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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김형선   |  2006-06-14 07:56:28  |  조회 2570 인쇄하기
서울시의 고위공직을 정년퇴직한 사람이 검찰로부터 참고인으로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고 유서를 남긴 채 팔당호에 투신자살 한 일은 이미 1개월 전 이었습니다. 자살하기 사흘 전까지 2주일 동안 참고인 신분으로 다섯 차례나 조사를 받았던 그는 그 날 오전 또 다시 출석통보를 받았다고 합니다. 검찰의 참고인 출석요구에 반드시 응할 법률적 의무도 없는 사람이 자살까지 한 것은 그 연유가 무엇이던지 간에 그 자체로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2000년 이후 고위공직자와 저명기업인 등이 검찰의 조사 전후에 자살한 사례가 아홉 번이나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일이 있을 때 마다 신문이나 방송에 잠깐 보도 되었다가 이내 잊혀지기가 일쑤이고 이번 사건도 예외가 아닌 지난 일이 되고 말 것 같습니다. 더욱이 이번 사건은 그 직후에 사회가 온통 보름 앞둔 지방선거열풍에 휩싸이고 또한 한달 가까이 앞둔 월드컵 축구의 열기에 묻히어 금방 세인의 뇌리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검찰 조사 중의 피의자, 더욱이 참고인까지 수사와 관련하여 자살하는 비극적 사건이 이처럼 반복되는 까닭은 우선 그런 사건에 대해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검찰은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해명만 되풀이하였고, 그러면 사회는 또 그 해명을 받아들여 그 사건을 유야무야로 끝내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할 일이 결코 아닌 것은 우리의 헌법과 법률의 관계규정을 굳이 들추어 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명백한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으레 있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웬만한 수준의 사회라 해도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일입니다. 하물며 문명사회를 지향하는 우리 입장에선 민망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우리 헌법과 관련법의 규정을 검토하면 그 점은 더욱 명백해집니다. 헌법은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책임을 진다’(제10조 후단)고 하고 또 ‘모든 국민은 고문을 받지 아니하며 자기에게 불리한 진술을 강요당하지 아니한다’(제12조제2항)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형사소송법은 이런 헌법 규정들을 다음과 같은 조항으로 구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검사 등 직무상 수사에 관계있는 자는 비밀을 엄수하며 피의자 또는 다른 사람의 인권을 존중하고 수사에 방해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한다(제198조). 둘째, 피의자의 진술거부권을 고지하여야 한다(제200조). 셋째, 참고인의 검찰 진술이 임의로 한 것이 아닌 것은 재판에서 증거로 할 수 없다(제317조). 넷째, 특히 형법은 공무원의 직권남용행위와,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공무원의 폭행과 가혹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제123조와 제125조 등)을 두어 수사권의 남용이나 부당행사 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헌법 및 법률의 관계규정에서 보듯이 수사기관은 국민인 피의자 또는 참고인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하고, 피의자는 진술거부권이 있으며, 참고인은 수사의 협조자이지 수사의 대상이 아니므로 그의 출석이나 진술을 강제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인권을 존중하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조사를 받은 피의자와 진술을 요청받은 참고인이 그 수사와 관련하여 자살한다는 일은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와 같은 자살 사건이 발생했다면 철저한 진상규명을 통해 재발방지책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만일 수사권의 남용이나 부당행사가 없었음에도 자살한 것이 밝혀지면 국민의 불안과 의심은 제거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수사권 즉 국가의 공권력을 잘못 행사하여 그러한 일이 빚어졌다면 그 행위자의 법적 책임은 물론이고 최소한도 해당부서의 책임자와 장관으로 하여금 정치적 책임을 지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 자정 노력을 통해 국민을 안심시켜야 하는 것이 국가의 국민에 대한 도리일 것입니다.

이번 사건의 경우만 보더라도 정부는 강압수사가 없었다는 해명만 하고 있습니다. 엄정하고 철저한 조사가 있었는지가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근래 세인의 주목을 끄는 사건에 관하여 검찰이 강도 높은 수사를 한다는 말이 보도를 통하여 자주 나왔기도 합니다. 강도 높은 수사가 강압수사를 의미하는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습니다. 또 잠을 안 재우고 조사를 했던 과거의 ‘밤샘’ 조사 등이 사라졌는지도 의문입니다. 학자들은 그런 행위를 가혹행위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이런 의혹을 털어내기 위해선 국회가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국가 권력에 의한 국민의 인권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인 삼권분립의 정신에 입각하여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장치가 국정조사권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국회는 이에 대해 끝까지 침묵하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국민의 인권이 공권력에 의해 침해당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울 수 없는 정황이 지난 수년간 되풀이되고 있는 데도 국회는 직무유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권침해 행위에 대한 조사와 구제, 인권상황에 대한 실태조사 등의 업무수행을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나 기본적 인권을 옹호함을 사명으로 한다는 변호사들의 단체인 변호사회도 말 한마디 없이 이를 외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한 가지 주목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같은 기간에 경찰에서 조사 중에 있던 피의자, 특히 참고인이 수사와 관련하여 자살을 하였다는 사례는 별로 보도된 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경찰은 제도상 검사의 지휘를 받아 수사를 하도록 되어 있어 수사권의 남용 내지 부당행사가 어느 정도 방지 될 수 있는 점도 그 이유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검사가 작성한 조서는 진정성립만 인정되면 그 진술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닌 것을 제외하고는 증거로 할 수 있다는 형사소송법 규정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나 참고인 진술조서는 피고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는 규정과 비교하면 그 중요성이 짐작될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경찰이 무리하게 진술을 요구하여 조서를 작성하여도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을 부인하면 허사가 되므로 진술을 무리하게 요구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검사가 일단 진술을 받아 조서를 진정하게 작성하기만 하면 그 진술이 임의로 된 것이 아닌 것이 입증되지 않는 한 증거능력이 있다고 하는 것이 판례입니다. 그러니까 검사로서는 어떻게 하든지 원하는 진술을 받아 내려는 유혹에 빠지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그동안 법원은 검사가 작성한 조서의 진술의 임의성을 너무 안이하게 인정하여 이를 증거로 사용함으로써 형사소송법이 부여한 견제작용을 소홀히 한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늦게나마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한다고 하니 기대가 되지만 근본적으로는 독일이나 영·미 등 선진국가에서와 같이 검사 작성의 조서도 피고인이 증거로 함에 동의 하거나 진술자가 사망하는 등 특별한 경우에 한하여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여 문제를 해결함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수사 중의 피의자나 참고인이 수사와 관련하여 자살하는 현상은 국민의 기본적 인권과 수사권이라는 국가의 공권력의 행사 사이에 일어난 현상이므로 국민의 기본권을 중시하는 웬만한 국가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관련 당사자들이 그런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수사행태와 제도를 하루 빨리 개선·보완해야 할 것입니다.<변호사, 전 대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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