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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확산으로 전쟁을 방지한다는 미국 부시 정부의 외교철학은 사상적 족보에서 철학자 이마누엘 칸트(1724~1804)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칸트는 공화국(Republics)은 다른 정치체제보다 덜 호전적이라고 생각했다. 독재자 사담 후세인 축출→이라크 민주화→아랍.이슬람권 전체로의 민주주의 확산이 부시 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그린 중동평화의 큰 그림이다.
그러나 부시의 민주주의 평화론은 자본주의 평화론 또는 시장을 통한 평화론의 도전을 받고 있다. 컬럼비아대 에릭 가츠키 교수는 민주주의가 바람직한 제도지만 그것이 직접 국제평화에 기여한다는 것은 신기루라고 주장한다. 그는 실증적인 조사를 토대로 경제적 자유와 평화의 상관관계가 민주주의와 평화의 상관관계보다 50배나 더 크고, 샤를 몽테스키외(1689~1755)와 애덤 스미스(1723~1790)가 예언한 대로 높은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누리는 나라들은 전쟁을 덜한다고 지적했다.
부시 정부의 대북정책은 민주주의 평화론에 바탕을 두고 있다. 적어도 부시 1기 정부는 북한의 정권교체에 무게를 두었다. 정권교체를 실현하는 수단에는 북한 핵시설을 선제공격하는 부시 독트린이 포함되어 있었다. 부시 2기 정부에 와서 정권교체는 정권의 변화로 완화됐다. 그러나 북한을 인권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어 미국과 미국의 동맹국에 대한 안보 위협을 차단하겠다는 부시의 예언자적 사명감에는 큰 변화가 없다. '악의 축' '폭정의 전초기지' '범죄정권' 같은 살벌한 발언이 우연히 나올 수는 없다.
자본주의 평화론에 따르면 북핵 문제를 해결하고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는 최선의, 어쩌면 유일한 방법은 북한경제의 시장화를 지원하는 것이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평화경제가 거기에 가깝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정책이 민주주의를 통한 평화를 기조로 하는 한 햇볕정책이나 평화경제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은 광저우(廣州)와 선전(深?)을 방문함으로써 북한이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에 비상한 관심을 가졌음을 만천하에 선언했다. 참으로 좋은 징조요 기회다. 중국식 시장경제의 특징은 공산당 일당독재체제는 유지하면서 시장경제 요소를 최대한 도입하는 것이다. 공산당이라는 쇠기둥에 시장경제라는 꽃을 피우는 철골상춘(鐵骨常春)은 김정일 위원장으로서도 해 볼 만하다는 자신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경제를 시장경제로 바꾸는 데는 엄청난 돈이 든다. 4000억 달러로 추산되는 해외 화교자본의 투자가 없었다면 중국의 개혁.개방이 지금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북한에는 조총련계 재일동포 말고는 북한에 투자할 해외동포가 없다. 북한이 기댈 곳이라고는 한국.미국.일본.중국과 국제 금융기구들뿐이다. 그들의 투자를 끌어들이려면 핵의 장애물을 걷어내야 한다. 그런데 지금 6자회담은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걸려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위폐 문제의 고개를 넘지 못하면 6자회담 재개 자체가 어렵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 때 북한은 일본인 납치를 북한 정부와는 관계없는 일부 망동주의자(妄動主義者)의 소행으로 정리했다. 미국 재무부와 법무부의 저항이 예상되지만 북.미 위폐 분규도 국가범죄를 개인범죄로 낮추는 북.일 모델을 따르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할 것이다.
광저우와 선전은 중국경제 개혁.개방의 1번지다.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을 생각하면 김 위원장 스스로 광저우와 선전을 찾아가 큰 감명을 받았다고 말한 것은 가뭄의 단비같이 고무적이다. 김 위원장과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6자회담이 핵문제를 푸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도 재확인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경제를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개혁할 의지를 보였다. 6자회담의 나머지 참가국들은 민주주의 평화론보다 자본주의 평화론 편에 서 그 조건을 충족시켜 주는 방안을 만들어 북한에 제시해야 한다.
-중앙일보 1월20일자에서
<중앙일보 국제문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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