포간담회'로
로스앤젤레스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자위를 위한 측면도 있다는 폭탄발언으로 미국에 충격을 준 노 대통령은 유럽에서도 미국을 비판하고 유럽을 찬양하는 발언을 실컷 하고는 귀국길에 전용기의 기수(機首)를 페르시아만으로 돌려 자이툰부대를 전격 방문했다. 그것은 그동안 했던 발언의 반미 색채를 상쇄하기에 충분한 친미적인 보디랭귀지였다.
외교관례라는 것과 아담한 사고(思考)를 금과옥조(金科玉條)로 생각하는 모더니스트들에게 노 대통령은 불안한 포스트 모더니스트로 비쳤을 것이다. 그의 말은 다음 순간 어디로 튈지 예측할 수 없는 럭비공과 같은 것이었다. 오죽했으면 동포간담회가 공포간담회라고 불렸을까.
핵 문제를 북한의 정권교체로 해결하려는 사람들과는 손발이 맞을 수 없고, 그래서 이 문제로 얼굴 붉힐 일 있으면 기꺼이 얼굴 붉히겠다는 노 대통령의 거칠고도 노골적인 표현은 미국이 대화가 아닌 군사력이나 경제적인 압박으로 북한 핵을 해결하려 한다면 한국은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력한 메시지다. 한국과 중국이 김정일 정권의 붕괴를 원치 않는다는 말도 한.미 간 북한 인식에 확실한 선을 그었다.
북한과 관계없는 문제에서도 노 대통령은 미국 사람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는 한국 경제가 미국 이론에 너무 치우쳤다고 비판했다. 그것은 세상이 다 아는 그의 영국.프랑스.독일적 제3의 길에 대한 선호를 반영한 말이다. 그리고 그는 프랑스 혁명을 역사상 가장 훌륭한 인류의 발명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혁명에 대한 문명사적인 평가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프랑스의 인권선언에 대한 지적소유권이 미국에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 사람이 많다. 1789년 프랑스 국민의회가 새 헌법의 전문(前文)으로 선포한 인권선언은 1776년 미국 독립선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핵 문제로 미국 다루는 방식을 완전히 뒤집어엎고 돌아왔다. 그는 미국이 김정일 체제의 전복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않고 있다고 온 세상을 향해 큰 소리로 고발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시 정부의 네오콘들이 그들만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북핵 위기를 힘으로 끝장내는 사태를 차단하려고 한 것이다. 노 대통령의 강경발언으로 북핵은 확실히 세계여론의 감시 아래 들어갔다. 이제 미국의 네오콘들은 마피아식으로 밀실에서 김정일 죽이기 전략을 짜기가 어려워지고, 북한도 세계여론에 더 민감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미관계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북핵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우리는 노 대통령이 미국을 겨냥한 아슬아슬한 발언을 할 때마다 한.미관계가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지 않을까, 그 결과 북핵 문제 해결이 지연되고 그러는 동안 참다 못한 북한이 핵무기 개발이라는 마지막 저지선을 넘어버리지나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미국서 건설적 메아리 들려
북한의 반응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노 대통령의 거친 문제 제기에 건설적인 메아리가 돌아오고 있다. 미국이 바라는 것은 북한의 정권교체가 아니라 정권변화(Transformation)라는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자의 말이나 북한 공격은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의 말이 우연히 나온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노 대통령의 야성적인 발언을 듣고 어린 아이 우물가에 내어 놓은 듯 불안하다는 사람이 많다. 당연한 걱정이다. 그러나 로스앤젤레스.런던.바르샤바.파리 발언을 자이툰부대 방문이라는 미국 달래기로 중화시키는 포괄적인 시나리오가 있는 걸 보면 안심이 되기도 한다. 넓고 길게 보면 외교방식도 만고불변은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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