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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알아야 미래가 보인다
신봉승   |  2006-07-24 09:39:56  |  조회 2870 인쇄하기
1. 역사와 역사인식

역사가 되풀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뜻밖으로 많다.
찰스 다윈의 진화론進化論에서 말하는 약육강식, 약자도태, 적자생존의 이치는 역사의 틀이나 조금도 다름이 없기 때문이다. 19세기에 있었던 유럽강국의 동진東進 현상을 사회진화론社會進化論에 비견하는 것도 그러한 까닭이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는 것처럼 나라에도 국격國格과 같은 것이 있다. 지혜롭고 너그러운 사람이 타인으로부터 존경을 받는 것처럼, 나라도 지혜롭고 너그러워야 주변의 국가들로부터 신임을 받는다. 그 지혜롭고 너그럽게 되는 조건은 역사인식을 얼마나 소중이 하느냐에 따라 그 크기가 달라진다. 그러므로 국력이랄지, 힘의 뒷받침이 없는 나라의 외침은 아무리 옳은 주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사되는 일이 없고, 성사는 고사하고 나라도 온전하기가 어렵다.

영국의 경제학자이면서 철학자, 사회학자로 명성이 높았던 John Stuart Mill은 그의 명저 <자유론>에서 극명하게 말하고 있다.

-국가의 가치는 필경 그 국가를 조직하고 있는 국민의 가치다. 국가의 가치는 긴 눈으로 보면 결국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개인의 가치에 의해서 결정된다. 왜소矮小한 인물을 가지고서는 위대한 사업은 결코 성취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왜소’는 몸집이 작다는 뜻이 아니라 ‘변변치 못하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변변치 못한 백성들이 모여 사는 나라는 결코 선진화될 수 없다는 뜻이 된다.

역사를 읽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읽은 역사에서 역사인식을 세우고, 그 역사인식을 몸에 배게 하는 일은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이지만, 국가에도 어려운 일이다. 가령 부정부패를 하다가 적발되어 견디기 어려운 고초를 당하는 가까운 친구를 보면서 혀를 차던 사람이 그 친구와 꼭 같은 일로 옥고를 겪는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가 있었다. 역사인식의 부족이 불러들이는 재앙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웃나라 일본과 같이 한국이나 중국과 같은 주변 국가에 수많은 고통을 안겨다 주었으면서도 그런 일에 대한 반성은 고사하고 마치 그런 악독했던 일들이 정당했다고 생각하거나, 주장하고 있다면 그 원인은 역사인식이 부족한데서 기인된다. 일본제국이 조선강토를 강점하였을 때,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의 한가운데에 조선총독부의 청사를 지었다는 사실, 순종황제의 거처인 창덕궁과 이웃한 창경궁에 동물원을 만들어놓고 그 이름까지 창경원昌慶苑으로 바꾸면서 황제의 소일거리로 삼게 한다는 그 발상이 참으로 한심하고 경박하지를 않았던가.

나치스 독일이 프랑스를 점령하였을 때 프랑스의 왕궁이었던 베르사유 궁전의 한 가운데에 점령군 사령부의 석조건물을 짓기는 고사하고 그 문짝 하나도 함부로 하지를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나치스 독일이 베르사유 궁전에 점령군 사령부를 석조로 지었다면 유럽인들이 그들을 용서하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그 해답은 간단하게 나온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국에 진주한 점령군 사령관 맥아더 원수의 권한은 그야말로 일본이라는 나라를 마음대로 난도질해도 괜찮을 만한 막강한 권한이었어도 패전국 천황이 기거하는 궁성 안에 점령군 사령부를 짓기도 않았거니와 그 언저리에 접견실조차도 두지를 않았다. 이런 사실과 비교해 보아도 일본인들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경박한 가를 알 수가 있다.

역사인식은 역사를 읽는 일과 무관하다. 아무리 진지하고 소상하게 역사를 읽을 줄 알아도 역사인식을 바로 세우지 못한다면, 역사 그 자체가 공염불이 된다. 그러므로 역사인식은 모든 도덕적 기능道德的 機能의 핵심일 수밖에 없다. 역사를 무엇 때문에 읽는가. 단순히 옛 날에 있었던 일을 알기위해서 읽는가. 아니다. 역사를 읽는 것은 다음시대를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역사인식을 배제한 역사란 허수아비나 다름이 없다.


2. 긍정적인 역사관이 先進化를 앞당긴다.

지금 우리가 나갈 길은 오직 선진화先進化뿐이다. 군대가 강하다 하여 선진화가 되는 것이 아니다. 핵核이 있다고 하여 선진화가 되는 것은 더욱 아니다. 선진화가 되는 기본조건은 지식인집단知識人集團이 건재하여야 한다. 건전한 지식인 집단이 있어야 나라의 격格이 높아진다. 조선왕조가 장장 500년 동안 사직社稷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의 지배층인 선비(知識人) 정신이 전재하였기 때문이다.
어니스트 사토의 친구이기도 했던 영국인 지리학자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여사가 1894년부터 4차례에 걸친 조선방문을 결산하는 책 「조선과 그 이웃나라들」을 읽으면 당시 참담했던 조선의 현실을 짐작하게 된다. 그러나 낯선 나라를 바르게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은 것도 당연하다.

-관아 안에는 조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들이 우굴 거렸다.

-조선에서 관직을 차지하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흔히 그러하듯이, 왕은 계속해서 ‘주십시오’ 만을 요구하는 측근자와 탐욕스러운 기생동물들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의 실상을 잘 못 이해한 짧은 식견이라지만, 이쯤 되면 망발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벽안의 여성이 읽어 내린 이 같은 조선 관아의 풍속을 시골관아의 아전들을 ‘조선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이라고 정의한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나 두 번째의 인용문은 잘못된 글임이 분명하다.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렇게 가난하면서도 5백년이라는 장구한 세월동안 국권을 유지할 있었던 것은 첫째 지식인 집단이 건재하였고, 둘째 권력의 상층부가 부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전제로 한다면 반론은 아주 간단하게 성립된다. 황희, 맹사성, 이퇴계, 이율곡, 유서애, 조중봉, 송우암, 박난계, 최면암 등 이렇게 적어가자면 끝이 없을 조선의 명현明賢들을 어찌 기생충으로 비하할 수가 있는가. 오히려 그들 지식인집단이 건재하였기에 조선왕조는 끊임없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지독하게 가난하면서도 500년 사직을 유지할 수가 있었질 않았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땅의 집권층의 일부 지식인들은 위에 인용된 비숍 여사의 잘못된 기록을 바탕으로 오늘의 기득권층旣得權層을 당시의 부패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개혁의 대상이라고 소리친다. 아는 것이 병이라는 식자우환識字憂患도 이쯤 되면 중병이 아닐 수 없다.
전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재임 중에 가장 유념하였던 것이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 미국을 완벽하게 이해하려고 노력했다는 고백을 이 땅의 정치인들은 가슴에 새겨두어야 한다.


3. 오늘의 현실과 미래의 歷史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미국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여론조사에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 가운데서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다음으로 훌륭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떻게 해야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빌 클린턴 대통령의 대답은 정말로 음미해 볼만하다.

첫째, 자신이 이끄는 나라를 완벽하게 이해해야 한다. 역사의 조류속에서 나라가 어디쯤에 있는지를 깨닫고, 그 바탕 위에서 국민들을 통합하고, 역량을 결집하여야 한다.

둘째, 세계가 어디로 가고 있으며 더 번영된 나라와 세계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셋째, 세계에 대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은 전 세계의 절반 이상이 민주적인 정부의 형태를 갖추고 있고, 나머지 비민주적인 국가도 이미 상당수는 민주주의 논리이나 자유경제 및 開放무역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대통령은 세계적 사안들에 대해 책임감을 공유해야 한다.

역사인식에 투철하다고 밖에 할 수가 없으리만큼 완벽한 대답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명심해야 할 대목임도 물론이다.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피력한 빌 클린턴의 리더십의 요건 또한 재음미할만하다. 첫째 비전, 둘째 전략, 셋째 실천력, 넷째 인내심을 들었다. 이 네 가지는 빌 클린턴 개인의 리더십의 요건이라기보다 국가의 미래를 정하는 역사인식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2005년 초, 미국 CIA(중앙정보국)의 중앙정보위원회가 15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는 리포트를 발표하였다. 2020년 중요 국가들의 경제 · 국제정치 · 기후변화 등 다양한 전망을 담고 있다.

거기에 포함된 내용을 살펴보면…, 세계 경제는 80% 성장하고, 1인당 수입은 50% 증가한다. 세계화의 과실은 중국 · 인도 등 신기술 개발 · 채택국가로 편중되고 유럽·미국은 기술경쟁에서 뒤진다. 저임금, 노동력의 이동증가로 선진국 중산층이 위협받는다.

중국 · 인도가 세계 강국으로 부상하고 부라질 · 인도네시아의 국력이 유럽 국가들을 추월한다. 석유·가스 등의 수출로 러시아가 강국으로 다시 진입하고, 일본은 중국에 대항 또는 편승 중 택일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다.

이 같은 전망과 함께 미국의 당면과제도 면밀하게 검토하고 있다. 그러한 조건으로 기후의 변화, 이민의 증가, 천연자원과 환경, 과학과 기술, 세계정세와 세계화 등을 예시하였다.

한 나라의 흥망은 10년 또는 20년 뒤 세계의 변화를 정확이 예측할 있는 능력에 달려 있다. 중·장기 예측을 하고 그 전망을 토대로 지금부터 그 대비책을 세워야 냉혹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CIA는 미래학자 · 역사학자 · 과학자 등 각계 전문가 25명으로 팀을 짰다. 그리고

1, 안티 아메리카니즘
2, 이민의 증가
3, 전쟁의 본질과 변화
4, 기후의 변화
5, 생명공학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한 주제로 2년간 4대륙 6개국을 돌며 25차례의 국제회의와 워크숍을 열어서 얻어낸 소중한 결과라는 사실에 우리는 눈 떠야 한다.

역사를 읽는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역사를 읽으면서 역사인식을 축출하지 못한다면 국가의 미래를 설정할 능력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2005년 독일 최대은행 도이체방크는 2006년부터 2020년까지 15년간 아시아 국가들의 발전 속도와 전망을 예측하는 리포트에서도 역시 “세계 경제발전은 인도,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이 주도하면서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서 그 성장률도 다른 지역에 비해 크게 높을 것”라고 예측하였다.

도이체방크가 32개 주요 국가를 대상으로 한 報告書에서 향후 1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나라로 인도(5.5%)를 꼽았다. 이어 말레시아(5.4%), 중국(5.2%), 태국(4.5%), 터키(4.1%), 한국은 연평균 3.3%의 성장률로 32개국 가운데 8위, 日本은 1.3%로 31위였다. 7위에 오른 인도네시아(3.5%)까지 포함하면 10위 안에 아시아권 국가가 6개국이나 들어있다.

2020년 1인당 GNP(국민소득) 전망치는 미국이 5만 달러로 1워였고, 韓國은 2만 3천 달러로 21위였다. 세계 1, 2위의 인구대국인 중국과 인도는 각각 9000달려와 5000달러로 29위와 31위가 될 것으로 내다보았다.

한편, 한국개발원(KDI)의 보고서는 그 담겨진 내용이 매우 비관적이어서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그 대표적인 지적이 한국의 전체 산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의 40%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 점이다. 미국의 취업자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을 100이라고 했을 때 세계의 여러 나라의 예상치는 다음과 같다.

일본 120.6, 프랑스 91.5, 독일 87.1, 이탈리아 74.1, 영국 68.8, 한국 34.8 으로 나타나 있다. 또 반도체, 휴대폰, LCD 등 일부 산업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중국의 도전이 실로 만만치 않다.
한국의 수출 품목가운데서 이미 74%가 중국과의 경쟁력에서 뒤지고 있으면서도 산업여건 또한 경쟁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이미 오래 전에 발표한 세계은행의 예측도 위에 인용한 것도 별로 다르지 않다. 세 예측이 모두 2020년을 기준으로 했다는 사실은 시사 하는 바가 참으로 크다.

왜 하필 2020년인가. 이 해답도 아주 간단하다. 세계의 미래학자들이 21세기가 맞는 첫 번째 격동의 시점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여러 연구기관이 2020년을 전망하고 있다면 당연히 우리도 그때를 전망해 보아야 한다. 미국 예일대학의 캐네디 교수가 동북아시아의 정세를 말하면서 한국의 입지를 지적하는 대목은 우리를 화나게 한다.
“한국은 네 마리(미, 일, 중, 러)의 거대한 코끼리에 둘러 쌓여있어 이들을 화나게 하면 상처를 입거나, 심하면 밟혀서 죽을 수도 있다.”
화가 난다고 하여 아니라고 거부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은 문제를 우리 스스로 예측하는 역사인식이 있어야 한다. 보다 구체적인 사례는 전문연구기관에 맡기면 될 것이지만, 도무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되었건, 2020년에도 대한민국은 건재할 것이지만, 나라를 운영하는 주체는 새로운 세대에 맡겨져 있을 것임은 분명하다. 지금의 40代 후반이나 50대가 대부분 은퇴하였다면 대체 누가 그때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이끌어갈 것인가. 이 해답도 아주 간단하게 나온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그때의 30代가 이끌어 갈 것이 분명하다.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사람은 없을 줄로 믿는다.

자, 그때의 30代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놀라지 말라, 초등학교 상급반 어린이들과 중학생들이다. 이 유소년들에게 2020年代의 세계정세, 그리고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정확하게 인지시켜 놓지 않고서도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하다. 그렇다면 지금 시급히 서둘러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이겠는가.

2020년대의 30대들이자 대한민국의 주역들인 초등학교 상급반의 어린이들에게, 그리고 중학교의 학생들에게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주자면 국사교육을 강화하는 일이 아니고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역사인식을 깨우치게 하고 심어주는 일임은 말할 나위도 없질 않은가.

초, 중등학교에서 독립된 ‘국사과목’을 없애버리고, 사법고시와 행정고시에서 ‘국사과목’을 없애버리고서도 이 나라의 정체성을 확립할 수가 있다고 보는가. 국사공부를 하지 않고서도 대학에 진학할 수 있는 나라가 한국 아니고 또 어디에 있는가.

정치인들이 자신의 모국을 완벽하게 이해해야 하는 것은 나라의 정체성을 바로 이끌어가지 위해서도 불가피한 일이다. 법조인들이 모국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릴 수가 없다. 이 엄연한 현실을 놓고서도 ‘국사교육’을 강화하자는 지식인들이 없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지식인집단이 병들고, 지식인집단이 앞을 가리지 못하면 나라는 망하게 되어있다. 나라의 선진화가 곧 국민들의 정체성이 확립되는 데서 출발되기 때문이다.

정치의 선진화도 다를 것이 없다. 정치가 선진화되기 위해서는 지식인집단의 도덕적 건재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 외의 다른 일에 매달린 겨를이 있는가. 없다, 나는 단호히 없다고 확언한다.

위대한 리더 세종대왕의 역사인식으로 이 글의 매듭을 삼고자 한다.

“대저 政治를 잘 하려면 지난 시대의 治亂의 자취를 살펴보아야 하고, 지난 시대의 治亂의 자취를 살피기 위해서는 歷史를 상고하는 것이 최선이다.”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 추계 영상문예 대학원 대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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