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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의 지미 카터를 생각하면
진덕규   |  2006-09-28 15:55:55  |  조회 3125 인쇄하기
며칠 전의 신문 기사

며칠 전 세계일보 이보연 기자가 쓴 다음 기사를 읽었다.
"미국이 북한을 응징할 경우 북한이 남한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미 카터(James Earl Jimmy Carter) 전 미국 대통령이 13일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혔다. 북핵 1차 위기인 1994년 6월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을 방문했던 카터 전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응징하고 김일성 당시 북한 주석을 계속 규탄할 경우 북한이 한국을 공격할 것이라고 확신했다'면서 '북한은 여전히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게리 럭 주한미군사령관이 북한의 공격으로 하룻밤에 100만 명 이상이 숨질 것이라고 말했다'며 이에 따라 북한행을 결정하고 빌 클린턴 미 행정부 관리들을 만나 한반도 상황에 대한 평가와 충고를 들은 후 평양으로 향했다고 술회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평양에 가서 김일성을 만나던 카터 대통령의 모습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평양에서의 지미 카터

지미 카터가 평양에 간 것은 1994년 6월 15일이었다. 당시 북한은 IAEA(국제원자력기구)의 핵개발 사찰 요원들을 철수시켜 버렸기 때문에 국제 사회는 평양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이 문제를 돌파하기 위해 전임 대통령인 카터에게 특사 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하게 했는데, 그는 그곳에서 김일성으로부터 최고의 국빈 예우를 받았다.
웬만해서는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일성의 부인 김성애도 직접 나와서 지미 카터 부부를 환대했다. 6월 17일에는 대동강변에 위치한 김일성 전용 요트장에서 김일성 부부와 다정하게 보트를 타며 즐기기도 했다. 최고의 환대 속에서 카터는 김일성으로부터 북한의 핵개발 중단을 약속받았고, 그 대가로 2기의 경수로 건설을 약속하는 협정을 맺을 수 있었다.
이 일로 지미 카터는 일거에 전쟁 직전의 한반도 위기를 타개한 인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일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02년에는 노벨 평화상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 타협은 오히려 북한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핵개발을 계속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했으며, 2005년에는 핵무기 보유를 선언하게 되는 사실상의 계기로 활용되었다.


집 지으러 온 카터

그 후 카터는 해비타트(Habitat) 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또 한번 한국을 방문했다. 그 때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집 짓는 현장에서 못질을 하는 그의 모습은 바로 "성자" 그 자체였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평화와 사랑을 실천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그의 순수함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은 꺾을 수 없었다. 사실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치적은 실패에 가까웠다. 그가 재임하던 1977-1981년은 미국 정치사에서 이른바 "신념의 위기"로 표현되던 시절이었다. 케네디 대통령 암살 사건과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전 그리고 워터게이트 사건 등으로 미국의 1960년대와 70년대 초반은 혼돈의 연속이었다.
그는 경제 정책에서도 실패했다. 두 자리 수의 인플레와 고금리, 석유 파동, 높은 실업률 등으로 1979년의 크리스마스를 "우울한 휴가"로 만들어 버렸다. 게다가 외교 정책마저 엉망이었다. 이집트와 이스라엘 간의 평화조약으로 체결된 캠프 데이비드 협정(Camp David Accord, 1978)은 문서로만 남았을 뿐이며, 1977년에는 파나마 정부에 파나마 운하를 양도했다. 또 주한 미군 전면 철수를 공언하기도 했다. 결국 그는 다음 선거에서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책이나 집필했으면

그 카터가 이번에 또 평양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한번 평양에 간다면 이번엔 어떤 일이 일어날까? 민주화일까, 개방체제로의 변화일까, 아니면 김정일 체제가 더 강화될까?
모르긴 해도 카터와 같이 "순진한" 사람은 그냥 집에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고, 집 짓는 일에만 헌신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카터도 명예욕만은 줄일 수 없는지 상도 많이 탔고, 책도 20여 권이나 집필했다. 노벨 평화상을 비롯해서 이름 난 대학에서 명예학위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대통령으로서의 그의 치적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카터의 삶"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의 직책이었던 조지아 주지사에 알맞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그가 이제 더 이상 한반도 문제에 끼어 들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한 것은 그의 정치적 능력을 익히 가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림대 특임교수

서울정치사회연구소 09월25일

기사 원문 보기(클릭) -> http://www.srips.org/weekly_focus.php?default=0&page=1&mode=view&idx=247&PHPSESSID=fbcd7dfdbcda08dfab791921f67c0e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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