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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남의 일이고 내게는 좀처럼 해당하지 않는다고 느끼던 시절이 어제 같다. 그런데 어느덧 머리는 백발이 되고 나이도 70이 넘었다. 아직은 실감이 안 난 채 무언가 잘못된 것 같기만 해서 괴로웠던 한때가 있었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면 젊은이들이 앉은 자리를 양보해 준다.
지하철도 공짜로 타는 ‘지도공사’가 되었고 동회에서는 교통비 보조금도 나온다. 사실 얼마 전까지는 지하철 공짜 표를 달라고 손을 내밀면 창피했고 내가 쓰러질 것 같아 팔을 잡아주던 젊은이가 거슬려 반감까지 느끼곤 했다. 스스로 늙기를 거부하는 늙음에 대한 반감이 있었던 것이다.
“노년의 비극은 그가 늙어서가 아니라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데 있다.” 아일랜드의 문인 오스카 와일드의 말이 나의 불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노년은 죽음보다 공포의 대상이다”라는 옛 로마 풍자시인 유베리스의 말도 생각난다. 또는 “노년의 세월과 관련된 인생은 비극의 제5막과 흡사하다. 인간은 비극적 최후가 다가오고 있는 것은 알지만 그것의 정체에 대해서는 아직 모른다”고 토로한 쇼펜하워의 말이 함께 떠올라 언짢았다.
노년을 악평한 경구들은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청교도적 정치가인 B. 프랭클린이 노년을 맞아 ‘신뢰할 수 있는 세 친구로 오직 늙은 아내, 늙어빠진 개, 그리고 저금’ 을 들고 있는 것은 나를 슬프게 만든다. 프랭클린의 말 중 개와 저축이 없는 나는 더욱 허탈감을 느낀다. 그런데도 왜 내가 늙어가고 있고 또 늙어야만 하나. 적어도 명예와 돈이라도 벌어놓고 늙을 수 없었나. 회한이 있지만 그럼에도 늙어만 가니 어쩌랴? 다음의 말들을 생각하며 스스로 기운을 내보려 한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레미제라블』에서 “주름살과 같이 품위가 갖추어지면 존경받는다. 행복한 노년에 더할 나위 없이 여명이 비칠 것이다”고 했다. 스탕달은 『연애론』에서 “정신의 가장 아름다운 특권은 아름답게 늙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옛 그리스의 비극작가 아이스큐로스는 “늙어가는 시간은 모든 것을 구제한다”고 말했고, 같은 시기 그리스의 7현으로 지칭되는 소론은 “나는 나이 먹을수록 많은 것을 배워가고 있다”며 늙음을 찬양했다. 그렇다면 늙는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다만 본인이 노력하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 같다. 가령 석가의 말이 담겼다는 『법구경』에서는 “머리가 희다는 것만 갖고 장로라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백발은 연령일 뿐 지혜의 표시가 아닌 것 같다.
그럼 과연 어떻게 노년으로 진입해야 하는가? 어떻게 현명하게 나이를 먹어야 하는가? 그 방법을 안다는 것은 최고의 지혜를 필요로 하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스스로 늙어가는 것을 자각하는 이는 드물다”고 말한 프랑스의 라 로슈후코의 말은 피상적으로 늙어가는 나를 숙연하게 한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늦기 전에 제대로 늙어가는 방법을 배우고 지혜를 닦아야 하겠다. 영국 의학자 T. 브라운의 “노인으로 잘살 방법을 생각하라. 노인은 모름지기 오래 사는 것보다는 끝을 잘 마무리할 줄 알아야 한다”는 교훈을 깊이 새겨야 하겠다. 나를 노인으로 대하는 청년들에게 밝게 웃으며 고맙다고 말할 수 있는 관대한 노인이 되어야 하겠다. 오래 산 나를 업수이 여기고 내 말에 귀기울이려고 하지 않는 젊은이에게는 그저 미소만 지어주자. “노인은 청년을 바보라고 생각하지만 청년은 노인을 잔소리 많은 바보라 생각한다”는 미국 시인 채프먼의 고마운 충고를 기억하기 때문이다.-홍세표 이코노미스트 객원기자,前 한미·외환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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