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칼럼 ▶ 회원칼럼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 ‘인문학자의 권력’이 쇠퇴할 뿐이다
정진홍   |  2006-09-14 11:43:38  |  조회 2762 인쇄하기
인문학 책들을 출판하는 일이 무척 힘들다고들 합니다. 팔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도 최근에 ‘무엄’하게도 인문학을 표제로 책을 냈습니다. 결과는 빤합니다. 출판사에 면목이 없습니다. 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데, 이는 인문학의 주제나 인문학적인 이야기를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니,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사람들이 자기 삶을 ‘소모’하는 책읽기에 필요여부를 한 번쯤 셈을 하지 않겠습니까?

그 필요를 판단하는 척도가 물질적인 득 만은 아닙니다. 재미나 즐거움이나 그저 ‘소일거리’라도 좋습니다. 그런 어떤 데라도 도움이 된다면 불필요하다는 판단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문학 책들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문학이란 전혀 ‘쓸 데 없는 것’이라는 분명한 확인이 일상적인 삶의 울안에서 이미 이루어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도무지 사람살이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인문학에 과해진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인문학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그렇게 사람살이에서 배제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문학을 귀하게 여겨 그것이 반드시 사람살이에 필요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근원적인 앎’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차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아는 것도 앎이지만 더 나아가 차를 왜 만들어야 하는지, 차가 사람살이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도 알아야 한다고 말하면서 그 마지막 물음을 묻는 물음을 다듬은 것이 인문학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인문학은 모든 앎의 근본일 뿐만 아니라 기반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그 ‘바탕’을 마련하지 못하면 다음의 현실적이고 직접적인 앎들은 뿌리 없는 나무같이 된다고 말하면서 ‘인문학적인 천착’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생각해보면 참 옳은 말씀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내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 이전에 나는 ‘왜 살아야 하나’ 하는 물음을 묻는 것이 근원적인 삶의 태도이고, 그로부터 비롯하여 내 삶의 ‘무엇’과 ‘어떻게’를 구체적으로 다듬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조금도 그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인문학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우선하는 근원적인 앎’이기 때문에 이를 통달해야 비로소 삶이 삶다워진다는 주장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인문학의 퇴조나 쇠퇴는 사람이 점점 사람구실을 하고 살지 못하는 길에 깊이 빠져드는 것의 징표고 말해도 지나치게 그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주목하고 싶은 현상이 있습니다.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인문학의 개념’과 ‘인문학의 실제’는 다르다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인문학의 개념은, 더 정교하게 서술해야 하겠지만, 대체로 그 어떤 것도 앞에서 말씀드린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듯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되는 인문학이 실제로 가르치고 배우는 자리에서는 그렇게 펼쳐지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근원적인 문제를 자유롭게 묻고 답하는 그러한 풍토를 전혀 마련하고 있지 않습니다. 학문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어떤 틀 속에 ‘정통’이라든지 ‘고전’이라든지 ‘학문성’이라든지 심지어 ‘위대함’이라는 수식으로 고정된 ‘권위’를 반향(反響) 하는 것으로 인문학을 완성하려는 ‘경향’이 마치 도덕적 규범처럼 도도히 흐르고 있습니다.

어떤 철학 강의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다. 그러므로 우리도 나 자신을 알아야 한다.’ 극단적인 예여서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투로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는 어떤 ‘경향’은 분명합니다. 내 물음이 발언될 여지가 없습니다. 해답을 찾아 스스로 이리저리 더듬어야 할 자유도 없습니다. 해답이 제시되고, 그러고 나서 그 해답에 상응하는 물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권위적인 정죄’만이 넘칩니다.

사실상 인문학은 스스로 지닌 오만, 곧 어쩌면 ‘나만이 사유한다. 나만이 고뇌한다. 그러므로 나만이 인간적이다’라는 그 오만의 탑을 쌓으면서 자신 안에 칩거하다가 마침내 누구에게도 메아리칠 발언을 하지 못하게 된지도 모릅니다. 인문학이 쏟아놓는 것은 누구나 공감하는 물음이 아니라 숫한 ‘귀한 이름’들입니다. 인문학의 성취를 측정하는 준거는 누구 누구가 서로 어떤 주장에 서로 어떤 주장을 했고, 그것이 시대를 지나면서 누구누구가 서로 어떤 주장을 하고 있다는 긴 ‘권위의 계보학’을 어느 정도 ‘완성’했는가 하는 것이지 나의, 또는 우리의 주장이나 반향은 언제나 조용합니다. 사실 인문학은 누구나 인문학도여야 하고, 좀 기술적으로 타당하지 않은 표현이지만 누구나 인문학자일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 우선성과 근원성의 주장이 실은 그러합니다. 그 주장은 우리 누구나 인문학도여야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인문학은 또는 인문학자는 실은 누구나 그러한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혹을 가질 만큼 자신들을 인문학을 전유한 소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스스로 ‘강의’한 ‘권위의 계보’에 들 수 있기를 간망하고 있을 뿐, 실은 인문학의 보편화를 스스로 부정하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물음과 해답의 자유를 누구나의 것으로 전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실 자상하게 살펴보면 오늘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것은 인문학의 쇠퇴나 소멸이 아닙니다. 쇠퇴하는 것은 인문학자의 ‘권력’이고 소멸하는 것은 인문학의 ‘권위의 계보학’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어쩌면 인문학의 제자리 찾기의 징표일 수도 있습니다. 인문학의 보편화현상이 바야흐로 시작된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책이 그 영향력을 이전처럼 지니지 못하고, 영상문화나 인터넷 문화가 보편화되면서 인문학의 자리는 이제 아무데도 없다고 탄식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그렇게 ‘한스러운 기계’는 아닙니다. 인터넷에서 본 기사입니다.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야 안다’는 전통적인 격언이 지금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길고 짧은 것은 대보아도 모른다’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기막힌 인문학적 주제입니다. 이원론이 정당한 범주로 승인되던 시대와 문화 속에서 타당했던 전자가 다원론이 새로운 서술범주로 등장한 현대의 다원의식에서는 후자가 옳은 격언일 수밖에 없습니다. ‘붕어빵 속에는 붕어가 없다’는 묘사가 정곡을 찔러 실체를 묘사한 기막힌 풍자라고 킬킬거리지만 인터넷의 어떤 문장은 그 킬킬거림을 이렇게 비웃습니다. ‘붕어 안에도 붕어는 없다.’ 마찬가지로 인문학의 당연한 주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문학은 누구나 가지는 자기 진지성의 지적 발언이지 거듭 말하지만 ‘권위의 계보학’을 가르치고 그것을 익히는 것이 아닙니다. 인문적 상상력은 결코 소멸하지도 않았고 쇠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것이어서 그것을 ‘배우고 나야 비로소’ 다른 앎을 알 수 있고 사람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인문학자들에게만 그것은 ‘사라진 아쉬움’으로 인식될 뿐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은 일생동안, 언제 어디에서나, 무엇을 하든 항상 함께 있어야 할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삶의 본연입니다. 기존의 인문학이 이를 차단하고, 구획 짓고, 가두고, 닫아 어떤 것의 전유물로 삼는 것이 실은 인문학의 쇠퇴나 퇴거의 본디 까닭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인문학이 스스로 탈인문적 권위를 회복할 때 인문학 출판도 제법 돈을 벌 수 있으리라 판단됩니다. 저 같은 필자도 정신을 차리게 되고요.
(정진홍. 한림대 과학원 특임교수, 종교학)
-출판저널 9월호
      
굿소사이어티
덧글쓰기 | 전체글 0개가 있습니다. 이름 : 비밀번호 :
 
0/1200 bytes  
 
442 한국인 유엔총장을 기다리며  박수길 06-09-21 2818
441 김영희 대기자가 본 노 대통령 - 부시 회담  김영희 06-09-28 2810
440 [김영희칼럼] 알맹이 빠진 전작권 논의  김영희 06-09-18 2748
439 박수길 前 유엔주재대사 인터뷰 기사  박수길 06-10-15 2800
438 인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 ‘인문학자의 권력’이 쇠퇴..  정진홍 06-09-14 2762
437 세계화와 부자들만의 잔치  진덕규 06-09-28 2759
436 무너진 공론의 장, 복원 시급하다  유재천 06-09-14 2652
435 [월요인터뷰/김영희]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1  김영희 06-09-15 2704
434 영화 ‘괴물’과 ‘시간’  신봉승 06-09-28 2636
433 타이완의 정치 갈등과 천수이볜의 위기  진덕규 06-09-12 2683
31323334353637383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