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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가는 정당, 백년을 지탱하는 정당.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창당하면서 내건 기치요 기백이었다. 천년은커녕 10년도 못채우는 정당, 백년은 차치하고 4년도 못버티는 몰골로 끝나고 있다.
그런 정당을 호기롭게 만들었던 지도자들이 창당은 실패했다고 자인했다. 국민의 신뢰를 상실했다고 자백했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되었는지 원인을 규명하는 일이 급선무다. 그리고 책임을 질 일이 있다면 지고, 사과할 일이 있다면 사과를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특히 국민을 금쪽 같이 모셔야 하는 정치인이라면 말이다.
그 실패한 창당 상습자들이 그런 순서를 생략한 채 또 다른 백년, 천년의 꿈을 기획하고 있다. 언필칭 평화·민주·개혁 연대세력을 담을 새 그릇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괴이한 발상이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새천년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무슨 반동 보수파의 집결체였던가. 자신들만이 이 땅의 온전한 평화·민주·개혁 연대세력이라면서 상대방은 꼴통보수·반동세력이라고 매도했던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었나.
그들이 느닷없이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연대를 위해 새롭게 당을 만들어야겠다고 야단법석을 떨고 있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난감하기 이를 데 없다. 자기의 정체성과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평화·민주·개혁 세력이 바깥에 더 있다면 그들을 영입하거나 흡수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른바 평화·민주·개혁 세력은 어떻게 쪼개졌나. 보수반동이 책동한 결과인가. 스스로 쪼갠 그릇을 다시 붙이자는 것이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연대논리다. 포복절도할 일 아닌가.
국민을 기만하자는 논리치고는 너무 얍삽하다. 내년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현재의 민심이반 상태로는 야당을 도저히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 명백해지자 다시 지역주의로 환원하자는 얄팍한 술수를 ‘평화·민주·개혁 세력의 연대론’으로 호도하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포장은 그럴듯하지만 알맹이는 지역대결구도의 복원이 아닌가.
민심이반이 왜 되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그 결과 이런 논리가 나왔다면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이해는 할 것이다. ‘평화·민주·개혁 세력’은 지난 9년간 이 나라를 통치했다. 세상을 바꾸었다. 간첩도 민주화 투사로 대접받고 활보하는 세상이다. 정부와 사회의 핵심에 ‘평화·민주·개혁 세력’이 똬리를 틀었다. ‘평화·민주·개혁’ 노선의 정치와 정책을 지속적으로 집행했다.
그럼에도 민심이 왜 이반했는가. 이 원인을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고칠 것은 고치고, 없앨 것은 없애고, 미흡했던 것은 더욱 힘을 내서 추진하여 민심을 되찾는 정치를 하는 것이 올바른 행보가 아닌가. 집안에 물이 새고 서까래가 부식하고 거미줄이 쳐져 있는 집을 팔겠다고 내놓았다. 집사려는 사람들이 집을 둘러보고는 사지 않자 집의 외관만 번듯하게 치장하여 다시 호객한다고 집이 팔리겠는가. 먼저 집안 청소부터 깨끗이 하고 물이 새는 부분을 고치고, 서까래를 새로 바꾸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자칭 평화·민주·개혁 세력은 그와 같은 뼈를 깎는 자성의 노력을 하지도 않은 채 새로 당을 만들면 민심을 회복할 것이라고 믿는 모양이다.
그 세력이 신당을 만든다고 하자. 민주당과 우리당의 합당이다. 일부 외곽 세력이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참여할 것이다. 그렇다고 호남을 텃밭으로 하는 서부연합이라는 본질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런 지역주의로 뭉치면 그래도 ‘미워도 다시 한번’의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창당상습자들은 꿈꾸고 있는 것이다. 그 꿈은 너무 안쓰럽고 참담하다. ‘진보’를 외치는 세력이 역사에 과오를 거듭 짓는 것이 안쓰럽다. 그리고 그들의 교활한 책동이 이 땅에 지역주의를 좀더 오래 서식하도록 하는 것이 참담하고 두려운 것이다.
그들은 국민이 어리석게도 다시 속아줄 것이라 기대하는 것이다. 백년과 천년을 꿈꾼 열린우리당과 새천년민주당이 한낱 백일몽이었음을 겪고도 그런 미혹에 사로잡힌 그들의 대담함과 욕망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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