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고이즈미 잊고 아베 시대 대비하자
김영희   |  2006-09-14 11:43:05  |  조회 2886 인쇄하기
독일 문호 괴테의 말마따나 바보와 싸우면 똑똑한 사람도 바보가 된다. 교양 없고 편협하고 국제정치에 무지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 일본 총리를 상대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가지고 말싸움을 해서 얻을 게 없다. 일본 속담 "바보는 한 가지밖에 모른다(바카노 히토쓰 오보에)"는 고이즈미 같은 인간을 두고 한 말 같다. 고이즈미가 보수.우익의 표를 모으기 위해 야스쿠니 참배를 강행한다는 해석은 잘못이다. 그의 몸속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폐쇄적 애국주의와 군국주의의 뜨거운 피가 흐른다. 그는 2003년 가고시마의 특공대 기념관에서 눈물을 흘린 사람이다.

후지와라 하지메가 '고이즈미와 일본의 병리'라는 책에서 정리한 고이즈미의 어록을 보면 그는 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표를 잃는 한이 있어도 야스쿠니를 참배할 사람임을 알 수 있다. 그는 2001년 4월 자민당 총재선거를 위한 토론에서 총리에 취임하면 "어떤 비판이 있어도" 8.15 전몰자 위령제의 날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고집스럽게 약속을 지켜 왔다. 그는 전몰자들의 고귀한 희생 위에 오늘의 일본이 있음을 잊지 말자고도 했다. 총리가 된 그는 한국의 옛 일본군 유족들이 야스쿠니 참배에 위헌소송을 제기하자 "말이 안 되지, 세상엔 이상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야"라고 냉소했다.

고이즈미는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전 총리와 대조적이다. 나카소네도 1985년 8.15에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했다. 한국과 중국이 강력히 항의하자 관방장관을 시켜 근린제국의 국민감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공식 참배를 삼가기로 했다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중국의 후야오방(胡耀邦) 총서기에게 편지를 보내 야스쿠니 참배는 중대한 외교문제라고 시인하고 공식 참배를 중단했다.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는 나카소네의 외교적인 약속을 위반하는 행위지만 그런 걸 손톱만큼도 개의치 않는 것이 고이즈미의 무작한 스타일이다. 자기도취에 빠진 시골 무사(이나카 사무라이), 사자의 갈기머리 같은 헤어스타일을 하고 때와 장소 안 가리고 경망스럽게 춤을 추는 소영웅주의자가 총리 자리에서 사라지는 것이 반가울 뿐이다.

이제 우리는 고이즈미를 잊고 넘어서야 한다. 그가 퇴임을 목전에 두고 야스쿠니를 방문한 동기는 두 가지로 보인다. 하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차기 총리에게 야스쿠니가 상징하는 일본의 애국주의와 평화헌법의 개정을 통한 재무장의 중요성을 확인시키는 것이다. 둘은 자기는 남이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은 유치한 자기현시(自己顯示)다. 그러나 총리로서의 그의 마지막 야스쿠니 참배는 처량한 백조의 노래로 끝날 것이다. 아베 차기 총리는 당연히 고이즈미의 그늘을 벗어날 방도를 찾고 있다. 신사 참배에도 신중한 태도를 취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이즈미의 돈키호테 같은 자기현시에는 우리가 신경 쓸 것 없다.

중국은 오래전에 아베 시대에 대비하는 준비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이즈미의 8.15 신사 참배에 대한 외교적 대응에서도 중국의 전략이 보인다. 한국은 외교부 차관이 주한 일본대사를 불러 항의하고 주일대사가 일본 외무차관을 항의 방문했지만 중국은 8.15 이전에 벌써 주일대사를 본국으로 소환했다. 신사 참배에 대한 항의의 뜻 외에 차기 총리에게 보내는 강력한 메시지다. 다음달이면 총리가 바뀔 것이기 때문에 주일대사의 장기 본국체류로 잃을 것이 없다는 계산에서일 것이다.

일본의 총리 교체는 한.일 관계 회복의 기회다. 청와대가 A급 전범을 분사(分祀)해도 총리의 참배에 반대한다고 말한 것은 성급했다. 야스쿠니가 예사 위령시설이 아니라 일본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시설인 것은 분명하다. 그래도 한.일 관계는 야스쿠니의 벽을 넘어야 하는데 A급 전범들의 위폐를 제3의 시설로 옮기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 말고는 묘안이 없지 않은가. 주는 것 없이 받기만 하는 외교는 없다. 당분간 태도를 모호하게 갖고 아베를 연구할 때다.<국제문제 대기자>
-2006. 8. 18일자 중앙일보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432 돌진의 맹장 후퇴의 영웅 성적표  김영희 06-09-14 2764
431 문화향수권의 신장  46  신봉승 06-09-14 4757
430 9/11 테러 5년의 결산  진덕규 06-09-14 2617
429 스피드의 충돌, 방향의 충돌?  김병주 06-08-25 2711
428 대학의 순위 매김과 아카데미즘의 소멸  진덕규 06-09-14 2633
427 고이즈미 잊고 아베 시대 대비하자  8  김영희 06-09-14 2886
426 나라를 버티게 하는 네 가지 덕목  신봉승 06-09-14 3010
425 참여정부 '벼랑 끝 전술'의 실패는 추락이다  서지문 06-10-15 2768
424 카스트로의 80회 생일 : 독재자가 가져다 주는 것은  진덕규 06-09-14 2889
423 교육위원회가 따졌어야 할 것  서지문 06-09-14 2673
3132333435363738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