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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블레어 수상의 달라진 모습은
진덕규   |  2006-06-13 05:05:22  |  조회 2624 인쇄하기
지난 5월 말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는 워싱턴을 방문했다. 워낙 빈번하게 방문하여 큰 뉴스가 되지도 못했지만 수상 직을 떠날 시점이 다가온다는 점에서 그도 약간의 감회를 가졌을 것으로 여겨진다. 지금 일정으로 보면 그는 후계자인 대장상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에게 2007년 가을에 수상 직을 넘겨 줄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번 워싱턴 방문은 수상으로서의 마지막 방문이 될 것 같다.
그동안 토니 블레어와의 친밀한 관계를 과시해 왔던 부시도 물러나게 될 블레어에게 신경이 쓰이는지 이렇게 말했다. “내가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토니 블레어도 수상 직에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정작 토니 블레어는 “앞으로의 내 일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면서 겉으로나마 담담한 표정을 지었다. 토니 블레어 수상의 이임은 영국 노동당은 물론이고 상대당인 보수당을 비롯해 영국의 정치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될 것이며, 그 충격은 미국과 영국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블레어의 밀착 관계

부시와 블레어는 매우 친밀한 관계이다. 어느 정치 만평가는 부시와 블레어의 같은 점 2가지와 다른 점 2가지를 지적하면서 두 사람 모두 말이 많고 걸음이 빠른 것은 같은 점이고, 한 사람은 중산층 출신이고 다른 한 사람은 대통령을 아버지로 둔 명문가 출신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부시는 블레어를 자신의 푸들보다 더 좋아하고, 블레어는 부시를 다우닝가 10번지의 집사장보다 더 편하게 대한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부시 대통령의 대외 정책은 블레어의 지원 덕분에 큰 힘을 얻었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9/11사건 이후 대 테러 전쟁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 거기다 최근 이란의 핵 문제에 대한 공동 보조 등은 부시에 대한 블레어의 확고한 지원을 말해 준다. 부시의 정책에 대한 블레어의 지지는 유럽의 다른 지도자들과는 차이가 있었다. 프랑스의 자크 시락(Jacques Chirac) 대통령이나 독일의 게르하르트 쉬레드(Gerhard Schroeder) 전 수상이 부시의 이라크 전쟁을 극력 반대했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블레어의 지지가 없었다면 부시는 국제 사회에서 외톨이가 되었을 것이다.

블레어의 정치 운명은

미국에서 부시의 인기가 형편없듯이 블레어의 인기도 바닥권이다. 지난 해 10월에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블레어의 인기는 25% 정도였다. 이런 현상은 블레어로 하여금 자신의 정당 지지도조차 전락시키는 결과를 맞게 했다. 지난 5월 4일에 있었던 영국의 지방 선거는 영국 정치사에서 보기 드물 정도로 커다란 정치적 격변을 일으켰다. 여당인 블레어의 노동당은 전국 득표율 26%로 지지도에서 세 번째로 밀렸을 뿐 아니라 지방 의회 의석도 300 개나 잃었다. 반면에 야당인 보수당은 40%의 지지를 얻어 노동당이 잃어버린 300 개의 의석을 차지했는데. 이러한 현상은 보수당으로는 14년만의 일이었다.
영국 유권자들의 65%는 2010년에 있을 영국 총선에서는 노동당이 패배하고 보수당이 승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런 사정으로 노동당 내에서도 블레어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으며, 노동당의 좌파는 물론이고 온건파까지도 그에게 공격의 화살을 던지고 있다. 결국 이라크 전쟁 참전 등 부시와의 공동 보조가 블레어의 정치 운명을 앞당기는 계기가 되어버린 셈이다.

"레임덕(lame duck) 정상회담"

신문에서는 블레어와 부시의 회담을 가리켜 “레임덕 정상 회담”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임기 말년의 인기 없는 지도자들의 회담이라는 의미이다. 이 회담에서 블레어는 이전과는 달리 부시와 약간의 의견 차이를 보여주었다. 국제 문제에 대한 접근에서도 미국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다자적인 국제 관계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조지타운 대학에서의 초청 강연에서도 “국제 정치에서 강대국의 간섭은 반드시 민주주의, 인권, 유엔 정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부시와의 공동 회견에서도 그는 “국제 문제는 다자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유엔도 효율적으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이었다.
그는 유엔을 재편해서 브라질, 독일, 인도, 일본 등을 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으로 받아들여 그 기능을 강화해야 하며, 유엔 사무총장도 국제적인 인물을 선출해서 예산권과 인사권을 갖게 해야 한다면서 지금의 코피 아난과 같은 상징적인 사무총장에서는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블레어의 주장이 때늦은 감은 있지만 국제 사회를 다자적인 협력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국제 사회의 여론을 대변한 것만은 분명하다. 그도 임기 말이 다가오자 평상심으로 돌아가 세계를 올바르게 바라보는 것 같다. 대부분의 지도자들이 임기 말이 되어야만 사물을 올바르게 깨닫는 것 같아서 씁쓸한 기분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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