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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識의 허용한계
서지문   |  2006-10-15 16:27:53  |  조회 2666 인쇄하기
일전에 영문학 박사인 40대 초의 어느 후배와 점심을 같이 먹으면서 고산 윤선도의 유배지인 보길도에 갔다 왔다는 말을 했더니 고산 윤선도가 누구인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나이프와 포크를 탁 내려놓고 일어나서 나오고 싶었다. '이렇게 무식한 사람과 한담을 나누는 것은 순전한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우리가 어떤 사무적인 용건이 없는 사람과 만나서 식사도 하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는 것은물론 그에게서 무엇을 배우겠다는 계산에서가 아니고 그저 인간적인 유대를 쌓기 위해서 이지만 그런 시간이 즐겁고 유익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언가를 알고 깨닫게 되는 것이 있어서이다. 물론 상대편이 나에게서 유익한 정보를 얻고 안목과 세계관을 터득했다고 느끼게 될 때에도 큰 기쁨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아이를 만날 때에도 실상 우리는 그 아이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면서 동시에 어린이의 의식세계라든가 어린이의 관점 같은 것을 터득하게 되어서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헤어지고 나서도 기분이 좋은 것이다.
고산 윤선도(孤山 尹善道)로 말하자면 물론 그는 영문학자의 필수지식은 아니다. 그러나 비전문가에게는 사소하달 수 있는 그런 저런 지식들이 우리의 내면을 풍성하게 해주고 그 속에서 삶의 지혜 같은 것도 우러나는 것이 아닐까? 아무리 뛰어난 전문가라도 뇌 속에 필수지식 말고는 공백인 사람이라면 그 내면의 빈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예전에 타임지에서 이런 기사를 본 일이 있다. 남자들이 젊은 여자를 좋아해서 소녀들과 바람을 피우는 현상에 대해서, 어떤 남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젊고 육체가 싱싱한 것은좋지만, 홀로코스트(holocaust)가 무엇 인지도 모르는 여자와 어떻게 대화를 하느냐고 했다는. 만나서 교제하는 동안 '문화적' 대화의 주제가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의 범주를 벗어나지않는 연인들의 결합이 얼마나 단단할 수 있을까, 나는 회의적이다.
어떤 사람은 고등학생과 대학생인 딸이 둘인데 고등학생인 딸은 '한반도'라는 영화제목을 보고 "한반도가 어디 있는 섬이냐?" 고 물었다고 하고, 대학생 딸은 '중공군'이 어느나라 군대냐고 물었다고 한다. 0교시 수업과 야간수업까지 하면서 공부에 시달리는 우리 중·고등학생들이 '한반도'나 '중공군'에 대해서 배우지 않는 대신에 습득하는 지식이 정말 우리 삶에 얼마나 필수적인 지식일까?
그것이 과연 '한반도'나 '중공군' 보다 더 절실히 알아야 하는 지식일까 생각하면 걱정된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Knowledge is power)" 라고 말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지(認知)는 가장 고급의 쾌락이다"라고 말했다. 나의 청춘에 무한한 영감이 되었던 것은 후자, 즉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다. 그래서 나는 그때는 '실용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문학을 필사적으로 파고 들었다. 문학도이기 때문에 가난은 숙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나에게 고귀한 감동과 희열을 주고, 나에게 인생을 공허하지 않고 의미있게 만들어 줄 학문이어서 연마하면서 오로지 감사했다.
그러나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말을 더욱 실감한다. 천연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인적자원을 잘 배양했던 까닭이 아니겠는가? 고등 교육을 받은 인력이 선진기술과 학문을 도입해서 눈부신 경제발전을 이뤘고, 이제는 우리가 발전시키고 개발한 학문, 기술을 세계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그리고 요즈음은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의 사회경제적 손실 계산법까지 나온 모양인데(아마도 그런 질환으로 인한 업무 수행장애의 비용을 계산한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앞으로는 문학이 인간심성의 황폐화를 막는 효용도 계산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고, 계산할 수 있다면 그 경제적가치의 막대함이 판명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상식'이나 '소양'이 내면의 풍요로움을 위해 중요하지만 전문지식의 습득은 생존무기이자 윤리적 의무이다. 지각없었던 사춘기에는 성적 잘 받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 것 같이 보이는 급우들을 경멸했고, 의미없는 공부에 얽매이지 않을 양심의 자유를 주장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중·고등학교의 교과도 모두 영문학 연구에 유용한 지식이라는 것을 깨닫고 크게 후회한다. 문학은 인간의 행위와 내면의 모든 것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예술이어서 어떠한 지식도 문학과 무관한 것은 없다. 내 학생들에게도 그들이 공부를 불성실하게 하면 앞으로 떳떳한 사회인이 될 수 없으니까 제발 공부를 하라고 호소하지만, 학생들은 안타깝게도 무지몽매한 시절의 나를 너무 닮았다. 의대생이 공부를 게을리하면서 자신이 3류 의사가 되는 것으로 만족한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3류 의사를 찾는 환자는 엉터리 진료를 받아도 무방할까?
외교관이나 각료나 대통령이 되어서 어떻게 하면 훌륭한 외교관, 각료, 대통령이 될까를 밤낮없이 고민하면서 조심하며 노력하지 않고 '내식대로'를 고집한다는 것은 의사가 의학 지식도 없이 '내식대로' 환자를 고치려는 것과 같은 행위이다.

<고려대 교수>

-한국방송작가협회 웹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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