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유럽을 떠도는 검은 구름
진덕규   |  2006-03-27 01:29:08  |  조회 2301 인쇄하기
최근 OECD(The Organization for Economic Cooperation and Development)는 [성장으로 달려가기, Going for Growth]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구체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하여 유럽의 미래를 예견한 160여 페이지에 이르는 이 보고서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유럽은 지금 심각한 어려움에 놓여 있다. 유럽 사람들은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과 미국에 대한 이들 국가의 도전 가능성을 이야기하면서 유럽은 앞으로 다가올 10년 동안 경제적 하강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유럽 회원국들의 국내 총생산을 합치면 EU는 거의 미국 수준에 육박한다. 그 뿐 아니라 EU의 총 인구는 약 4억 5천 3백만 명으로 미국의 2억 6천 8백만 명보다 무려 1억 8천만 명이나 더 많다. 그러나 개인당 GDP는 미국보다 25%나 적은데 그 간격은 앞으로 더 벌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므로 지금의 추세대로 나간다면 20년 후 프랑스 사람과 독일 사람의 평균 수입은 미국 사람의 절반 정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뒤집혀진 예측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사람들은 EU는 통합을 통해 미국을 압도하게 될 것이고, 세계의 헤게모니도 다시 잡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가령 2000년에 EU 수뇌부들은 “2010년이면 EU만이 가장 경쟁력이 큰 역동적인 지식 주도 국가가 될 것”이라고 장담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주장이 객적은 농담처럼 되고 말았다.

물론 아직도 유럽의 미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부에서는 유럽 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여가를 중시하기 때문에 비록 경제적으로는 가난하다 해도 삶의 질은 훨씬 더 높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삶의 질은 낮아질 수 밖에 없다.

삶의 질이 높다고 자부하는 스웨덴에서도 전체 가구의 40% 정도가 미국의 하층민과 비슷한 생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EU의 미래에 대한 낙관론에 먹구름이 감돌게 된 것은 유럽의 개별 국가에서 일어나는 개혁의 미진함과 경제 성장의 한계 때문이었다.

유럽의 몇몇 정치가들은 EU의 개혁에 맞서 민족주의적 태도를 견지하고 있으며, 노동자들의 과격한 시위와 젊은이들의 분노에 찬 저항은 사회 기능을 마비시킬 정도에 이르렀다. 마치 태풍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기선처럼 유럽은 점점 위기 속으로 진입하고 있다.


두 가지 위기 요인

한때 유럽은 지식 주도의 미래를 강조했지만 지금은 모두 허상이 되어 버렸다. 유럽은 세계 최일급의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보유하기도 했었지만 그것은 모두 과거의 일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바이오메디칼 분야만 해도 유럽은 그 실적도 미미하지만 아시아에게 추월당한 지도 오래 되었다. 또 오랜 역사를 지닌 유럽의 제약업은 앞으로 10년 이내에 미국, 중국, 인도 등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제는 최고 수준의 과학자들도 유럽을 떠나 미국으로 달려가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출생율의 감소로 노동 인구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25년 이내에 유럽 노동자들의 연령 구조는 약 7%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65세 이상의 노인이 50%나 늘어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노인을 일터로 몰아 넣어야 할 형편이다!” 뿐만 아니라 감소하는 노동 인구를 충당하기 위해서는 노동 이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추세라면 앞으로 독일에서는 독일 혈통을 지닌 독일인보다 외국인이 더 많아질 것이고, 이탈리아도 그렇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난 번 “만화사건”에서도 알 수 있었듯이 유럽의 일체감은 일대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


유럽의 길은

1498년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가 희망봉을 돌았을 때부터 “유럽의 세계”는 시작되었다. 그 때 유럽은 극동과도 교역의 통로를 넓혔으며, 세계 역사의 틀을 새롭게 짰을 뿐 아니라 미주 대륙과 아프리카를 경략(經略)하기도 했다. 근대 과학을 발전시켰고, 산업혁명을 주도했으며, 국민국가의 모형을 설정하기도 했지만 인종주의, 노예 무역, 식민지 건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같은 반문명적 상황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게 세계를 주도해 왔던 그 유럽이 지금 위기로 달려가고 있다. 그들이 소생할 수 있는 가능성은 출생률을 더 높이고, 노동 이민을 받아들이며, 사회 복지를 줄이면서 세금을 올리는 방법 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는 그 동안 자본주의의 효용성과 사회주의적 인도주의를 접합시켰다고 자랑해 왔던 유럽식 “사회 모델, social model”이 용도 폐기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사회 복지에 길들여진 유럽 사람들이 이러한 변화 자체를 수용할지가 문제로 대두하게 된다.

어느 경우건 이제 유럽의 길은 낙관할 수만은 없게 되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뒤늦게 유럽식 “사회 모델”을 수용하려는 우리 정치권 일각의 시도는 “뒷북치다 쪽박마저 깰 수 있다!”는 우려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점을 지적해 두어야 할 것 같다. -srips.org에서
<한림대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362 목욕탕에 있는 사람  신봉승 06-04-10 2642
361 [해밀턴 프로젝트]의 도전  진덕규 06-04-10 2559
360 세계화와 전통적 가치관의 갈등 : 인도의 현실  진덕규 06-04-10 2486
359 북핵에서 멀어져 가는 미국  3  김영희 06-04-14 2361
358 금융계의 異狀氣流  김병주 06-03-31 2403
357 사회갈등 부르는 ‘독선의 문화’  정진홍 06-03-31 2429
356 푸틴과 후진타오의 포옹 : 러시아와 중국의 가스 협정  진덕규 06-04-03 2422
355 노동문제,정치적 접근해선 안돼-김대환 전노동장관  정진홍 06-03-27 2329
354 SBS 8시뉴스 TV칼럼-'염치없는 사회'  정진홍 06-03-20 2541
353 유럽을 떠도는 검은 구름  진덕규 06-03-27 2301
414243444546474849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