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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의 ‘괴물’이 한국영화의 모든 기록을 갱신하면서 달갑지 못한 문화현상을 들어냈다. 새로운 문화 권력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대형 멀티플렉스(복합상영관)를 중심으로 재편된 영화산업의 구조는 스크린 독과점이라는 논란의 불씨를 안고 있었는데, 그 불씨가 잘못된 방향으로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지난 여름의 극장가는 단연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와 봉준호 감독의 ‘괴물’로 회자되었다. 모든 언론과 모든 평론가들은 이 두 작품을 위해 청사초롱을 밝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새로운 문화 권력에 아첨하고 휩쓸리는 아주 위험한 광경이 태연히 연출되었고, 영상 이론에 대한 논리적인 적응력을 갖추지 못한 일반 관객들은 보고 싶은 영화에 대한 선택권까지 박탈당하는 느낌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영화 ‘태풍’이 장악했던 540개 스크린보다는 적지만 ‘한반도’가 470개 스크린을 거느리며 등장하였고, 뒤이어 개봉한 ‘괴물’이 620개 스크린으로 극장가를 휩쓸고 나섰다. 이는 우리나라 전 스크린 수의 40%에 이르는 수치이고, 더구나 ‘한반도’와 ‘괴물’이 같은 시기에 개봉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단 두 편의 영화가 전국의 스크린 수의 70%를 점유했다는 것이 된다. 이 같은 물결에 모든 언론과 평론가들까지 휩쓸려간다면, 이 어처구니없는 물결에서 벗어나 있는 영화 예술인들은 피눈물을 흘리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
이런 와중에서 김기덕 감독의 실언이 구설수에 올라 언론의 뭇매를 맞으면서 마침내 ‘내 영화는 쓰레기요. 조용히 한국 영화계를 떠나겠다.’는 자학적인 선언이 있었고, 그의 영화 <시간>이 비록 아주 적은 스크린이지만 빛을 보게 되었다. 나는 <시간>을 보면서 착잡해지는 심경을 가눌 수가 없었다.
영화 <시간>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 중에서도 상위에 속해야 할 만큼 잘 다듬어진 좋은 영화였고, 한국 영화의 평균수준을 훨씬 더 웃도는 깔끔한 영화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언론과 젊은 평론가들은 김기덕 감독의 구설에만 논란을 벌일 줄만 알았지, 정작 그의 작품 <시간>에 대해서는 왜 입 다물고 있는가. 이 괴이한 형상이 새로운 문화 권력의 등장 때문이고, 그 문화 권력의 근처를 배회하는 것이 편하게 살아가는 도리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영화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문화 권력의 탄생은 영화선업의 양극화형상을 부채질 하게 마련이다. 양극화 현상으로 온 나라가 시끌벅적한 시점에서 영화예술의 현장까지 양극화 현상으로 치닫게 된다면 이 땅의 영화예술이 정도를 갈수가 없다.
나는 ‘괴물’의 흥행이 대규모 배급사의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가 그만큼 재미있으면 관객이 몰려들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관객이 몰려든다하여 꼭 좋은 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대한 일반인들의 생각은 어떤가. ‘괴물’의 흥행이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라는 의견은 37.9%이고, 그렇지 않다는 의견 38.2%로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면 관객의 수준은 합격점이다. 더구나 스크린 독과점 때문이라고 대답한 젊은 층(19~29세)이 51%로 나타난 것은 우리 영화의 관객들이 입 다물고 있는 언론이나 평론가들의 수준을 웃돌고 있음을 잘 보여주고 있음이다.
새로운 문화 권력의 그늘에서 안주하는 일보다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시간>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하는 양식이 필요한 때다. 각 언론사의 젊은 영화당담 기자들, 젊은 영화평론가, 영화학 교수들이 정녕 이 땅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를 사랑한다면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시간'에 대해 입을 열어야 한다. 그런 식견이 건재하지 않고서는 이 땅의 영화예술이 온전하게 발전할 수가 없다.<극작가,예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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