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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청와대와 여당의 당정협의회에서 소위 ‘비전2030’이라는 장기 복지정책이 ‘함께 가는 한국’이란 부제와 함께 제시돼 화제다. 요즈음 온 나라가 시끄러운 ‘바다이야기’에 묻히다 보니 비전2030이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어 다행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자칫 국민의 부담만 더 커질 수 있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비전2030의 중장기 복지대책을 보면 2010년까지 4조원의 예산이 소요된다. 또 2010년에서 2020년까지 300조원, 2021년에서 2030년까지 1300조원이 든다고 한다. 결국 2030년까지 무려 1600조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가뜩이나 전시작전권 환수를 비롯한 각종 정부지출 예산 증가로 인한 국민 세부담 예상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마당에 그 재원을 국민으로부터 어떻게 더 거두어 들여 충당하겠다는 말인지 이해가 안 간다.
지난 3년간 우리 경제는 분배치중 정책으로 인한 연속 저성장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 중앙정부 채무는 239조원을 기록했다. 무려 112조원이나 늘었고 장차 더 증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결국 국민의 세부담이 더욱 증가한다는 것이다. 국민의 주머니는 돈을 쏟아내는 마법의 주머니인가?
참여정부가 이름에 걸맞지 않게 정책 입안에 국민을 참여시키기는커녕 국민을 이해시키고 설득하지 못한 것이 정책의 장기비전 결여 때문이었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왜 정권 말기에 즈음해 황당하게 이러한 거창한 계획을, 그것도 분배만 의식한 계획을 제시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경제는 분배만 고려해서 풀리는 것이 아니고 여러 요소가 복합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여당의 반대에 부닥친 대통령은 심지어 “감세는 있는 사람이 득보고 증세는 없는 사람과 같이 가자는 것인데 왜 반대하느냐?”고까지 발언했다니 그 논리에 경악을 금할 길 없다. 2030년까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편 갈라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겠다는 뜻인가? 대통령이 과연 이런 발언을 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더위를 식히기 위한 농담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러나 농담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사안이 중대하고 사태가 심각하다. 지금까지 펴온 참여정부의 분배우선 경제정책은 실패했고, 증세로 인한 국민 압박은 더해 갔다. 이 정책은 민생, 특히 저소득층을 어렵게 해 왔음을 국민은 모두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다.
분배를 우선시했던 유럽 제국에서조차 분배 정책의 실패와 그 후유증에 시달려 이를 만회하기 위한 여러 가지 대책이 수립되고 정책의 전환 또는 수정, 선회가 반성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는 것이 아닌지? 잘못된 정책에 대한 자성은커녕 이 정책을 더 키우고 펴 나가고자 하니 답답한 것이다.
잠재성장 1~2%대 ‘폭락’ 예상도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서는 비전2030이 시행되지 않은 상황, 즉 현행 제도하에서도 국민총생산(GDP) 대비 복지부문 지출 규모가 현재의 6~7% 선에서 2030년에는 2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의 실패한 경제정책 때문에 오늘날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4%대 선으로 하락했다. 이 성장률이 2030년에는 2.9%로 떨어진다고 KDI는 전망하고 있다. 기업투자 부진이 이 이상 지속되면 잠재성장률이 심지어 1~2%대로 폭락하리라고 예측하는 기관도 있다.
경제 여건이 이토록 악화되지만 현 정부는 이에 대한 시정책은커녕 아무런 고려 없이 분배정책을 금과옥조로 밀고 나가고 있다. 이런 와중에 느닷없이 터져 나온 비전2030은 무슨 목적을 함축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그 정체는 무엇이며 시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를 입안한 정책 당국자나 이를 발표한 지도자의 깊은(?) 뜻에는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아무리 잔머리를 굴려 보아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러한 발상이 어느 층에서 어떻게 나왔는지 모르지만 너무나 시대착오적이고 비상식적이다. 적어도 정책 입안의 전문가라면 시대의 조류와 현대경제학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고 공부한 균형잡힌 지식을 갖춘 인사라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금세기의 대표적 석학 앨빈 토플러, 피터 드러커, 톰 피터스는 한결같이 글로벌시대의 정부 역할은 줄어들어야 한다고 역설했고, 또 예견했다. 심지어 그들은 “국가는 기업의 발목을 잡는 코스트 센터로 전락할 운명에 있다”고 까지 말하고 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최근 전 세계의 석학들은 국가 역할이 축소되어야 하는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한국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유대계 프랑스 석학 J 아다가 바로 그런 전문가다. 그는 최근의 저서 『경제의 세계화』에서 “미국 자본주의의 다이내믹스가 차츰 그 영토적 기반에서 유리되어 가면서 겨우 유지되듯이, 모든 국가의 자본주의도 이 같은 처지에 놓여 있다. 이는 경쟁원리(기업들)의 세계적인 승리와 다르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는 시대에 뒤떨어진 큰 정부를 지향하는 정책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결코 정당화할 수 없는 온갖 국가적 낭비를 일삼으면서도 아무런 자책감 없이 계속 예산만 늘려 나가고자 하는 의도는 불가사의하다.
“국가는 쇠퇴하고 지식이 승리한다”고 한 피터스의 말은 지식이 곧 사기업의 영역이라는 그의 정의로,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즉 국가의 존재가 크면 클수록, 권력이 비대하면 비대할수록 지식으로 대표되는 사기업 부문은 위축되고 자본주의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지적인 것이다.
정부가 비대해지면 지금 전개되고 있는 글로벌화 과정에서 성장 동력이 위축될 수있다. 토플러는 최근 출간한 『부의 미래(Revolutionary Wealth)』에서 급속히 진전되는 경제발전의 속도에 정부의 정책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속도의 충돌’ 때문에 위기가 조성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21세기는 특히 불확실한 시대다. 최근 정통학파 이론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경제학 이론조차 경제를 다루는 데 불확실성을 가장 큰 요소로 지목하고 불확실성 예측을 제일의 과제로 꼽고 있다. 급속도로 글로벌화하고 IT화해 내일을 예측하기 어려운 불확실한 시대다.
또 정부의 역할이 점차 축소될 운명 속에서 어떻게 장차 24년이라는 긴긴 세월을 내다 본 복지정책을 내놓을 수 있었을까. 극히 제한된 비전문적 인력과 검증받지 못한 지식으로 수립하기에는 너무나 무모해 보이는 정책이다. 고정함수 관계조차 없어져 버린 이상 결코 확실한 것이 없다는 전제에서 경제를 설명할 수밖에 없게 된 마당에 2030년까지의 계획을 세운다기에 하는 말이다.
작은 정부 만들어야 살아남는다
물론 국가의 장기적 비전의 존재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장기적 비전을 수립하려면 준비가 필요하다. 더구나 천문학적 예산(결국은 국민의 세부담)의 뒷받침이 소요되는 계획입안을 위해서는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과 전문가의 심도있는 토론을 거친 충분한 국민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 정부의 잔여임기가 초읽기에 들어간 이때에 난데없이 이토록 정제되지 않은 비전을 펴 내는 것은 신중치 못한 처사다.
사정이 이러하거늘 정부는 왜 국민을 괴롭히고 경제의 발목을 잡는 정책을 펴 내며 부적절한 발언을 되풀이하는지 모르겠다. 왜 기업에 각종 제도적 족쇄를 채우고 반기업 정서만 키워 기업의 경쟁력을 억제하려고 하는지? 온갖 구실로 투자 여건을 어렵게 만드니 투자도 어렵다. 가뜩이나 고용 축소적 방향으로 정책을 펴니 국내 기업 환경은 더욱 어렵다. 총체적으로 정부의 정책을 불신하는 풍토를 정부 스스로 조성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최근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시하는 분야가 안보와 경제다. 하지만 이 분야의 정부정책 방향은 대부분 국민정서와도 너무나 떨어져 있다. 안보는 주권회복이라는 명분하에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추진해 국민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안보와 직결된 문제는 바로 경제다. 올해부터 2010년까지 연평균 약 10%씩, 재정총액의 약 18%인 139조원, 2020년까지는 621조원을 우리나라가 떠안게 된다. 이 모두 증세를 통해 해결해야 하는데 늘어가는 세금에 시달려 온 국민이 좋아하겠는가?
사실 지난 5년간의 정책 실패로 소비·투자·수출의 선순환 구조가 붕괴됐다. 성장동력이 수출에만 의존한 채 침체되고 내수부진은 경제성장을 현저히 둔화시켜 국민은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안보와 경제에서 모두 정부의 존재가 부정적 의미로서만 부각되고 있다.
시급히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해 있는데 이들을 외면한 채 할 필요가 없는 일에만 매달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시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 절박하지도 않고 현실성이나 실현성도 없어 보이는 비전2030은 즉시 거두어 들이고 국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기 바란다.
그들이 왜 살기 힘들다고 하는지 듣고 최선을 다해 그 해답을 찾아보기 바란다. 그리고 다시는 비전2030을 재론하지 말기 바란다. 세계적인 웃음거리를 제공할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홍세표 객원기자
-2006.09. 이코노미스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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