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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외교·국방 모든 면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왠지 국정이 원활하게 잘 돌아가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국민은 정부에 대한 실낱 같은 기대의 끈조차 방기한 채 체념 상태에 빠져 있고, 심지어 불안감까지 느끼고 있다. 말수조차 줄고 횡행하는 것은 오직 우스꽝스러운 정치 패러디뿐이다.
현 정부를 탄생시킨 지지세력, 즉 진보세력조차 정부의 잦은 실책과 국정운영 미숙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등을 돌리고 있다. 정체성, 수권능력, 한반도 평화관리 등 여러 국면에서 위기를 자초한 무능하고 오만한 정부라고 매도하고 있는 것이다.
『고효율적 인간의 7가지 습관』이라는 저서로 유명한 스티븐 커비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 ‘7가지 습관’과 관련해 인간이 스스로 나아지려는 ‘갱신갱생(更新更生)’의 프로세스를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이 갖는 네 가지의 중요한 능력 즉, 육체적 능력, 정신적 능력, 지성의 능력, 사회·정서적 능력이 두루 구비돼야 한다고 전제한다. 이 네 가지 능력 전반에 걸친 균형적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네 가지 능력 중 한두 가지 능력 제고 노력을 게을리하면 나머지 능력 모두에 제동이 걸려 결국 네 가지 측면 전체에 악영향을 미쳐 실패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커비의 생활철학은 조직의 철학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커비는 조직에 있어서는 육체적 측면에 합당한 것으로 ‘경제적 측면’, 정신적 측면은 ‘조직의 목적·공헌의 의미 발견’, 지적 측면은 ‘인재 개발·활용 평가’, 사회·정서적 측면은 ‘인간 관계, 이해 관계자와 관계, 하급자를 다루는 방법’이라고 언급하고 이 네 가지 측면 중 어느 한 가지만이라도 소홀히 한다면 조직에 해를 끼치게 된다고 했다.
기업 조직에 있어서는 경제적 측면, 즉 돈 버는 일에만 노력을 집중하는 기업이 있다. 하지만 이 같은 기업의 조직문화 속에서는 커다란 마이너스 효과가 작용해 부문간 소모적 경쟁이나 방어적 발언 또는 낭비적 정치적 게임까지 펼쳐질 수 있다. 기업이 주주가치 극대화, 사회에 대한 공헌, 종업원 복지증대, 장래 투자재원 확보라는 면을 무시한다면 그 조직은 발전을 기약하기 어렵다.
돈벌이만 집중하는 기업 발전 안 돼
또 반대로 사회·정서적 측면에만 충실하고자 전념하는 기업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적 실험을 행하는데 불과하고 경제적 기능이 전혀 가동하지 않는다. 효과성을 측정하는 척도도 없다 보니 결과적으로 능률이 저하되고 결국 시장에서 생존하는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이 조직을 한 차원 높여 정부라는 조직에 대위(代位)해보자. 우리 정부의 조직 문화는 과연 어떠한 상태일까? 우선 경제적 측면을 보면 정부는 국리민복에 역량을 경주해 국민을 잘살게 해주어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진다.
그러나 이 측면에서 보는 우리 정부에 대한 평가는 낙제점을 면할 길이 없다. 오늘 당장 어렵더라도 앞으로 점차 개선되리라는 희망적 기대를 국민으로 하여금 갖게 하기는커녕 장차 증대일로로 치달을 운명인 각종 국민 세 부담의 중압감과 이에 따른 삶의 질 악화의 비관적 예측 때문에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떠한 구실과 변명으로도 이러한 부정적 추세를 부인하지 못 하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둘째, 인재의 개발·활용·평가 측면을 보면 요직 인선에 있어 인재를 널리 구하고 검증하여 활용해야 한다. 그러나 편협하고 다루기 쉬운 측근들만 회전목마 태우기처럼 돌려가며 기용하는 이른바 코드인사 때문에 전혀 발전이 없다.
‘파키슨’의 제2의 법칙이란 것이 있다. 조직은 구성원의 보신을 위하여 자기 번식하고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대조직을 만드는 우를 범한다는 내용이다. 이 법칙이 지금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생각이 전적으로 같은 측근만 등용하다 보면 동족교배의 과오를 범하게 되고 신선한 충격도, 새로운 정책 발상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공자’의 논어에도 “망하는 나라의 군주는 오직 그의 말에 거역하지 않는 자만 즐긴다”고 했다. 이른바 예스맨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은 특히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하고 정보화돼야 할 사회에서 매우 위험한 일이다.
폭넓게 인재를 구하고 양성한다는 장기적 안목의 정책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민심이 갈망하는 혁신적 인사는 정부의 이른바 혁신의 구호가 공허하듯 아예 정부 고위층의 안중에 없는 것 같다. 입에는 쓰지만 옳은 충고와 좋은 라이벌 관계는 힘을 신장시킨다는 진리를 왜 외면하는지 모르겠다.
지도자의 덕목은 균형감과 상식
셋째, 사회·정서적 측면을 보면 인간관계, 이해 관계자와의 원만한 관계, 국민을 다루는 방법 등에 있어서 우리 정부의 실적은 부정적이다. 좌파의 이념적 정체성 혼란 속에서 편가르기식 사회갈등 구조만 키우고 부각시킴으로써 국민의 공통된 요구를 전혀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
지도자는 수임된 권한으로 요즈음 시끄러운 한·미 FTA협상 추진이나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를 단시일 내에 시행한다고 한다. 하지만 찬반 뉘앙스로 보아 국민이 위임한 권한의 참뜻과는 사뭇 괴리되어 있다. 권한에는 공정하고 보편적인 의무가 전제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외면한 모험적 노기까지 감지되어 서글프다. 국민이 명확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설득 논리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전국 균형발전이라는 명분 하에 추진되고 있는 각종 지방개발은 소기의 성과 달성 이전에 전국이 투기장화하여 땅값만 올린 부작용만 초래하고 있다. 가장 역점사업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양극화 해소 문제도 해소되기는커녕 인사, 전작권, 균형발전의 그늘에서 또 다른 양극화 현상들이 새롭게 생성되어가고 있다.
사회·정서적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지도자의 덕목은 균형감각과 최소한의 상식선으로 이해되건만 이를 인지하지 않거나 무시해 버릴 때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야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신적 측면을 보면 국가라는 조직의 목적을 국민이 정부와 함께 공감, 공유해야 하는데 교감이 단절된 채 각각 따로 놀고 있으니 한심하다. 국민이 정부의 정치·경제·외교·군사·교육·대북관계 등 최근 정책에 관한 청사진 제시가 없어 국정 방침에 대한 방향과 당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간간이 단편적으로 들리는 최고지도자의 감정적 언급에 매달려 제각각 해석하고 있을 뿐이다. 아무리 부인하고 궁색한 변명을 달아도 대외적으로 우리 정부의 위상은 실추되고 불신을 받고 있음은 엄연한 사실이다.
자동차 산업의 선구자 ‘헨리 포드’는 “성공의 비결이 있다면 그것은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기 스스로의 입장과 같이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말했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온 국민을 아우르겠다는 의지 없이 편가르기식 발언을 하고 민감한 대외관계에 외교적 예의 없이 당사국과의 우호관계에 금이 갈 수 있는 말을 주저 없이 한다는 것은 상식의 선을 넘어섰다고밖에 볼 수 없다.
결국 우리 정부는 커비의 네 가지 원칙 모두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국민은 무엇을 기대하며 살아야 하는가?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잘못을 자기 스스로에서 찾고, 소인은 이를 타인에게서 찾는다”고 했다. 지금처럼 스스로 행한 언행에서 빚어지는 부작용의 책임을 반대세력이나 언론으로 돌리는 행위는 옳지 않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가 창피한 일을 했다고 자각하더라도 이 행위는 어디까지나 자기의 의무감에서 수행한 것이라고 주장한다”고 한 영국의 극작가 버나드 쇼의 말, 또는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 힘이 못 미치는 사안에 대하여는 무조건 반대한다”고 한 프랑스 작가 라 로슈우 코의 경구, 그리고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음의 확실한 증거는 자기 주장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흥분하는 버릇이다”라는 몽테뉴의 말이 특히 의미 있게 느껴지는 요즈음이다. 홍세표 객원기자
-2006.08. 이코노미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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