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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인종주의가 몰고 오는 거센 물결
진덕규   |  2006-05-15 02:32:08  |  조회 2631 인쇄하기
최근 러시아에서는 인종주의의 만행이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올해 23살의 페트르부르크 의과대학생 안야니 쿠마는 귀가 도중 러시아 청년들로부터 뭇매를 맞았으며, 자아트 투트프는 무용학원에서 딸과 귀가하다 10대의 스킨헤드(skinhead)들로부터 구타당했다. 그래도 이들은 목숨을 건졌으니 운이 좋은 편이었다.

최근 두 달 동안에는 10여 명의 외국인들이 러시아 스킨헤드로부터 공격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스킨헤드의 공격으로 사망한 사람들은 주로 유색 인종이거나 비 러시아 계 사람들인데, 그 중에는 중앙아시아 출신의 9살 짜리 아이, 페루에서 온 유학생, 중국의 상인도 있다. 스킨헤드들은 곤봉과 칼을 휘두르면서 행인을 위협하고 집시 부락을 습격하기도 한다.

지난 4월 22일에는 아르메니아 출신의 한 대학생이 모스크바 지하철 역 구내에서 살해되었고, 4월 24일에는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젊은이가 친구들과 산책하다 칼을 맞았다. 현장에 있었던 그의 친구는 “지난 10년 동안 모스크바에서 살았지만 별다른 불안감은 느끼지 못했습니다. 체첸과의 전쟁 이후에는 약간 불안하기도 했지만 걱정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혼자 거리를 다닐 수가 없습니다.”라고 두려움을 호소했다.

인종주의의 실상

러시아는 인구가 1억 4천만 명에 이르는 대국이다. 전체 인구의 82%가 러시아 인이며, 타타르 인이 4%, 우크라이나 인이 2%이다. 절대 다수가 러시아 인이기 때문에 인종주의가 폭발하는 것은 극히 예외적인 현상이다. 작년에는 스킨헤드의 공격으로 무려 28명이 사망했고, 366명이 부상했는데, 올해는 살해된 사람이 벌써 작년의 배를 넘었다. 그러나 인권운동가들은 이 숫자도 실제와는 다르다면서 당국자들이 실제 숫자를 숨기고 있다고 비난한다.

폭력에 앞장선 스킨헤드들은 “러시아의 피를 맑게 하고 더러운 피를 청소한다!”면서 떠들고 다닌다. 이들은 파시스트 복장에 그 휘장을 사용하면서 떼를 지어 다니면서 구호를 외친다. 특히 히틀러의 생일이었던 지난 4월 20일에는 이들에 대한 두려움으로 모스크바의 유색인들은 하루 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야 했다.

이들 스킨헤드들은 13살부터 30살에 이르는 젊은이들로 이루어졌다. 이들은 모스크바에 1000여 명, 상트페트르부르크에 약 12,000명 등 러시아 전체에 70,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는데, 러시아의 소도시에는 “러시아 사람들만의 러시아 건설!”이라든가 “유태인들에게 죽음을!” 이라는 이들의 구호가 걸려 있을 정도이다.

폭력의 뿌리는

러시아의 폭력은 1980년대 소련이 몰락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때 검은 복장을 한 과격한 젊은이들이 반유태주의를 내걸고 거리를 행진했다. 한편, 자유민주당의 민중 선동가인 블라디미르 지린노브스키(Vladimir Zhirinovsky)는 노골적으로 민족주의와 인종주의를 내세워 1993년의 선거에서 예상외로 많은 표를 얻을 수 있었다.

그 뒤 체첸공화국의 분리 독립 전쟁에서 비롯된 체첸 반군에 의한 테러 활동, 특히 2002년 모스크바 오페라 극장에서 체첸 반군이 저지른 인질 사태는 러시아 사람들로 하여금 체첸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그루지아, 폴란드, 몰도바, 에스토니아 사람들에 대한 반감을 싹트게 했다.

그 때부터 러시아의 경제 사회적 불만 계층은 스킨헤드들의 인종주의를 받아들이려는 경향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것은 마치 1차 대전 이후 히틀러의 나치 패거리들의 파시스트 활동에 속으로 동조했던 당시 독일 사람들의 모습을 연출하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게 한다.

폭력과 민족주의

한 가지 이상한 일은, 그 때나 지금이나 정치가들은 스킨헤드의 인종주의적 폭력에 입을 다물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크레믈린 당국자까지도 스킨헤드의 파시스트적 만행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푸틴은 지금 2008년의 선거만을 전부로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 이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스킨헤드에 대한 이용 가능성을 면밀하게 분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선거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정치 사회의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무엇보다도 민중들에게 민족주의에 대한 열정을 갖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도 계산하고 있을 것 같다. 그것도 자기 민족에게 위해를 가한 외국인에 대한 투쟁이야말로 더 없이 효과적인 민족주의의 메시지라는 것을. 그러므로 "선거전에서 최고의 메뉴는 민족주의"라는 지적에도 일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일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이 그곳 지도자들의 얄팍한 정치 계산을 이용해 거리를 휘젓고 다닐 자유를 얻고 있다면, 그것은 결국 히틀러의 망령까지 불러올 수 있는 반문명의 연결고리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srips.org에서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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