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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연상
지금 유럽에서는 이슬람 교도와 기독교도 사이에서 감정의 골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의 분쟁은 역사의 길목마다 처참한 살육을 불러왔던 섬뜩함을 안겨 준다. 그래서 그 비극이 재연될 것 같은 이상한 기분에 잠길 때도 있다. 특히 지난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유럽 등지에서는 기독교도들이 알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와 이슬람 교도들을 혼동한 채 서로 일치시키려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슬람 교도는 이슬람 교도이고, 테러리스트는 테러리스트이다. 이 둘은 분명히 서로 다른 존재이다.
그런데도 덴마크의 어느 신문에 게재된 무함마드를 풍자한 만화가 도화선이 되어 기독교도와 이슬람 교도는 대립으로 치달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을 바라보면서 문득 지난 가을에 보았던 한 외신 기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 기사에는 “이탈리아의 용감한 문명 비판가이자 언론가인 오리아나 팔라치(Oriana Fallaci)가 교황과 비공식적으로 만났다.--그 녀는 최근 자신의 책에서 이슬람을 비판하고 있다. 그 녀는 지금 암과 투병 중이지만 이슬람과도 투쟁하고 있다.”는 글로 시작하고 있었다.
불변의 신념
이교도가 이슬람, 특히 무함마드를 비판한다는 것은 이슬람 교도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죄악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오리아나 팔라치는 이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있다. 앞에서 인용했던 외신 기사에 의하면, 이슬람에 대한 그 녀의 비판은 서유럽 사람들에게 반 이슬람적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촉매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녀는 뉴욕의 9.11 테러를 주제로 하여 3권의 책을 집필했는데, 이들 책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을 신랄하게 비난했었다.
팔라치는 다문화주의도 배격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슬람 온건파도 위선적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들과의 공존은 환상이라고 몰아붙인다. 그 녀는 [이성의 힘, The Strength of Reason]에서 이슬람에 대해 적나라하게 비판하고 있는데, 이 일로 그 녀는 스위스의 한 판사로부터 기소당했으며, 이탈리아의 이슬람 단체에서도 고발당했다. 이탈리아 법원은 그 녀에게 북부 이탈리아의 베르가모 법정에 출두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그런데 베르가모는 그 녀가 2차 대전 중 반파시스트 게릴라 활동을 펼쳤던 근거지이기도 하다.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
오리아나 팔라치는 “20세기에 가장 유명한 언론인이며, 인터뷰어인 동시에 종군 기자”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 녀야말로 역사의 현장에서 역사를 만들었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 녀에 대한 평가는 관점에 따라 다를 수도 있다. “어디로 뛸지 알 수 없는 메뚜기”라는 비판에서부터 “용기와 지혜를 가진 우리 시대의 언론인”이라는 평가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좌파로부터는 인종주의자로 비난받고, 우파로부터는 “시대적인 양심”으로 찬탄받고 있다. 그러나 그 녀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은 역시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라는 평가일 것 같다.
사실 그 녀는 야생마처럼 살아왔다. 1930년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76세이다. 그 녀는 2차 대전 중에는 10대의 소녀 파르티잔으로 뭇소리니에 투쟁했는데, 이는 전적으로 아버지의 정치적 영향 때문이었다. 그 녀의 아버지는 플로렌스의 가구 제작자로 뭇소리니의 파시즘에 맞서는 투쟁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 녀는 10대 시절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지방 신문 기자로 시작해서 마침내 전국적인 신문사의 해외 특파원 종군 기자로 활약하게 되었다.
신념과 진실 사이에는
그 녀는 "책과 음악만 있으면 하루 종일 행복하다"고 밝혀 놓았다. 그런 그 녀가 한 때는 그리스의 저항 시인인 알렉산드로스 파나골리스(Alexandros Panagoulis)와 염문을 뿌리기도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 시인은 1976년에 의문의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는데, 그 녀는 이 때의 일을 [한 사나이, Uomo]라는 소설에서 다루었다.
그 녀가 당대의 세계적인 지도자들을 인터뷰 했었는데, 그들 중에는 헨리 키신저와 덩샤오핑, 부토, 빌리 브란트, 호메이니 등도 있다. 그 녀는 이들에게 시대의 의미를 물었고, 세계관을 말하게 했다. 그러나 정작 그 녀 자신은 지금 뉴욕의 한 아파트에 거주하면서 이슬람을 공박하는 일에 열을 올리면서 이를 신념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명한 것은, 신념이라고 해서 모두 무죄인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더구나 진실에 터하지 않는 신념은 허위일 수 있으며, 선동일 수도 있다. 오늘 우리 시대는 유달리 진실보다는 신념을 말하면서도 그 신념 때문에 어떤 제약도 무의미하다고 믿는 이상한 풍조가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유명 인사라 해도 진실에 터하지 않는 신념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시대적인 위선자임을 입증할 뿐이다.
팔라치가 진실에 근거한 신념을 가졌는지 여부는 또 다른 유명 기자의 인터뷰에서나 밝혀질 일이지만 지금은 그 녀가 신념과 진실 사이의 거리를 말해야 할 위치에 놓여 있는 게 사실인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최소한 유명 인사가 치루어야 할 의무이기 때문이다.-srips.org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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