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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로 갈라선 세계
지금 세계는 두 편으로 갈라졌다. 마치 60년대 냉전체제하에서의 동서 분열처럼 그렇게 나뉘어졌다. 그때는 이데올로기 때문에 그랬지만 지금은 세계화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 한편에서는 세계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져 온 세상이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될 것으로 기대하며,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의 세계화는 몇몇 선진국의 잘 사는 부자들을 위한 “그들만의 잔치”라고 비판한다. 그리고 그 잔치를 위해 가난한 나라의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고 있다면서 가슴 아파한다.
세계화에 대한 생각이 이처럼 다른 것은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각기 그렇게 생각할 만한 근거도 있고, 그럴 상황도 있기 때문에 자신들의 생각만을 강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옳은 인식은 지금의 세계화는 분명히 부유한 국가나 부자들에게만 유리하고 가난한 사람이나 저개발 국가에는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세계화의 길
세계화가 어느 하나의 목표만을 위해 달리는 것은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되고 그럴 수도 없다. 하나로 달려가는 세계화일 때 그 하나는 미국이나 유럽을 전제로 한 서구 문명을 의미할 뿐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는 서구 문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슬람 문명, 아시아 문명, 아프리카 문명도 있다. 같은 이슬람 문명권 안에도 수없이 다른 문화 양식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성격을 넘어 “하나됨”을 강조하면서 서구 문명만이 선진적이고 문명적이라고 주장하고 그것의 확장과 외연화를 시도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제국주의적이다. 가장 옳은 세계화는 “다 함께 더불어 잘 사는 것”이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의 삶을 충족시킬 수 있을 정도로 물질적 사회적 조건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세계화는 다원적 공존이며, 개별성의 보장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는 경제 사회적 가능성이 확보되어야 한다.
부자 나라의 기여
최근 FP(Foreign Policy)에서는 부자 나라가 세계화에 기여하는 순위를 발표했다. 그 평가 기준은 원조, 교역, 투자, 이민, 환경, 안보, 기술 등 7가지다. 이 기준에 따라 세계 21개 부자 나라의 순위를 평가했는데, 네덜란드,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뉴질랜드가 상위 5대국을 차지했다. 미국이 13위, 프랑스가 18위, 이탈리아는 19위, 그리스가 20위에 올랐고, 일본은 꼴찌인 21위였다. 독일은 9위를 차지해서 어느 정도 체면을 유지했다. 평가 기준이 되는 외국 원조만 해도 부자 나라의 대외 원조가 점점 인색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년 7월에는 글렌이글즈 (Gleneagles)의 G8 정상회의에서 가난한 나라의 외채 $400억을 탕감해 주기도 했지만 그것 역시 미미한 금액에 지나지 않는다. 교역만 해도 부자 나라는 자기 나라 농민들에게는 보조금을 지급하면서도 외국 농산물에 대해서는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차단시키고 있다. 부자 나라가 외국에 투자하는 것은 가난한 나라의 저임금을 활용하기 위해서이다. 미국은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전기 철조망을 칠 정도로 이민을 제약하고 있으며, 환경협약인 교토의정서에도 아직까지 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또 안보를 위해서는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자기 나라에 적대적인 국가들만 공격했다. 그뿐 아니라 기술의 해외 이전을 막기 위해 점점 더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세계화를 주창해도 그것은 세계 여러 나라들이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 나라만 잘 살려는 경쟁의 논리일 뿐이다. 그것은 부자 나라들이 더 잘 살기 위해 가난한 나라를 여러 면에서 활용하는 또 다른 제국주의라 해도 좋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화에는 정의도 없고, 평등도 없으며, 평화도 없다. 살벌한 경쟁이 전부일 뿐이다. 이 점에서 그것은 이전의 제국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세계화는 부자 나라가 가난한 나라를 약탈하는 고도의 속임수”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실제로 세계화가 주장된 지난 20여년 동안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경제적 격차는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더 넓어지고 말았다. 말하자면, 가난한 나라도 부자 나라 사람들이 사용하는 물건을 사용해야 하는 것으로 선전되는 “소비 지향의 세계화”로 나아가고 있는 게 분명하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라면 그것은 결국 또 다른 문명 파국을 예비하는 재앙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점에서는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은 물론이고, 우리 식의 대응과 평가가 절실하게 요구될 뿐이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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