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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에서는 연일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위대들은 “천수이볜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어제도 비가 내리는 거리에서 약 3,000여 명의 시위대가 밤늦게까지 전날 10만 명이 보여주었던 열정을 재연했다. 그들은 천수이볜에 대한 분노의 표시로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르고 그의 하야를 소리 높이 외쳤다.
한때 그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던 바로 그 민중이 이제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 그를 바라보며 타이완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점차 떠나고 있는 것이다. 시위대의 앞줄에 선 어느 젊은이는 “지금 사람들이 절실하게 바라는 것은 친인척의 비리를 감싸기 위해 대통령 궁에 숨어 지내는 대통령이 아니라 민중들의 기대를 충족시켜 줄 수 있 대통령이다!”라고 주장했다. 그가 말한 민중의 기대는 천수이볜의 사퇴였다.
대통령 주변의 비리
천수이볜은 지난 2000년 대통령 선거에서 비 국민당 출신으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어 2004년 선거에서는 재선에 성공했다. 그의 임기는 아직 1년 반이나 남아 있기 때문에 이번 시위가 레임덕 현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들 것 같다. 그는 이번 시위는 골수 국민당원들의 “추악한 행태”라고 몰아붙이면서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에게 하야를 요구하는 것이야말로 반 민주주의적인 행동”이라고 거세게 비난했다.
그에 대한 공세는 지난 달 의회에서 국민당이 그의 하야 결의안을 제기한 후 더욱 고조되었다. 그는 이 결의안의 통과는 막았지만 상당수 국민들의 불만을 해소시킬 수는 없었다. 이번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그의 사위인 차오치엔민(Chao Chien-min)이 증권거래소에서 내부자 거래 혐의를 받고 있는 데에서 비롯되었다. 게다가 그의 부인마저 수뢰 혐의를 받고 있기 때문에 대통령 주변 인물들의 비리는 세간의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는 사태의 다급성을 깨닫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그것으로 사태를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하층 민중의 불만
천수이벤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는 민중들에게 새로운 희망이었다. 그는 가난과 고통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자수성가한 타이완 출신의 신진 정치가였다. 그래서 타이완 하층 민중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감은 유별랐다. 젊은 변호사로, 타이완 독립의 주장자로 그의 인기는 끝없이 치솟았다. 그는 베이징이 주장하는 “하나의 중국”, 즉 타이완도 중국의 일부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타이완 민족주의를 내걸었는데, 이러한 노선도 타이완 사람들에게 신선한 정책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야당인 국민당은 베이징 당국과의 우호적인 연대를 강조하면서 천수이볜을 압박했다. 천수이볜은 헌법 개정을 시도하면서 그것만이 타이완에 합당한 정치 체제의 길이라고 주장했지만 베이징 당국자나 국민당은 헌법 개정이야말로 타이완을 위기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위험 신호라고 공박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그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이었다. 타이완 경제는 천수이볜이 집권하는 동안 조금도 호전되지 않았다. GNI는 $13,000로 지난 5년 동안 그대로 멈춰 있으며, 청년 실업자도 계속 증가하고 있고, 중소기업의 도산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 하층 민중들에게서는 “생활이 어렵다!”는 불만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데, 그 원성은 고스란히 천수이볜에게로 모아지고 있다.
스밍더가 나섰다는 것은
이번 시위의 주도자는 타이완의 유명한 재야 민권 운동가인 스밍더(施明德, Shih Ming-teh)이다. 타이완 출신으로 올해 66세인 그는 21살 때부터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으며, 한때는 천수이볜과 같이 민진당에서 일하기도 했다. 1964년에 [타이완 독립동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1977년에 석방되었지만 그의 투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더 투옥되었으나 그때마다 단식 투쟁을 전개하면서 수감자들의 인간적 처우를 호소하곤 했다.
한때는 의회에도 진출했으며, 1993-1996년에는 민진당(Democratic Progressive Party, DPP) 대표로 일하기도 했지만 탈당하고 말았다. 그는 지금 타이베이의 대통령 궁 앞에서 연좌시위를 주도하고 있는데, 그곳에는 타이완 국민 2,300만 명을 상징하는 시위용 좌석 2,300석이 마련되어 있다. 그는 1인당 시위 참여 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한정하고, 시위 참가비로 타이완 달러 $100(미화로 $3 정도) 씩을 헌금하자고 제안했는데, 여기에 동참한 사람이 벌써 100만 명을 넘어섰다.
이 시위에 참여한 사람들은 이를 “민중의 힘, People Power”이 폭발한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이제는 아무리 천수이볜이 타이완의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해도 그의 정치 생명을 더 이상 연장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고달픈 민중들은 삶의 어려움으로 분노를 폭발시키고 있으며, 그 종착점은 천수이볜에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 srips.org에서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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