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익숙한 이름
오늘 아침 외신은 베티 프리단의 서거를 보도했다. 사실 이번 주에는 The Weekly Focus 에서 부시 대통령의 연두교서를 다룰 계획이었는데 이 외신을 접하는 순간 베티 프리단으로 교체해야겠다고 결정했다.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지만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어느 여자 대학에서 일했었다. 그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이름 중 하나가 베티 프리단이었는데, 그 녀의 저서 [여성의 신비]는 널리 회자되고 있었다. 마침 같은 학과의 고 김행자 교수가 이 책을 번역함으로써 나는 이 책을 보다 체계적으로 읽게 되었다. 얼마 전에는 서점에서 이 책이 김현우 씨의 옮김으로 2005년 이매진에서 다시 출간된 것을 보고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구입했다. 60년대 후반부터 한국 사회에서 여성의 인간화와 여성성에 큰 영향을 미쳐 온 그 녀의 서거는 나로 하여금 마치 한 시대의 종언과도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미국의 여성 운동가
베티 프리단의 서거를 전해 준 외신의 제목은 “미국의 여성운동가 85세로 서거하다.”라고 되어 있었다. 그 기사의 앞머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의 여성운동에서 신호등과도 같았던 베티 프리단이 85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그 녀의 사촌인 에밀리 바젤론(Emily Bazelon)은 그 녀가 출혈성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여성의 신비,1963]를 저술한 다음 널리 알려지게 된 그 녀가 이 책에서 강조한 것은 여성의 존재는 단지 어머니나 아내의 역할에 의해 충족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녀는1966년에 남녀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NOW(전미여성조직기구, America's National Organization for Women)를 조직했으며 ,이 조직체의 초대 회장으로 일하였다. --그 녀는 당시로서는 급진적이었던 임신 중절과 평등 임금, 임신 휴가, 공정한 승진 등을 요구했다. 특히 여성이 남편과 자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은 이기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인간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주변인의 삶
그 녀는 미국 일리노이 주의 페오리아(Peoria)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 성공한 보석상이었다. 어릴 때부터 총명했고 떠들썩할 정도로 말이 많았던 유태인 소녀였던 그 녀는 그 곳에서 고등학교 시절부터 젊은 맑시스트로서 급진적 유태인 단체의 회원으로 활동했었다. 그러나 그럴 듯한 여학생들의 사교 모임에서는 항상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에 단 한 번도 남학생으로부터 데이트 신청을 받지 못했었다. 뒷날 그 녀는 어린 시절의 이 경험이 그 녀를 사회의 주변인과 일치시키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 후 유명한 여자 대학인 스미스 컬리지(Smith College)에 진학한 그 녀는 “이 곳에서 내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 녀는 그 곳 대학 신문의 학생 편집장이 되었으며, 1942년에는 최우등생(summa cum laude)으로 졸업했다. 그 후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버클리 대학 대학원에서 진학해 1년 동안 연구했지만 계속 장학금을 받을 수 없게 되자 뉴욕의 그린위치 빌리지에 있는 한 좌파 신문사에서 편집자 일을 맡아 했다. 1947년에는 극장 무대 감독과 결혼하여 뉴욕 교외에서 신혼 살림을 시작했지만 세 아이의 엄마가 된 채 22년만에 결혼 생활을 끝내는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다.
참 평등의 길
여성의 평등 지향성을 담아 낸 [여성의 신비]가 출간되자 NYT의 서평란에는 “꼭 읽기를 권하고 싶은 대단히 도발적인 책”이라는 서평이 게재되었다. 한편 “역사의 방아쇠를 당긴 책”이라는 엘빈 토플러의 평가도 이 책의 영향력을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그 녀는 아무 일 없이 지극히 행복해 보이는 미국 중산층의 가정을 “편안한 여자 포로 수용소”라고 고발하면서 미디어 조작자와 광고주, 사회학자, 교육학자들이 공모해서 “여성의 신비”라는 이데올로기를 만든 다음 여성을 가정 속에 구속시키고 사회를 퇴행시켜 왔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해서 그 녀에 대한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녀의 주장은 단지 중산층 백인 여성 중심의 자유주의 페미니즘이거나 개량주의의 낡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전 시대적 사고라고 비판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 녀는 남자와 여자에 대한 구분은 생리적인 차이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면서 남녀의 완전 평등을 주장했다. 그러므로 남자와 여자의 차등이 전제된 제도나 관습은 모두 사악하다는 그 녀의 주장을 단순히 낡은 개량주의로 몰아갈 수는 없을 것 같다. 더욱이 그 녀가 동성애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렇게 평가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논의에 불과할 뿐이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