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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자주 외교여 안녕
김영희   |  2006-11-20 04:33:53  |  조회 2819 인쇄하기
한.미 관계는 얼마나 아픈가. 노무현 정부의 자주 외교는 한.미 관계를 얼마나 망가뜨려 놓았는가. 한.미 국방장관이 10월 20일 미 국방부에서 가진 공동기자회견 속기록을 읽고 "한국과 미국, 동맹국 맞아?"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이 안보협의회의(SCM)를 마치고 기자들 앞에 나란히 설 때는 대개 유익한 논의를 했다면서 상대방을 치켜세운다. 입장 차이가 남았어도 어물쩍 넘어간다.

그러나 윤광웅.럼즈펠드 두 장관은 기자들 앞에서 경쟁적으로 이견을 드러냈다. 한.미 관계의 총체적인 위기를 노출시킨 것이다. 윤 장관이 이번 공동성명에 미국의 핵우산 제공이 구체적으로 언급될 것이라고 말하자 럼즈펠드는 핵우산에 관해서라면 과거 "여러 해(Many, many years)" 사용한 것과 같은 표현이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윤광웅의 "달라요"와 럼즈펠드의 "같아요"가 교환됐다. 이것이 과연 동맹국 장관들의 공동회견인가 싶을 만큼 낯선 모습이었다.

기자가 윤 장관에게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할 것으로 보느냐고 물었다. 윤 장관은 김정일이 추가 실험은 안 하겠다고 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기자가 "김정일의 말을 믿습니까"라고 추궁하는 대목에서 럼즈펠드는 피식 웃어버렸다. 전작권 이양 시기에 관한 답변에서도 럼즈펠드는 "대강 2009년"이라고 말하고 윤광웅은 2012년이 최선의 해라고 말했다. 핵우산에 관한 추가 질문이 나왔을 때 두 장관은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웠다. 럼즈펠드-"한국 측에서 표현을 바꾸자는 제안을 냈다는 말을 못 들었다. 표현은 더 바꿀 여지가 없다." 윤광웅-"어제 오늘 우리는 그 문제를 광범위하게 논의했다. 공동성명에는 과거와 다른 말이 들어갈 것으로 희망한다." 럼즈펠드-(웃으면서) "그러세요?" 윤광웅-"예." 럼즈펠드-(웃으면서) "귀하는 나보다 정보가 많소이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 외교는 북한 핵실험 방지에는 실패하고 한.미 관계만 벼랑끝까지 끌고 왔다. 미국에 할 말 하면서 한반도 문제는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고, 미국과 중국에 대해선 등거리 외교를 한다는 자주 외교는 북한의 핵실험 하나에 설 땅을 잃고 있다. 지난해 노무현 정부는 한.미 안보협의회의 공동성명에서 핵우산 부분을 빼자고 요구했다. 미국의 반대로 핵우산 조항은 살아남았다. 그것을 이번에는 표현을 구체적으로 강화하자고 요구한 것이다. 전작권 환수도 2009년까지 가능하다고 했다가 미국이 좋다고 나오고 북한이 핵실험을 하니까 "2012요"하고 입장을 뒤집었다. 이건 정신분열증인가, 정책의 유연성인가.

자주파 장관들을 바꾼다니까 대북.대미정책의 기조에 변화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한.미 동맹의 존재이유, 한반도 주변상황, 핵.미사일을 가지려는 김정일 정권의 의도를 상호관계 속에서 개념적으로 파악하는 인식능력을 갖추지 않는 한 장관 몇 바꿔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노 대통령더러 외교.안보 철학을 바꾸라는 요구가 있지만 그에게 바꾸고 말고 할 철학이 있는가를 먼저 묻고 싶다. 노 대통령은 그의 대미.대북정책의 어디가 잘못됐는가를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한국은 지금 북한을 얼싸안고 국제적인 고립의 벼랑끝에 서 있다. 굴러 떨어지지 않으려면 자주파 장관을 바꿀 때 실용주의 대북.대미노선의 발목을 잡은 외교라인의 386들을 함께 청산해야 한다.

북핵 해결의 출발점은 한.미 관계의 복원이다. 그러자면 안보리 결의와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이행의 초기단계에는 한국도 적극 참가해 북한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대북 제재에 참가하면 큰 대가를 치를 것이라는 북한의 속 보이는 협박에 대한 최선의 대응은 제재에 적극 참가하는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가 대화를 통한 북핵 제거와 한반도 비핵화라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의 말대로 북한이 대화의 장으로 돌아올 다리는 남겨둬야 한다. 그러나 민족자주 외교에는 안녕을 고할 때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2006. 10. 27일자 중앙일보
      
굿소사이어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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