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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의 선거패배는 북핵의 기회다
김영희   |  2006-11-27 01:13:11  |  조회 2762 인쇄하기
미국의 중간선거는 사실상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집권 6년을 평가하는 국민투표였다. 부시는 대패했다. 의회는 12년 만에 민주당 손으로 넘어갔다. 부시가 유권자들의 불신을 받은 가장 큰 이슈는 총론적으로는 동맹국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의 독불장군식 일방주의 외교, 각론적으로는 이라크 전쟁이었다. 개전 석 달 만에 바그다드를 점령하고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렸지만 지금 미국은 이라크의 깊은 수렁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한다. 국민의 좌절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공화당 패배가 확인되기 무섭게 '미스터 이라크 전쟁'으로 통하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사임이 발표된 것은 부시가 이라크 전쟁에 내려진 국민의 엄중한 심판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는 증거다.

의회는 청문회와 입법과 예산안 승인이라는 막강한 수단으로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부시는 지난 6년과는 달리 민주당 의회와 초당적인 협조를 하지 않고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부시의 독주 시대는 끝났다는 말이다. 표현을 달리하면 지금부터 부시는 레임덕이 된다. 대외적으로는 동맹과 국제기구와 국제법을 통한 평화와 안정의 달성에 좀 더 무게를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문가들이 즐겨 쓰는 표현으로는 대외정책의 기조는 변함이 없지만 스타일에는 변화가 예상된다. 정책 입안과 수립에서 스타일은 정책의 전반적인 기조 못지않게 중요함을 생각하면, 미국의 선거 결과는 미국 국내정치뿐 아니라 국제정치의 지형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리의 초미의 관심거리인 북핵과 북.미 관계는 어떨까.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들은 재빨리 부시 정부 대북 정책의 기조에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한 '김칫국 마시기'라고 경고한다. 그럴 것이다. 부시의 대북 정책은 북한은 악(Evil)이고 악은 대화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부시 특유의 종교적 신념 위에 서 있다. 부시는 대북 강경 정책의 기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도 수많은 백성을 기아로 내몰면서도 값비싼 핵.미사일로 무장하는 북한을 곱게 보지 않는다.

그러나 중간선거에 선행(先行)한 두 가지 호재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는 6자회담 재개 합의요, 둘은 의회의 북.미 대화 요구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여 핵 보유국을 자처하는 지금 6자회담이 다시 열린다고 해도 협상의 앞날은 멀고 험난하다.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 것인지도 확실치 않다. 그래도 회담 재개를 위해 힘을 빼는 것과 회담장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다르다. 부시의 대북정책 변화 여부와 관련해 훨씬 중요한 것은 의회의 북.미 대화 독촉이다. 의회는 지난 9월 대북 고위정책조정관을 임명하라는 요구가 붙은 2007년도 국방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부시는 10월 17일,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순순히 법안에 서명을 했다.

부시는 이 국방예산수권법(授權法)이 발효한 날로부터 60일 이내가 되는 12월 17일까지는 고위급의 대북정책조정관을 임명해야 한다. 클린턴 대통령이 1998년 임명한 대북정책조정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은 대북정책조정관 활동의 모범 사례다. 그는 부처 간 정책을 점검.조정해 북한 핵.미사일에 관한 정책방향을 만들어 대통령과 의회에 보고했다. 페리 프로세스가 그때의 북핵에 관한 교착 상태를 타개했다. 국방예산수권법은 북.미 대화를 촉구하는 의회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의회의 요구는 초당적이다.

윌리엄 페리가 정력적으로 서울과 평양.베이징.도쿄를 오가면서 당사국들의 의견을 들을 때 김대중 정부는 페리보고서가 햇볕정책과 조화를 이루도록 페리를 상대로 맹렬한 설득 작업을 벌였다. 부시 정부가 선거에 졌지만 대북정책의 기조를 바꾸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로 체념하는 것은 안일한 자세다. 선거 패배와 럼즈펠드 사임은 외교라인에서 네오콘(신보수파)과 온건협상파의 세력 균형이 후자 쪽으로 기운다는 신호다. 워싱턴의 분위기는 바뀐다. 부시 패배를 희망적으로 보자. 그의 대북정책조정관에게 무엇을 설득할 것인가 착실한 준비를 하자.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
-2006. 11. 10일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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