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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관계를 포함한 한국 외교의 환경에 지각변동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밖으로는 냉전이 끝나고 안으로는 남북관계가 평화공존 지향으로 바뀌었으며 한국 경제가 세계 12위로 성장한 당연한 결과다. 한국은 이런 변화에 맞는 외교를 하고 있는가. 유엔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해 무척 바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한국 외교의 미래와 유엔 사무총장 선거 전망을 들었다.
김영희=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이 몰라보게 변했습니다. 야구.축구.골프에서 세계적인 선수들이 나오고 한국의 기업인.학자.예술인들이 세계 무대에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한류가 중국.동남아.일본을 휩쓸고 한국의 정보통신(IT) 분야 기술은 세계의 선두를 달립니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나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우리 외교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한국의 이런 위상 변화를 따라가고 있습니까?
반기문 장관=말씀하신 대로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면에서 한국은 아주 중요한 나라가 됐는데 아쉽게도 외교의 역할은 미흡합니다. 외교관 개개인의 역할보다 국가의 시스템이 너무 미흡하다는 겁니다. 외환위기 때 우리는 22개의 대사관을 폐쇄했습니다. 최근에 5개를 복원하기로 결정된 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유엔평화유지군(PKO)이 전 세계에 8만 명쯤 되는데 한국은 31명으로 국제평화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약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외교의 다변화가 중요합니다. 미국.중국.일본.러시아.유럽과의 관계같이 중요한 것은 소중하게 강화시켜 나가면서 자원외교 등에 필요한 나라들에 대한 외교적 노력을 동시에 펼쳐야 해요.
김=외교력 확충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반=우리의 재외동포가 650만 명이고 한 해에 해외로 나가는 한국인이 1000만 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현재 우리 공관은 137군데입니다. 중국.일본이 각각 200, 230개 정도의 공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국민의 정부에 대한 기대는 매우 큽니다. 외교 인력에서도 우리는 1700여 명으로 운영하지만 네덜란드만 해도 3000명 수준이고, 미국.일본.중국과는 비교할 수도 없습니다.
김=우리 의식이 아직 세계화.국제화가 덜 된 건가요?
반=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국내에 우선하고 여력이 있을 때 외국에 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는 국내총생산(GDP)의 70%가 외국과의 관계에서 나오는 세계 10대 무역대국인데도 대외개발원조(ODA)는 0.06%에 머물고 있어요. 최근 정부가 발표한 '비전 2030'에서 2030의 ODA 목표를 0.3%로 잡고 있는데 25년 후에 가서야 오늘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0.3으로 가겠다는 거죠.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를 극복하는 데 많은 재원이 필요하겠지만 세계적 양극화 해소에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 3월 노무현 대통령이 아프리카에서 발표한 아프리카개발계획에 따라 항공연대기금이 도입됩니다. 아프리카 지원을 위해 국민이 해외여행 항공권을 구입할 때 1000원씩을 내도록 하는 것입니다.
김=한국 외교의 뉴 프런티어는 어디입니까?
반=최근에 우리는 중앙아시아에 눈을 돌려 노 대통령이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을 방문했습니다. 중앙아시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전략적인 요충지이고 경제적인 자원의 보고예요. 카자흐스탄.우즈베키스탄.아제르바이잔.키르기스스탄.우크라이나가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4%, 가스 매장량의 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김=한.미 동맹은 우리의 개인소득이 67달러였던 1953년에 출발했습니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개인소득 2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민주화도 됐습니다. 50년 전에 지어 입은 옷이 몸에 맞을 수가 없죠. 한.미 관계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당장의 현안으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환수 문제가 있는데 환수 시기를 미국은 2009년, 우리는 2012년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어느 선에서 절충이 됩니까?
반=우리는 2011년까지 중기 국방계획을 끝내고 2012년에 받자는 생각인데 미국은 한국군의 능력을 봐서 2009년에도 가능할 뿐만 아니라 제도를 바꿀 때 불확실한 상태로 오래 두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김=전작권이 환수되고 연합사가 해체되면 유사시 미군의 신속한 개입과 증강이 보장됩니까?
반=한.미 상호방위조약 3조에 보면 유사시에 조약 당사국들은 헌법적인 절차에 따라 지원하게 돼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자동개입'으로 알고 있는 것은 작전계획이나 공동성명 등을 통해 군사적 지원이 약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전작권이 환수돼도 이런 약속은 유효합니다.
김=북한이 핵실험을 하면 어떻게 대응할 작정입니까?
반=핵실험은 미사일 발사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죠. 여러 가지 즉각적인 조치들이 있을 것입니다.
김=최근 관훈토론에서 한.미 국민 간에 여러 가지 인식의 차이가 있다고 하셨는데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에 문제 없다고 한 말과 달라 혼란스러운데요.
반=대통령 말씀과 제가 한 말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제 말은 정부 당국 간에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아니고 국민들 간에 막연한 인식의 간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김=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이 총리가 되면 한.일 관계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반=아베 장관이 "한국.중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고 봅니다. 저에게도 야스쿠니 신사라든지 역사인식에 대해 "겸허한 마음으로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겠다"고 얘기했기 때문에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김=고대사에 대한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중국은 기자조선.고구려.발해를 고대 중국의 지방정부로 편입시키려고 합니다. 고대사를 왜곡하는 중국 역사학자들의 배후에 중국 정부가 추진하는 동북공정이 있습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너무 안일(安逸)했다, 미국과 일본에는 할 말 하면서 왜 중국에는 할 말 못하고 저자세로 일관하느냐는 여론이 비등합니다. 정부의 대응은 뭡니까?
반=우리 정부는 그동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시도를 우리 민족의 정체성과 관련되는 중대사안으로 보고 적극 대응해 왔습니다. 중국은 2004년 8월 한.중 정부 간 구두양해 합의 이래 현재까지 중앙 및 지방정부의 홈페이지 왜곡 내용의 수정.삭제와 고구려 유적지 소개 왜곡 내용의 시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해오고 있으나 학술 차원의 연구는 계속해 오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동북아역사재단 등을 통해 고구려사가 우리의 역사라는 분명한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학술적 성과를 축적하면서 일부 역사고과서의 왜곡 문제 등 미해결 사안에 대해서는 시정을 위해 지속적인 외교노력을 경주해 나갈 생각입니다.
김=유엔 사무총장 선거 예비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신 것 축하합니다.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이 불리하진 않습니까?
반=저도 걱정을 했습니다만 여러 나라 대표들을 만나보니까 이러한 문제를 거론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이런 문제가 있다고 설명하면 그것이 장점이라는 반응도 보였어요. 한국이 분단 상황을 잘 관리해 온 것과 6자회담을 주도한 경험이 유엔이 복잡한 국제문제를 다루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김=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점은 부담이 안 됩니까?
반=냉전이 끝나면서 국제적 패러다임이 바뀌어 한국이 미국의 동맹국이라는 인식보다는 서방세계가 추구하고 있는 목표를 공유한 나라라는 인식이 일반적입니다.
김=사무총장이 되시면 어떤 일을 중점적으로 할 생각입니까?
반=네 가지입니다. 첫째는 유엔 사무국 개혁입니다. 유엔 사무국이 60년간 변화 없이 유지돼 왔는데 책임성.윤리성.전문성.주인의식 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둘째는 유엔 내 여러 기관들의 통합조정 기능을 강화해 인력.자원.재원을 유효적절하게 쓰겠습니다. 셋째는 강대국과 약소국, 작은 나라와 큰 나라 사이의 불신 해소에 힘쓰겠습니다. 넷째는 안보리 개편을 포함한 조직 개편입니다.
김=사표(師表)로 삼는 외교관이나 정치가가 있습니까?
반=제가 충주에서 국민학교에 다닐 때 변영태 외무장관이 학교에 오셔서 우리나라가 처해 있는 국제정세를 설명하고 웃통을 벗고 아령 시범을 보였어요.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아 저런 분이 외무부 장관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다른 한 분은 케네디 대통령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학생 대표로 미국 백악관에 가서 케네디 대통령을 만났어요. 그때 '내가 갈 길은 외교관이다'라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김=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유엔에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랍니다.
만난 사람 =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정리
-2006.9.11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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