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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에 총성이 멎으려면
김영희   |  2006-09-14 11:48:15  |  조회 2532 인쇄하기
똑똑한 콘돌리자 라이스가 계산된 실언을 했다. "레바논 사태는 새로운 중동 탄생의 산통(産痛)이다." 아랍세계에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새로운 중동'은 총리를 지낸 이스라엘 원로 정치인 시몬 페레스가 1993년에 쓴 책 제목이다. 페레스는 그 책에서 유대인과 아랍인이 경제 관계를 발전시켜 평화를 증진하자는 주장을 폈다. 흠잡을 데 없는 말로 들린다. 그러나 아랍인은 그런 주장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점령지에서 철수하지 않고 아랍세계를 계속 지배하려는 음모라고 경계한다.(파이낸셜 타임스 8월 3일)

라이스가 새로운 중동의 아이디어를 페레스의 책에서 얻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파이낸셜 타임스가 인용한 팔레스타인 일간지 알아얌은 새로운 중동이라는 발상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의 저항을 제거하고 중동에서 패권을 행사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뉴욕 타임스의 중동 전문가 토머스 프리드먼은 다른 각도에서 라이스의 발언을 비판했다. 그는 중동을 방문 중인 라이스가 시차 조절이 덜 된 상태에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라고 비꼬고는 이렇게 썼다. "그랬으면 오죽 좋으랴. 실제로 우리 눈앞에 전개되고 있는 것은 석유와 파괴적인 무기를 동반한 옛 중동의 부활을 위한 산통이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스라엘 편애와 이란 및 시리아와의 대화 거부가 레바논 사태가 악화된 배경이다. 적게는 1만 명에서 많게는 3만 명으로 추산되는 헤즈볼라는 이란에서 무기를 지원받는다. 시리아도 헤즈볼라를 재정적으로 지원한다. 부시는 레바논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이란과 시리아를 대화의 상대에서 제외했다. 그들 두 나라가 이스라엘과 적대하고 테러단체들을 지원하고 폭정을 펴는 나라라는 이유에서다.

부시 정부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의 공격에 과잉대응을 하고 있다. 57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낸 카나 공격에 세계가 경악했다. 시아파인 헤즈볼라의 궤멸을 마음속으로 기원하는 수니파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의 여론까지 이스라엘 규탄과 헤즈볼라 동정으로 바뀌는 분위기다. 본래 친미적인 푸아드 알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도 헤즈볼라가 이스라엘로 하여금 레바논에서 철수하게 만든 조직이라고 찬양했다. 이스라엘의 막강한 군사력 앞에서도 헤즈볼라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되고 있다. 레바논 사태는 희생자를 더 내고 국제부대의 투입으로 잠정 수습될 것이다.

그러나 레바논 사태는 팔레스타인 사태와 물려 있고, 팔레스타인과 이라크와 이란 핵까지 포함한 중동문제 전체의 틀을 떠나서는 영구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문제는 미국의 중동정책으로 회귀한다. 그런데 부시 정부의 중동정책은 네오콘(신보수파)과 기독교 우파인 복음주의 세력에 많이 좌우된다. 네오콘 지도부의 80% 이상이 유대계이고, 복음주의자들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창세기 15장 18절) 그 후손들에게 준 가나안 땅에 세운 이스라엘을 지키는 것을 기독교도의 사명으로 믿고 있으니 부시 정부 중동정책의 큰 방향이 어디로 잡힐 것인지는 처음부터 분명하다.

이라크 전쟁은 절반의 성공만 거뒀다. 이란의 핵게임은 북한보다 성공적이어서 미국의 처지를 어렵게 만든다. 민주주의 실험은 하마스 같은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의 집권을 돕고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집트 같은 우방들을 불안케 했다. 미국이 상대하지 않는 시리아는 이스라엘에 계속적인 위협으로 남아 있다. 부시가 머릿속에서 하나님과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지우고, 미국보다 이스라엘의 이익에 봉사하는 인상을 주는 네오콘들을 멀리하고, 북한을 압박하듯 이스라엘을 더 강하게 압박하면서 중동의 현안을 모든 당사자와 논의해 해결하는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으면 중동의 총성이 영구적으로 멈추지는 않을 것이다. 로드맵의 중심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중동의 탄생은커녕 역사의 수레바퀴가 거꾸로 돌아 프리드먼이 말한 전근대적 중동의 망령을 부를 것이다.<국제문제 대기자>
-2006.8.4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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