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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삶 -김희옥
홍세표   |  2006-03-20 01:03:48  |  조회 2450 인쇄하기
나는 우선 내 힘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일터가 있어서 좋다.
나는 지금 내가 구청 청소과에서 공공근로로 행당 어린이공원 공중화장실 청소하는 일를 할 수 있어서 좋다.내 힘으로 내 용돈을 벌어서 내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고 행복하다.
지금 내가 이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나에게는 기적이다. 9년전에 나는 전신마비 환자였다. 그래서 나는 가족들의 손과 발을 빌려서 하루하루를 누워서 살았다. 그렇게 병원과 집을 오가며 5년동안 방안에 누워서 살았다. 그러다 보니 병원비로 가산을 다 탕진하고 어렵게 마련한 집까지 팔고 말았다.
현재 나는 하반신 부분마비장애와 대소변 장애로 뇌병변 2급장애인이다.
그래서 내가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적과도 같다.
내가 대소변 장애가 심해서 걱정이 많았었는데 화장실 청소를 할 수 있게 되어서 정말로 좋다. 언제든지 대소변을 마음놓고 보면서 일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너무너무 좋다.

육체적으로는 조금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나는 너무 행복하고 좋다. 내가 병원비로 재산을 다 탕진하여 지금 가난하게 되었어도 내게 지금 가난한 것은 비극이 아니라 가난한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다라는 말이 나의 삶의 큰 힘이 되었다.

나는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내가 일을 할 수 있는 일터로 일를 하러 갈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좋고 온 몸에 땀을 흠뻑 흘리면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난 뒤 깨끗해진 화장실과 거울속에 비쳐지는 내 얼굴의 송글송글 맺혀진 땀 방울이 나는 참 보기좋다.

나는 이렇게 청소를 해놓고 앉아서 쉴 수 있는 화장실옆에 작은 휴게소가 있어서 나는 더 좋다. 그곳에서 쉬는 동안 나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고 일회용 커피를 타서 마실 때 커피향기도 나는 좋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가 이렇게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내 병원비와 약값을 낼 수가 있고 사랑하는 남편과 아들에게 작은 선물이라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삶에 여유가 생겨서 참 행복하고 좋다.

우리 세식구가 함께 살 수 있는 15평짜리 전세방이 있어서 좋고 내가 좋아하는 화분들을 놓을 수 있는 공간에 빛이 잘 드는 창문이 있어서 좋고
우리 세식구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현관 문이 따로 있어서 나는 좋다.

나는 내가 번 돈을 십분의 일정도는 남겨서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나는 꽃을 참 좋아한다. 나는 올 봄에는 꼭 꽃구경을 가고 싶다. 아침 이슬이 방울방울 맺혀있는 꽃과 풀잎을 나는 살며시 만져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흙냄새가 나고 흙먼지가 날리는 비포장 길을 걷기를 좋아한다. 나는 깊은 산골짜기에서 계곡물이 졸졸 흐르는 소리와 산 새소리를 좋아한다.

그리고 티없이 맑고 깨끗한 아이들의 웃는 얼굴과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웃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 듣기를 나는 좋아한다.나는 아름다운 색깔을 사랑한다. 봄에는 봄꽃들과 새로 나온 나무잎의 색깔을 나는 좋아한다.

그리고 새로 나온 꽃잎을 만지기를 좋아한다.이곳 행당어린이 공원 담장에 개나리 꽃잎이 수줍게 얼굴를 내밀다가 이번에 갑자기 찿아온 추위에 화들짝 놀란듯이 꽃잎을 살며시 내밀고 있는 꽃잎을 나는 손가락 끝으로 살며시 만져 보았다. 내 손가락끝에 느껴지는 그 촉감은 21년전에 내가 우리 아들을 처음으로 만졌을 때의 촉감처럼 아주 여리고 부드러웠다.

가을에는 골짜기마다 단풍이 찬란한 풍경을 보면 발걸음이 떨어지지가 않고 그냥 그대로 서서 그져 바라만 봐도 나는 좋다. 어쩌다가 불어오는 가을 바람에 실려오는 들꽃향기를 나는 좋아한다. 나는 우리나라 가을 하늘을 사랑한다.

나는 유행가 노래를 즐겨 듣는다.나는 청계천 산책로의 갈대에 부는 바람소리를 좋아한다.지난 1월달에 아들과 함께 청계천에서 산책을 하다가 발길을 멈추고 한참이나 서있게 하는 물 흐르는 소리를 나는 좋아한다. 나는 젊은 우리 아들의 웃는 얼굴과 웃음 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지금은 비록 장애인으로 살고 있지만 내 힘으로 집안 일도 할 수 있게 되었고 이렇게 공공근로 공중화장실 청소까지 할 수 있어서 나는 정말로 행복하고 좋다.

나의 생활을 구성하는 모든 작고 아름다운 것들을 사랑한다. 나는 여러 사람을 좋아하며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남편과 아들을 끔찍히 사랑하며 살고싶다.

나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지금 하고있는 공공근로일을 건강이 허락되는 한 꾸준히 하고싶다. 나의 이 작은 소망이 꼭 이루어지기를 두손 모아 기도한다.
<이 편지는 최근 MBC 라디오 여성시대에 소개된 한 여성 중증장애인의 것입니다. 장애인이지만 삶에 대한 건강한 의지와 정열 그리고 소박한 꿈을 꾸밈없이 털어놓은 것으로 보여 회람에 올림니다>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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