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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 방어를 일본의 안전에 중요하다는 정도로 보느냐, 사활이 걸린(Vital) 문제라고 아주 심각하게 보느냐에 따라 한국사람들이 일희일비하던 때가 있었다. 북한의 대남도발이 기승을 부리던 1960년대 후반과 베트남이 적화통일되던 70년대 중반이었다. 미국관리가 한국방어는 일본의 안전에 긴요하다(Essential)는 말 한마디만 해도 한국신문들은 1면에 대서특필했다.
그 뒤 한반도 사정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사회주의체체가 무너지고 남북한의 국력이 역전됐다. 미국의 차관보는 고사하고 장관이 한국방어의 중요성을 말하는 데 어떤 표현을 쓰든 한국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그러나 우리의 이런 "새로운 기분"에도 불구하고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 가지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안보는 여전히 한.미 동맹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안보는 여전히 미국에 의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공화당 전당대회 후보 수락 연설에서 이라크에 군대를 보내 "모든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아 마땅한" 동맹국들의 이름을 열거하면서 한국을 쑥 빼버린 것이 충격적인 이유도 이런 현실 때문이다. 이라크에 몇백명 수준의 군대를 보낸 나라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3600명을 보낸 한국의 이름은 부르지 않았다. 한국은 "모든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을 자격을 잃었단 말인가. 우리가 어떻게 파병한 군대인가.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부시 대통령이 열거한 동맹국의 이름에서 한국이 빠진 것은 실수였다고 해명해 오고, 청와대와 정부는 라이스의 해명을 정답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미국정부의 그런 해명은 설득력이 없다. 아무리 공화당의 정치행사라고 해도 연설을 한 사람은 대통령 부시다. 그의 연설문을 작성하는 데는 백악관과 공화당의 초일급 스피치 라이터들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단어 하나 구두점 하나 허투루 들어갈 틈이 없다. 연설이 국내외에 미칠 파장도 치밀하게 저울질된다. 뉴욕 타임스는 두 사람의 집필자를 소개했는데 그들이 초고에서 한국 이름을 뺐다면 그들의 배후에서 의견을 내고 원고에 손질을 한 다른 사람들도 그들의 그런 판단에 동조한 것으로 보인다.
60년대와 70년대 같으면 한국에 공포 분위기(Panic)를 유발했을 사건이다. 애치슨 연설의 망령을 보는 것 같다. 트루먼 정부의 국무장관 딘 애치슨은 1950년 1월 워싱턴의 내셔널 프레스 클럽 연설에서 미국의 아시아 방위선은 알류산열도~일본~오키나와~필리핀을 잇는 라인이라고 선언했다. 한국은 빠졌다. 부시 연설처럼 생략(Omission)은 언급(Comission) 못지않은 메시지를 전달한다. 애치슨 발언은 김일성에게 보내는 남한침공의 초청장이 됐다.
부시가 연설에서 한국 이름을 뺀 것은 주한미군을 줄이고, 북한 양강도 폭발사고에 관한 위성정보를 한국에 제공하고 싶지 않고, 한국의 핵 관련 실험을 뒤늦게 문제 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격려의 미소를 보내는 미국의 입장과 맥을 같이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평등주의적 좌파성향은 부시의 신자유주의와 코드가 맞을 수 없다. 미국은 한국의 자주파와 촛불시위자들의 친북.반미적 언행에 마침내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들도 덩달아 멀어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텔레비전에서 한국의 반미시위를 보다가 "제기랄, 미군 빼!"라고 소리친 것이 주한미군 감축의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는 말은 시사하는 바 크다. 열린우리당의 386의원들은 부시의 연설 하나에 일희일비할 것 없다고 말한다. 그것은 한국이름 생략의 저변에 깔린 워싱턴의 큰 분위기를 못 보는 근시안적 반응이다. 국제사회는 철저한 잇속의 사회다. 미국이 멀어지면 다른 나라들도 덩달아 한국에서 멀어질 수 있다. 미하엘 가이어 독일대사가 한국은 주변국 및 미국과의 관계에서 "거의 홀로 서 있는 것 같다"고 한 말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자주는 이상이요, 이상은 일거에 성취될 수 없다. 남북관계의 진전과 주변국들과의 관계와 국력 키우기의 틀을 벗어난 자주는 고립을 자초하는 모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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