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랜만에 일본의 천년고도인 교토(京都)를 다녀왔다. 나에게 교토여행은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첫 번째나 다름이 없다. 20 여 년 전 처음으로 교토를 방문했을 때에는 공식적인 학술회의가 끝난 후 반나절 밖에 교토를 둘러 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공식행사인 교토대학 방문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이틀 동안의 교토 일원 관광길에 나서 청수사(淸水寺)를 비롯해서 팔판탑(八坂塔), 금각사(金閣寺), 니조성의 니노마루 궁전, 펑안신궁(平安神宮) 등 여러 유적지들을 돌아보았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유난히 눈에 많이 띄는 것은 일본인들이 액운을 면하거나 복을 빌기 위해 절과 신사를 찾아 와 참배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사찰에 가면 의례히 대웅전 한 가운데에 부처님을 모셔 놓고 있는데, 일본의 절에서는 부처님이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부처님보다는 여러 가지 소원을 적은 흰 종이들이 매 달려 있는 나무 가지들이나 종을 울려 신에게 소원을 비는 장소에 사람들이 더 많이 모여 있었다. 이런 풍경은 절이나 신사나 별로 달라 보이지 않았고, 심지어 절 안에 작은 신사가 함께 있는 절도 있었다.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교토시내에만 5백 여 개의 절과 천오백 여개의 신사가 있다고 한다. 교토 사람들은 빌어야 할 소원이 얼마나 많기에 그토록 많은 절과 신사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과연 일본인들은, 특히 교토 사람들은 그렇게 많은 사찰과 신사를 필요로 할 만큼 ‘종교적’인 사람들인가? 하지만 우리를 안내한 가이드는 그와 같은 일본인들의 기복행위가 깊은 신념에 바탕을 둔 종교적 행위이기 보다는 일상적인 생활의 습관이거나 문화적 관습에 더 가까운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미국의 종교사회학자인 로버트 벨라와 그의 공저자들이 지은 저서의 제목인 ‘마음의 습관’(Habit of the Heart)이라는 말이 얼핏 떠올랐다. 그리고 그 책의 부제가 ‘미국인의 생활에서의 개인주의와 관여’(Individualim and Commitment in American Life)라는 것도 함께 떠올랐다. 이들 사회학자들은 미국적 생활양식의 핵심이 개인주의라고 보았지만, 그와 동시에 미국인들은 자신들이 몸담아 살고 있는 공동체의 일에 대해서 높은 관심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도 하는 관여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였으며, 그와 같은 미국인의 생활양식 또는 문화적 특성을 그들은 ‘마음의 습관’이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일본인들의 다신교적인 기복신앙과 기복행위도 일본인들의 ‘마음의 습관’으로서의 생활양식 또는 문화적 특성의 하나로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그와 같은 문화적 특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기독교와 같은 유일신을 신봉하는 종교가 좀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실제로 우리 일행이 이틀 동안 교토와 오사카, 고베 등을 돌아보는 동안 자그마한 천주교 교회당 하나와 도심속 어느 건물 이층에 자리 잡은 작은 개신교 교회 하나를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교토 시내를 둘러보는 동안 우리의 관광 가이드는 교토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또 한 가지 재미있는 말을 들려주었다. 일반적으로 일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서 초대를 받으면 세 번 정도 사양을 하지만, 교토 사람들은 다섯 번 쯤 사양을 하다가 여섯 번째에야 초대를 받아들인다고 한다. 그만큼 교토 사람들은 한때 일본의 수도였던 유서 깊은 도시의 주민으로서 다른 지역사람들보다 더 높은 긍지를 지니면서 전통을 존중하고 예절을 숭상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과연 우리 한국 사람들은 이웃이나 친구의 초대를 받으면 몇 번이나 사양한 후에 그 초대를 받아들일까? 하고 혼자서 생각해 보았다. 아마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한번쯤은 사양할지 몰라도 두 번째쯤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으면 초대에 응할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처음 한번은 초대하는 사람이 썩 내키지 않으면서도 체면치례로 초대할 수도 있기 때문에 초대를 받은 쪽에서도 한번쯤은 사양하는 것이 예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마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특별한 이유 없이 두 번, 세 번 씩 사양하는 것은 오히려 초대한 사람에 대해 실례를 범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또한 두 번, 세 번씩 사양하는 사람을 굳이 세 번, 네 번씩 되풀이해서 초대하는 것도 오히려 상대방에게 실례가 된다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점에서는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 더 합리적이고, 일본 사람들의 체면치례가 좀 지나치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행 중 한 사람인 K교수는 일본인들의 체면과 예절에 대해 흥미 있는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가 일본의 어느 대학에 일년 동안 교환교수로 가 있을 때 밤늦게 까지 연구실을 사용하는 관계로 이런 저런 신세를 진 학교 수위 한 분에게 고맙다는 인사로 꽤 값나가는 선물을 드린 일이 있었는데, 그 후 그 분이 그 분의 형편으로는 상당한 무리를 하면서까지 꼭 비슷한 값어치의 선물로 답례를 하는 것을 보고 오히려 그분에게 공연한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 일이 있었다고 하였다.
아마 이처럼 일본 사람들이 유난히 다른 사람에게 신세를 지지 않으려고 하고 예절과 체면을 중시하는 것도 일본인들의 ‘마음의 습관’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고 스스로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라는 일본인들의 체면의식은 인류학자인 루스 베네딕트가 말한 바와 같이 일본의 문화가 이른바 ‘수치심의 문화’(shame culture)에 속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치심의 문화는 비단 일본문화만의 특성이 아니다. 미국 사회학자 대이비드 리즈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사회성원들이 규범을 따르게 하는 심리적 기제에는 죄의식과 수치심의 두 가지가 있다. 기독교적인 전통을 지닌 서구사회에서는 규범을 어기는 행동을 했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다는 죄의식을 갖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유교문화권에서는 사람들이 규범을 어기는 행동을 했을 때 죄의식보다는 이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종교적인 율법이나 실정법보다는 체면과 염치와 예절을 중요시하는 한국, 일본, 중국 등 동양의 유교문화권에서는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죄의식의 문화’(guilt culture)가 아닌 ‘수치심의 문화’가 발달한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한국인들도 분명히 일본인들만큼은 아니더라도 체면을 중시하고 예절을 존중하는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은 그밖에 또 어떤 마음의 습관을 가지고 있을까? 우선 제일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무엇이던지 ‘빨리 빨리’ 서두르는 습관이다. 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 특히 양반들의 느릿느릿 걷던 걸음 거리를 생각하면, ‘빨리 빨리’는 우리의 전통적인 문화적 특성이라기보다는 광복 후의 급속한 사회변동과 60년대 이후의 급속한 압축성장의 결과로 형성된 마음의 습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요즘 한국인들의 ‘빨리 빨리’는 외국인들에게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특성으로서 보다는 오히려 한국인들의 동태성, 즉 ‘다이나믹 코리아’의 한 특성으로 인식되는 면이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즘 일본, 중국, 대만, 동남아시아 등 여러 나라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드라마들이 지닌 특성 중의 하나로 흔히 지적되는 것이 한국인들의 가족주의적 가치관이다.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면 한국이 매우 현대화된 사회이면서도 부모와 자녀, 형제사이의 가족관계가 대단히 긍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 다른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에게는 매우 부럽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물론 가족간의 갈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부모에 대한 효성이나 형제간의 우애와 같은 전통적인 가족 가치가 한국에서는 잘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가족주의도 한국인들이 지닌 긍정적인 마음의 습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이번 여행 중에 만난 교토대학의 한 일본인 교수는 요즘 일본 청소년들이 부모에게 잘 순종하지 않고 사회에 나아가서도 예절과 질서를 잘 지키지 않는다고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지하철을 타 보면 젊은이들이 노인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일본에서는 이제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게 되었다고 한탄한다. 하지만 내가 교토의 관광지에서 본 일본의 청소년들은 여전히 질서도 잘 지키고 예절도 잘 지키는 착한 학생들로 보였는데, 일본의 큰 도시에서는 아마 일본 젊은이들의 마음의 습관들이 조금씩 바뀌어 가고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꼭 일본인들에게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나라의 모든 문화는 환경이 바뀌면 그 마음의 습관을 바꾸어 가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은 그 변화의 물꼬를 최대한 바르게 잡아가는 일일 뿐이다.*(고려대 명예교수, 사회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