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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신문 인터뷰-'문학은 인간 내면 보여준 요술지팡이'
서지문   |  2006-08-16 06:34:55  |  조회 2850 인쇄하기
'교수님의 학창 시절'-서지문 문과대 영어영문학과 교수

초등학교 시절에 어린이용 세계문학전집을 수십번 독파했을 정도로 문학적으로 ‘조숙’했던 서지문 교수는 1965년 이화여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1학년 때에는 대학생활에 큰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 봄, 신촌에 유난히 모래바람이 거세게 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문학에 몰입하면서 그녀의 화려한 내면생활이 시작됐다. 당시에 25센트, 35센트 밖에 하지 않았던 문고본 세계명작들을 영어로 읽으며 세상과 인간이 그녀에게 ‘열린 책’이 되기 시작했다.

대학교 2학년 때, 그녀는 감리교 선교사 캐슬린 크레인 선생님을 만났다. 1954년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한국에 와서 1987년 뇌종양으로 사망할 때까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가르치느라 일생을 헌신한 크레인 선생님은 그녀의 문학적 열정을 샘솟게 했다.

크레인 선생님은 학생들의 과제 중 잘 된 작품을 직접 학우들에게 소개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다음 해에는 학생들과 ‘오성과 한음’을 함께 번역하기도 하고, 단편소설, 드라마의 극본 등 다양한 글을 쓰면서 영문학에 더욱 흥미를 느끼게 했다. 그녀는 크레인 선생님의 ‘Journalism'이란 강의를 들으며 학내 영자신문 ‘이화보이스’를 제작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오드리 햅번보다 더 예쁘고, 명랑하고 재치 있는 크레인 선생님의 격려에 힘입어 ‘나도 사회에서 무엇인가 의미있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었다”며 고마웠던 은사님을 떠올렸다. 지금도 그녀의 연구실 한 켠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크레인 선생님의 사진이 걸려 있다.

이화여대에서는 매년 한 차례 영문과 축제가 열렸다. 1968년 서 교수는 윌리엄 인지(William Inge)가 쓴 연극 ‘The Dark at the Top of the Stairs’ 공연에서 남주인공 역을 맡았다. 여름 방학 때 거의 매일 친구들과 만나서 연습한 후에 드디어 무대에 올랐다. 소박한 시골 카우보이가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낙오감을 느끼는 내용을 담은 이 극에서 그녀는 주인공 카우보이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서 교수는 그 때까지의 이화여대 영문과연극 30년 역사에서 제일 남자다운 주인공이었다는 평을 들었다고 한다. 그녀는 “그 때 아내 역할을 했던 친구를 만나면 지금도 왠지 보호해줘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밝게 웃었다. 내면에 숨겨진 끼를 발산할 수 있었던 이 공연은 그녀의 대학 시절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영문학에 재미가 붙은 서 교수는 일생동안 문학에 빠져 살기로 결심했다. ‘학위를 못 받아도 아침에 눈 떠서 잘 때까지 책만 읽고 책에 대한 이야기만 듣고 산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한 그녀는 유학을 떠났다.

미국 남부 조지아 주에 있는 작은 대학에 한국 학생은 서 교수 단 한 명뿐이었다. 어린 마음에 한국의 명예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있다고 생각하며 학문에 매진한 그녀는 체력이 고갈돼 석사 학위를 따고 한국에 돌아와 반 년동안 휴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힘들었던 유학 생활을 통해 그녀는‘동양인이라도 미국인보다 영미문학에 더 나은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미국 국무부의 장학금을 받아 뉴욕 주립 대학으로 두 번째 유학길에 오른 그녀는 문학의 신비로운 매력에 푸욱 빠져 시간을 보냈다. 숨 돌릴 틈 없이 여러 작품을 분석하고 연구하며 첫해를 보낸 그녀는 거의 매일 밤을 하얗게 지새웠다. “문학은 세상과 인생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내게 무궁무진하게 놀랍고 감동적이고 몸서리쳐지는 인간의 내면을 엿보게 해준 요술지팡이였다”고 말하는 그녀는 책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서 교수는 1978년에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당시에는 외국에서 영문학으로 학위를 받은 한국 사람은 10명도 채 되지 않았었다.

서 교수는 자신에게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대학에 진학한 후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조금 더 일찍 삶의 목표를 세우고, 준비하며 살았더라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좀 더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보고 현명하게 자신의 삶을 꾸려나갈 것을 당부했다. 또한 자신이 문학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았고 내적으로 풍성한 삶을 사는 것처럼, 모두가 전공 분야에서 자신의 삶의 수단뿐 아니라 삶의 길, 삶의 벗을 발견하는 행운아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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