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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해외순방
김병주   |  2005-10-14 12:38:02  |  조회 1962 인쇄하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던가. 듣기 좋은 말을 거듭 들으면서 굳었던 마음을 풀지 않을 만큼 독한 사람은 드물다. 그래서인가, "교묘한 말과 꾸미는 얼굴 빛에는 어짐(仁)이 적고 강직, 의연하고 어눌한 사람에 어짐이 있다"는 옛 성현의 말씀에 잔머리 잽싸게 돌리며 처신하는 세속인들은 귀머거리가 된 지 오래다.
이런 세속(世俗)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자의 주장, 인격, 경력보다도 그가 얼마나 임기응변에 능하고, 이미지 관리와 조직 관리를 잘 하는가로 결과가 판가름나곤 했다.

2002년 대선에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여야 후보 모두 세속에 영합하는 선거전략을 펼쳤던 것이 사실이고, 상대적으로 지지세력 몰이에 앞선 쪽이 이겼다. 당시 선거 때 "재미 좀 보려고" 내세웠던 사안들이 집권 후에는 중요 국책사업으로 승격, 무리하게 추진됐다. 수도이전 문제는 다행히도 국민 다수의 저지운동과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정으로 일단락된 듯하지만 여권에서는 미련을 못 버리고 다른 형태로 돌파구를 찾고 있다.

노 대통령은 얼굴을 맞대는 상대방이 가장 듣고 싶은 말을 골라내는 데 뛰어난 재간을 지녔다. 그가 가는 지역마다, 만나는 집단마다 말이 살짝 달라진다. 그러다 보니 말의 선후좌우가 모순되는 대목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만일 그가 그토록 미워하는 서울의 한강이남 일부지역(강남 서초 송파)을 방문한다면 지역민을 달래는 언변이 나올 성싶다.
집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 새지 않을 수 없는가. 해외순방을 즐기기 시작한 노 대통령은 방문국에 대해 덕담을 잘 해 환심을 산다. 순방국에 따라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당연지사이지만, 과장된 표현과 균형감을 상실한 대목이 끼여 있어 국가의 위신과 국익에 손상이 우려된다.

몇 가지 예를 들면 미국 방문시에는 "미국이 없었다면 내가 북한 수용소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반골 기질에 비추어 그럴 만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인식이라면 왜 북한의 인권문제를 외면하고 평양 정권의 체제 유지 지지발언을 거듭하고 나다니는가? 베이징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마오쩌둥(毛澤東)"이라고 발언할 때 그의 마음속에 중공군 참전으로 목숨 잃은 국군 용사들이 자리 잡고 있었던가? 도쿄에서 한국이 가장 가까이 할 나라를 일본 중국 미국의 순서로 말할 때는 무엇이고, 과거 친일인사 색출운동은 무엇인가?며칠 전 파리 방문시 프랑스 혁명이 인류역사상 "가장 훌륭한 발명"이며, 프랑스는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패권적 질서를 거부한" 점을 치켜 올렸다. 프랑스 혁명(그것이 "발명"인가?)과 후속된 과격한 전개과정 및 반동에 대한 다양한 역사 평가를 의식했다면, 그리고 근대 프랑스의 철저한 실리주의를 조금이라도 안다면 발설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프랑스가 과연 강대국인가? 이따금 미국에 딴죽을 걸어 자존심을 달래며 자기 만족하는 나라다. 에어버스 비행기 구입자에게 레종 도뇌르(국가최고훈장)로 포섭하고 고속철도(TGV) 팔 때 문화재 반환약속쯤 떡 먹기로 한다. 독립쟁취(1962년) 과정에서 알제리 국민이 치른 피의 희생을 기억하면 `자유, 평등, 박애`의 혁명구호와 달리 과거 프랑스는 악랄한 식민지 종주국이었음을 안다. 현재도 유럽공동체(EU)가 프랑스 독주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고, 경제의 장래도 불투명하다.

국민 대다수는 해외에 나간 대통령 보기를 곡예사의 줄타기 보듯 한다. 그래도 해외순방은 계속돼야 한다. 무언가 보고 배우는 점이 있을 것이고, "기업이 나라의 얼굴", "기업인이 애국자" 등 때로는 쓸 만한 말이 토로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해외발언 따로, 국내정책 따로 가는 데 있다. 경제 살리기는 `뉴딜`, `종합투자계획`보다는 바로 대통령의 경제 중요성 인식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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