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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최초의 유엔 사무총장이 탄생할 수 있을까.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는 오는 14일(현지시간)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을 포함해 출마를 공식 선언한 후보 5명을 대상으로 2차 예비투표가 실시된다. 지난 7월 1차 투표에 이어 이번 투표에서도 반장관이 다시 1위를 차지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는 가운데 한국 최고의 '유엔통'으로 꼽히는 박수길(전 유엔대사) 한국유엔협회 명예회장을 지난 8일 서울 중구 장교동 협회 사무실에서 만났다.
박 회장은 한국이 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이던 지난 1996년 치러진 유엔 사무총장 선거에서 투표권을 직접 행사해 총장 선출과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 장관의 선거운동 과정에 큰 힘을 보태고 있다.
―요즘 유엔과 관련해 어떤 일들을 하시나요.
"예, 지난 5월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방한했을 때 '인도적 지원 유엔중앙긴급대응기금'의 자문위원을 맡아달라는 요청을 해와 1년에 2~3번은 유엔을 방문합니다. 지난 8월에 유엔을 다녀왔고, 오는 10월 제네바에서 열리는 인권소위원회 관련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입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유엔 사무총장 선출과정을 궁금해합니다.
"일단 규정 자체는 간단합니다. 안보리가 추천한 후보를 총회가 임명한다는 규정뿐입니다. 여기서 안보리가 '추천'한다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안보리 상임, 비상임 이사국들이 몇차례에 걸쳐 예비투표(straw poll)를 거쳐 단일 후보를 선정한 뒤, 이를 총회에 상정해 추인을 받는 형식이죠. 이 과정에서 특히 미·영·중·러·프랑스 등 5개 상임이사국(P5)의 거부권을 한 표도 안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 아난 총장이 선출될 당시 직접 투표에 참여하셨지요.
"예, 아난 총장이 선출되던 96년 마침 한국이 비상임이사국이라 투표권이 있었고, 또 제가 당시 주 유엔대사였기 때문에 직접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총장 선거가 5년에 1번 열리고, 열리는 그해에 비상임이사국을 맡지 않는 이상 투표장에 들어갈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하면 개인적으로는 참 운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반 장관과 경쟁할 다른 후보들에 비해 한국이 총장 투표 경험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큰 이득이지요."
―스트로 폴, 즉 예비투표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P5에게는 빨간색 투표용지를 주고, 비상임이사국에게는 파란색 용지를 줍니다. 그리고 투표용지에는 해당 후보에 대해 O,X 표시를 하게 돼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가장 X표가 적은 후보를 단일 후보로 뽑아 총회에 승인을 받게 됩니다. 단, 이 과정에서 추천되는 단일 후보는 특히 P5국가로부터 단 1개의 X표시도 받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 반 장관의 당선 가능성에 대해 말씀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반 장관이 지난 7월24일 열린 1차 예비투표에서 1위를 했습니다. 그 비결은 뭐라고 보십니까.
"일단 반 장관의 출마는 국제 외교가에서 보면 '전통적 사고방식(conventional thinking)'을 뛰어넘는 행위입니다. 분단국 출신에, 미국과 동맹을 맺은 국가의 후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 장관은 북핵 6자회담을 통해 한반도 주변 강대국 외교라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이게 큰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또 비교적 장수한 외교장관으로서 인품이나 능력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차기 유엔 총장의 중요역할 중 하나가 '유엔 개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 개혁작업을 수행하기에는 반장관의 인품이 오히려 지나치게 온후하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그건 반 장관의 성품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입니다. 한가지 에피소드만 말씀드리지요. 제가 과거 주 유엔 대사관에서 공사로 근무할 당시 반 장관이 1등 서기관이었습니다. 당시 반 서기관은 자기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윤석헌 대사에게 직접 사전을 들고 가서 따지곤 했습니다. 한 번은 수닭/수탉, 암닭/암탉의 맞춤법을 가지고 강력히 항의하다가 결국은 윤 대사와 저, 반 서기관 모두 한바탕 웃음보를 터뜨리기도 했었지요."
―다른 후보들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조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각 후보별로 취약점이 있습니다. 태국의 수라끼앗 사티아라타이 후보는 초기 선거과정에서 동남아국가연합(ASEAN) 단일후보로 선정됐는데요, 사실 ASEAN 국가들이 어리둥절해하는 틈을 타서 초기에 단일후보로 추인을 받았다는 평입니다. 그 이후 태국 국내에서조차 자질론이 불거져 나왔습니다. 스리랑카의 자얀타 다나팔라 후보는 현재의 아난 사무총장이 유엔 내부에서 차근차근 올라온 인사라는 점에서 불리하다는 여론입니다. 현재 유엔 내에 팽배해 있는 '뷰로크라시(관료주의)'에 대한 반감입니다. 인도의 샤시 타루르 후보의 경우 비동맹국가들의 지지도가 관건입니다. 그러나 미국이 인도를 통해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을 견제한다는 인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중국이 거부권을 행사할지 두고 봐야 합니다."
―이번 2차 투표는 지난 1차때와 달리 주 유엔 요르단 대사인 자이드 알 후세인 왕자가 후보에 추가됐습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어떻습니까.
"자이드 왕자는 현 요르단 국왕의 사촌동생이지요. 42세로 젊고 활발한 분입니다. 제가 유엔대사 근무를 할 당시 그분은 요르단 차석대사였습니다. 제3세계 문제에 대해 균형감각을 가졌다는 좋은 평을 받는 분입니다."
―요르단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주요 동맹국입니다.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중동 문제 해결을 위해 요르단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도 있는 것이 아닌가요.
"12일(현지시간) 개막하는 이번 유엔 총회에서는 이스라엘 규탄 강경 결의안이 나올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과 이라크 문제로 고민에 빠진 미국의 처지에서는 요르단 같은 친미적 무슬림국가 출신을 유엔 사무총장에 앉힌 뒤 대 중동 외교의 중재자 역할을 하게 만들 가능성도 있습니다. 실제 존 볼턴 주 유엔 미국 대사의 경우 반 장관과도 친하지만 자이드 왕자와도 친분이 두터운 걸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 아난 총장이 한 인터뷰에서 차기 총장을 언급하며 유달리 '그녀(She)'라는 표현을 많이 써서 화제를 불렀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차기 총장으로 '여성'이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 같은데요.
"특별히 어떤 후보를 염두에 두고 그런 표현을 쓴 것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선거전략상 반 장관도 '여심(女心)'을 잡을 전략은 필요합니다. 예컨대 반 장관이 선출될 경우 여성 사무차장을 중용하겠다는 식의 공약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대미, 대일 관계가 과거에 비해 순조롭지 못하다는 평이 많습니다. 반 장관의 선출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요.
"우선 일본은 분명 P5국가는 아닙니다. 그러나 유엔 사무총장 선출이 결정될 것으로 보이는 다음달 일본이 마침 유엔 안보리 의장국을 맡는 순번입니다. 또 P5국가들은 일본의 눈치를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계 2위의 경제력과 미국과 가깝다는 점 때문입니다. 한국으로서는 일본과 여러가지 쟁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해의 방사능 조사 문제도 그렇고, 대북정책에 있어서도 현저한 인식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얽혀 있는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일단 양국간에 해결하기 쉬운 문제부터 하나씩 풀어나가야 합니다. 의견 조정이 가능한 부분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간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미국의 경우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문제 등 여러 현안에서 불협화음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특히 작통권 환수 문제는 정부가 국내에서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급속하게 진행하다보니 문제가 발생한 것입니다. 정부는 국민에게 '안심하라'고 말하지만 북한의 핵 능력이 증가하고 있는 터라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이지요. 이런 불협화음들이 반 장관의 선거과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기는 힘들겠지요."
―평생 외교현장을 누비신 분으로서 앞으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외교전략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이미 우리는 지구촌화된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서 국가적 이익만을 위한 외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예컨대 지진해일(쓰나미)이 발생했을 때 인도적 지원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평화유지군(PKO) 활동도 열심히 해야 하고, 빈곤퇴치나 에이즈 예방 활동에도 앞장서야 합니다. 세계 각국의 이익과 한국의 이익을 부합시키는외교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그게 장기적으로는 한국에 돌아올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법입니다."
양성욱기자 feelgood@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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