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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순위 매김과 아카데미즘의 소멸
진덕규   |  2006-09-14 11:42:18  |  조회 2634 인쇄하기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의 순위가 발표되었다. 서구에서는 언론 기관이나 단체들이 매년 7월에서 8월 사이, 즉 대학에서 신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대학의 순위를 발표한다. 올해는 [더 타임스]를 시작으로 해서 상하이의 자오퉁대(交通大)와 [News Week]가 가세하면서 그 분위기도 고조되고 있다. 예전에는 이 일이 [US & World Report]의 독점 사업처럼 여겨졌지만 이제는 여러 곳에서 대학의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그만큼 이 일은 “인기 품목”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번 순위 발표에서 흥미로운 것은, 어느 기관에서는 하버드 대학을 1위로 발표했으나 다른 기관에서는 프린스턴 대학을 1위로 올려 놓았다는 것이다. 조사 항목이 다르고 관점의 차이가 있다 해도 어쨌든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특히 세계 100대 대학의 순위를 보면 유럽의 대학들은 약세를 드러내고 있으며, 아시아의 대학은 일본의 몇몇 대학을 제외하면 거의 전멸 상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감히 한국 대학의 순위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한없이 낯설 뿐이다.

유럽 대학의 문제는

최근 외신에 따르면, 유럽의 대학들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고 한다. 학문 연구의 원류였던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를 이어 받은 아테네 대학도 정부의 대학 개혁에 반대하는 학생들의 시위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시위 주동자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세계화에서 말하는 사유화를 도입한 데 불과하다. 당국자들은 우리 대학을 미국식으로 만들려 한다. ‘너희도 돈을 내라, 공짜 교육은 없다!’ 면서 우리를 대학에서 몰아내려고 한다.” 최근 유럽의 대학들은 급증하는 대학생 수와 정부의 보조금 삭감, 유명 교수들의 미국 이주, 캠퍼스에서의 정치 투쟁 등으로 심하게 시달리고 있다. 스웨덴과 덴마크는 대학 개혁을 광범하게 추진하면서 대학에 자율권도 부여해 주었고, 정부의 재정 지원도 대폭 늘렸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럽 대학들은 아직도 침체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번에 발표된 자오퉁 대학의 세계 대학 순위 발표를 보면 20위 안에 든 유럽 대학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단 두 곳 뿐이다. 그런데 더 기막힌 것은, 유럽은 지금 지식 산업 분야에서도 미국에 크게 뒤져 있다는 사실이다. 1901년-1950년 사이에는 노벨 학술상 수상자의 73%가 유럽인이었지만 1995년-2004년 사이에는 불과 19%에 지나지 않았다. 유럽 정부의 평균 R&D 예산은 GDP의 2%이지만 미국은 2.6%이고, 일본은 3.2%로 되어 있다. 이것을 보아도 유럽의 대학은 미국 대학에 비해 경제적 기반이 상당히 취약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고전주의자의 항변

유럽의 몇몇 명문 대학들은 대학 순위에 대한 평가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가령 옥스퍼드의 어느 칼리지 학장은 “대학 평가는 상업주의에서 비롯되었다. 대학은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평가 그 자체를 비판하는 곳이어야 한다.”고 항변하기도 했다. 또 “외국 유학생 수와 외부에서 받은 연구비 프로젝트, 몇몇 잡지에 발표된 논문의 수 그리고 외국 교수의 점유 비율 등으로 대학의 순위를 매기는 일이야말로 지극히 미국적인 상업주의일 뿐”이라고 비판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대학은 그 나름의 학풍이 있어야 하며, 그것에 따라 지식인을 교육하는 곳이어야 한다. 즉, 대학이 고전 교육을 무시한 채 단지 취업 기관으로만 전락되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대학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의 중핵은 법과대학원(Law School)이나 경영대학원(Business School)이 아니라 학부대학(University college)이어야 하며, 이렇게 되어야만 고전적인 대학일 수 있다고 단언한다. 또한 플라톤이 외면되고 그리스어와 라틴어가 백안시되는 대학은 더 이상 대학일 수 없다고 강변한다.

고전 대학과 글로벌 대학

오늘 한국의 대학도 이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미국과 같은 “글로벌 대학”으로 지향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유럽의 “고전 대학”을 고집해야 할 것인지. 그러나 한국의 대학에서는 이러한 구분마저도 무의미해졌다. 한국의 대학은 고전주의를 던져 버린 지 이미 오래되었다. 인문학은 고사 위기를 맞고 있으며, 고전 교육은 소리 없이 사라져 버렸고, 도서관은 취직 시험을 준비하는 기관으로 둔갑해 버렸기 때문이다.

대학별 경쟁력을 외치면서도 정부의 대학 규제는 끝이 없으며, 시장 원칙을 말하면서도 무너지는 대학을 지원하기 위해 국가 예산을 책정하고 있다. 똑같은 형태로 대학생을 선발하도록 규정해 놓고, 제대로 읽히지도 않는 프로젝트에다 연구비를 제공하는 학술 지원 기관이 있는 나라이다 보니 한국의 대학은 고전 대학도 글로벌 대학도 아닌 혼돈의 대학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학생들이 납부하는 등록금으로 학교 캠퍼스를 치장하고, 호텔 같은 대학 건물을 신축하는 것이 유능한 총장을 가름하는 평가 기준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우리의 대학은 세계 대학의 순위 매김을 그저 넋을 잃고 바라보아야 하고, 남의 일로만 여겨야 할 것 같다.-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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