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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에서 태어났다거나 숲 속에서 닭의 울음으로 출생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신라 건국 설화로 미루어보면 꽤 오래 전부터 닭이 이 땅에서 소중한 가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원래 한반도에는 닭이 없었다.닭은 4000여년전에 야생닭이 동남아지역 또는 지중해연안에서 가축화되었다가 2000여년전에 중국을 경유해서 한반도에 유입된 것으로 추측된다.유입 된지 워낙 오래되다 보니 "토종"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20세기 들어 다시 레그혼 등 외래종이 들어왔다.이탈리아의 리보르노 항구가 원산지인 레그혼은 1870년경 미국에서 개량되었고 영국을 통해 세계 곳곳에 멀리 전파되었다.한반도에는 1910년부터 도입되기 시작했다.
왜 토종닭을 두고도 외래종이 수입되었을까? 빨리 자라고, 알을 많이 낳는 장점 때문이다.토종닭은 연간 산란수가 고작 80~120개 정도이지만, 레그혼은 1년 중 200~250개, 드물게는 365개까지 알을 낳는다.초산 일령도 150~160일로 빠르다.이렇게 수익성이 높으니 토종을 제치고 외래종 레그혼이 널리 보급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토종은 육질이 좋아 사위 사랑하는 장모 손에 우선 선택된다.그러나 정작 기업적으로 식용으로 대량생산하기에는 성숙이 느려 비효율적이다.
국내 문물제도 가운데 대다수는 해외에서 전래되어 토착화된 것이다.금융제도 역시 예외가 아니다.우리나라 은행제도의 효시는 1897년에 설립된 한성은행이다. 전통사회에도 객주(客主)가 있었고 개성(開城)부기가 있었고 어음이 유통되었었지만 정작 토종은행은 없었다.
기원이야 어찌되었든지 경제발전을 도와 사회공동체에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은행업의 관건이다.예금창구를 통해 많은 자금을 동원해 적절한 신용평가를 통해 다수의 기업에게 최소의 중개비용으로 자금을 배분해주는 것이 은행의 주업무다.
국민경제에 대한 은행의 최악의 서비스는 부실대출을 키워 은행부실화는 물론 국민경제의 위기를 초래하는 일이다.1997년 환란의 책임을 정부측에만 돌릴 수 없는 것은 당시 은행경영진에도 도덕적 해이가 만연해 있었기 때문이다.은행인의 일차적 책임은 은행경영 합리화에 있다.은행인의 애국심은 그것을 통해 표출.실행 되어야 마땅하다.
그밖에 거창한 국민경제적 과제(경제발전, 고용확대, 기업 경영권 방어 등)은 일차적으로 정부관료, 기업인, 주주 등 다른 사람들의 몫이다. 교향악 단원처럼 제각기 자기 역할에 최선을 다할 때 국민경제의 화음이 잘 어울려 나온다.
큰일도 작은 일을 잘 챙기는 데서 성패가 판가름 난다.수많은 국민들이 다양한 경제주체로서 각자 제자리에서 자기 일에 충성할 때 경제가 안정되고 성장한다.애국심과 같은 고담준론을 입에 달고 사고 사람은 마음이 대부분 콩밭에 가 있는 사람이다.
은행의 콩밭 갈이는 일차적으로 은행자체의 수익성제고에 있어야 한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양계장 주인이 역병구제를 게을리하고 애국심을 내세워 정치경제학에 뜻을 둔다면, 닭장 망치고 얄팍한 애국심의 바닥이 들통 나고 만다.
요즘 금융계 마당발 사건으로 세상이 시끌하다.그도 그 나름의 애국심이 발동했을지 모른다.금융은 섬세한 버선발이 대접 받아야 번창하고 마당발과 그 아류들이 판치게 두면 결국 파탄을 몰고 온다.아류들은 흔히 금융토종론을 앞세워 국제화 흐름을 막고 값싼 애국심을 자극하며 출세기회를 노린다.
좀비(zombie)가 설치게 방치되면 멀쩡한 사람까지 쇠잔해지는 법이다.닭이라면 토종은 잡아 먹어 좋고, 외래종은 알 얻어 좋다.은행이 수익이란 알을 산란하는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그것이 곧 애사심이고 애국심이다.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등소평 말처럼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각자 자기 일에 매진하는 것이 곧 국익이 된다.요즘 금융계 지하에 꿈틀거리는 지각변동을 보면 환란이전 금융 혼란기의 망령들이 엿보인다.-한국경제신문 3월31일자에서
< 서강대 명예교수·경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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