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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료타로의 편견
신봉승   |  2006-11-14 00:21:04  |  조회 3096 인쇄하기
일본이라는 나라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라는 빼어난 소설가를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큰 행운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1억 3천만 일본국민이 알게 모르게 시바 료타로가 쓴 소설을 통하여 일본의 정체성을 점검할 수가 있었고, 또 일본의 미래를 설계하였음을 내가 알고 지내는 일본의 지식인들의 마음에서 충분히 읽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같은 내 생각에 모든 일본인들이 동의해 줄 것이라고는 생각하질 않는다. 더러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을 읽은 일이 없었노라고 강변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더러는 시바 료타로라는 소설가에 의해 일본적인 국수주의가 싹텄다고 비판하는 지식인도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일본에 시바 료타로라는 발군의 역사소설가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춘원 이광수, 월탄 박종화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소설가가 있었으나, 그분들이 쓰고 또 남겨놓은 작품을 세세히 살펴보면 역사적인 사실을 재미있게 나열하면서 소설로 꾸며놓은 작품은 있었으되 그 작품 안에 나라의 정체성을 녹여 담아서 그것을 읽는 청소년들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고, 그 두근거림이 나라의 미래를 설계하는 호연지기와 연결되게 하는…, 그리하여 나라를 이끌어가게 하는 역사인식을 갈고 다듬게 하는 작품은 찾아보기가 어렵다. 아니 전무하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반대로 시바 료타로의 작품에는 역사의 큰 강물에 뛰어들어서 일본이라는 조국을 위해 무엇을 공헌할 것인지를 의미 깊게 담아내면서 그 나라의 청소년들로 하여금 가슴 두근거리게 하는 설득력이 있다는 사실에 유념해야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8년 전인 1996년, 초등학교 5학년의 국어교과서에 싣기 위해 집필한 <21세기에 살 너희들에게>라는 길지 않은 글에는 시바 료타로의 역사인식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나의 삶에 이미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가령 21세기라는 시대를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는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 듯한 문장이 포함되어 있는 것을 보아서도 자라나는 유소년들에게 역사가 무엇인지를 알아듣기 쉽게, 큰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나는 역사소설을 쓰면서 살아왔다. 처음부터 역사가 좋았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과 똑같이 역사를 사랑하고 있다. 역사란 무엇이냐고 누가 묻는다면 ‘그것은 큰 세계랍니다. 지금까지 존재하는 몇 억이라는 인생이 그 안에 가득 차 있는 세계입니다.’라고 대답하려고 한다.

이와 같은 시바 료타로의 역사인식을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 위해서는 또 선생님들은 얼마나 많은 내용을 더하여 강론하였겠는가. 일본의 어린 아이들은 그렇게 역사인식을 몸에 익히면서 어른으로 성장한다. 내가 부러운 것은 바로 이점이고, 우리에게도 역사소설 가는 있었지만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나라와 나라의 미래에 대한 꿈을 심어주는 작품이 없었다는 점이 늘 아쉽고 서운하였다.

시바 료타로는 범상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능력을 넘어서는 정말로 빼어난 역사소설가임에는 분명하지만, 한국이나 조선에 대하여서는 한 없이 인색하고 한 없이 편협하였다. 중국이나 몽고에는 그리도 소상하면서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 한국에 대한 편협한 몰이해는 그의 삶과 업적에 큰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그의 기행문집 <街道를 간다>는 모두 43권으로 된 방대한 량이기도 하지만, 거기에 기술된 박식함과 현장감 또한 작가정신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기에 독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 시리즈의 둘째 권이 한국기행인데, 제목부터가 해괴하다. <韓のくに紀行>라고 되어있는 이 책의 제목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직역을 하면 <韓의 나라를 간다.>로 되고, 좋게 읽으면 <韓나라에 가다>가 되지만, 그런 말, 그런 어휘가 성립될 수 없음을 그가 몰랐을 까닭이 없고, 그런 실례천만의 뒤틀린 제목을 가장 이웃나라 한국의 기행문집에 써야하는 저의가 무엇일까. 분문을 읽어보면 그 해답도 쉽게 나온다.

-‘황·皇’
이라는 것은 황제를 말한다. 한국 쪽에서 보면 ‘황제’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밖에 없다. 말할 것도 없이 중국의 황제이다. 한국은 이왕가李王家라고 말하는 것처럼 한 계급 밑의 ‘왕’이다. 당시의 한국은 서양적인 방식으로 해설하면 독립국이 되지만, 동양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중국을 종주국宗主國으로 섬기고 있다. 좀 거북하기는 하지만, 서양식으로 말하는 속국屬國은 아니고, 동양식으로 해석하면…, 이 말은 여러모로 법률어가 아니고, 여러모로 문명어로, 아무튼 중국문명의 산하로 들어가는 것으로 중국황제를 종주로 섬긴다고 말 할 수가 있다. 그래서 서울에 남아 있는 이왕가의 궁전宮殿에 가보아도, 하나의 문양으로서 같은 상상의 짐승인 봉황鳳凰은 있어도 용龍은 없다.
용은 어떤 경우에도 중국황제를 상징하는 것이기에 한 계급 낮은 왕(조선)의 신분으로는 사용되는 것이 아니고, 만일을 위해서 이번 한국여행 중에 서울의 옛 궁전을 참관하였을 때, 역시 봉황은 있었어도 용문양龍紋樣은 없었다. 이왕가가 하나의 룰義理로서 지켜온 것이리라. 이는 중국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뜻이 아니라, 이러한 것을 지키는 것이 예秩序的規範이며, 의義이며, 그렇게 되는 것으로써 어떤 시대…, 중국인들이 어떤 시대의 조선을 가르쳐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크게 찬양하였다. 이 일은 다시 한 번 일러두지만 서양풍의 본국·속국이라는 관계라기보다, 다른 말로하면 장유長幼의 개념이라고 하는 편이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이 글의 구성을 살펴보면 ‘조선왕조’를 ‘이왕가’로 비하하는 것은 그렇다 치고라도 뭔가를 말해야 하는 데, 시바 료타로의 문장답지 않게 비비 돌리고 꼬아서 자신의 속내를 애매한 문장으로 감추고 있음이 여실히 들어나 있다. 그리고 용을 운운하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조선의 대한 그의 편견과 무지가 어느 정도인가를 명료하게 보여주고 있다.

경복궁의 근정전과 창덕궁의 인정전 천정 한 가운데에는 용의 문양을 그린 괄목할 만한 그림이 있다. 물론 조선왕실을 상징하는 그림이다. 이 두 장소에 시바 료타로가 들리지 않았을 까닭이 없다. 만에 하나라도 보지 않았다는 변명도 성립되지 않거니와 보았으면서도 조선왕실에는 용의 흔적이 없다고 단언하는 것은 시바 료타로의 양식이 의심되는 대목임이 분명하다. 더구나 조선의 임금이 입는 옷이 용포龍袍이고, 임금의 앉는 의자가 용상龍床이며, 임금이 흘리는 눈물이 용루龍淚라는 사실은 한국인 모두가 아는 일인데, 천하의 시바 료타로가 조선왕실에는 용의 흔적이 없고, 그것이 중국 때문이라고 단정하는 그의 문장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단언하건 대 위에 인용한 문장 하나로써 시바 료타로의 편협 된 조선관을 알 수가 있으며, 따라서 그의 문학적 업적과 영향력에 큰 상처가 되고도 남을 것임도 명약관화해진다.

내가 시바 료타로를 만나서 위에 적은 문장에 대한 진위를 확인할 수 있었던 일은 내 문학적인 여정에도 의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국 구주 땅 가고시마에 ‘조선도공 14대 심수관’이 일본도자기의 명품 사쓰마야키薩摩燒를 구어내고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심수관이 외동아들 가쓰데루一輝(지금은 15대 심수관으로 활동 중)의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하객 중에 외국인 귀빈도 있어야 하겠는 데 한국에서는 신 선생이 참석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간곡하게 청하기에 흔쾌히 응했다. 바로 그 결혼식의 나카우토(仲人)로 시바 료타로가 참석하였다. 일본의 결혼 풍속은 결혼식은 가족들만으로 오붓하게 올리고, 피로연은 신분이나 가세에 따라 아주 거창하게 한다. 심수관가의 피로연도 가고시마 시에서 가장 이름 있는 호텔인 시로야마城山호텔의 대 연회실에서 거창하게 종일 동안 진행되었다. 나는 그 연회장에서 14대 심수관의 소개로 시바 료타로와 통성명을 하게 되었고, 아주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는데, 그 내용을 요약하여 기록하면 대략 다음과 같이 된다.

“선생님의 작품은 한국의 많은 지도급 인사들이 읽고 있습니다. 아시고 계시는지요?”
“아, 허허허. 들은 것도 같습니다.”
“일본 국민들이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역사인식을 가꾸어가듯…, 한국의 지식인들도 선생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일본식 역사인식에 물들어가 는 경향이 있습니다.”

순간, 시바 료타로의 표정에 긴장감이 돌았다. 나의 다음 질문을 짐작하고 있겠다는 그런 긴장감이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당신의 소설을 읽고 그것이 모두 진실일 것이라고 믿고 있다면 적어도 한국에 대한 당신의 역사인식에 때가 묻어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하는 것이 내가 직설적으로 묻고 싶은 말이다. 나는 앞에 인용한 ‘용’에 관한 문장을 되도록 정확하게 되씹은 다음 물었다.
“이 문장을 한국의 지식인들이 정말로 옳은 것이라고 믿는다면…, 한국 역사에 대한 선생님의 역사인식에는 큰 하자가 있음을 자인하는 것이 됩니다. 반대로 완벽하게 잘 못 된 문장이라는 사실을 한국의 지식인들이 모두 알고 있다면 선생님에 대한 지금까지의 존경심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독자들이여 놀라지 말라. 이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시바 료타로는 맥주잔을 들면서 하하하 너털웃음을 웃는 것으로 얼버무리려 들었다. 나는 잠시 시간을 두었다가 똑 같은 질문을 다시 했다. 그의 반응은 여전히 너털웃음을 웃는 것으로 되돌아왔을 뿐이다. 집요하게도 내가 세 번째 같은 질문을 했을 때, 시바 료타로는 그 당시 자신을 안내했던 사람이 한국을 대표하는 두 일간지의 편집국장이라는 사실을 털어놓았을 뿐이다.

1986년이던가. 쓰노타 후사코角田房子여사가 쓴 논픽션 <민비암살閔妃暗殺>이 일본에서 발간되어 순식간에 36판을 찍으면서 충격을 동반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쓰노타 후사코 여사가 <민비암살>을 쓸 때 나는 많은 사료를 제공하였고, 또 그녀와 수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작품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었다. 이 같은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월간 시사교양지 <新潮45>의 편집부에서 <민비암살>에 대한 서평을 청탁해왔다. 나는 그것이 씌어지던 경위를 짤막하게 소개하고, “한국의 역사와 관련된 일본인의 저작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쓰노타 후사코 여사는 역작 <민비암살>로 그 해의 '신조문화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심사위원장인 시바 료타로는 상당히 많은 지면을 할애하는 심사평을 쓰면서도 작품과 아무 상관도 없는 얘기만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을 뿐, ‘민비’라는 말이나 ‘암살’이라는 말을 쓰지 않은 것은 고사하고, 그 논픽션이 왜 수상작품으로 선정되었는지에 관해서도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었다. 일본인 지식인들의 한국관을 여지없이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일본인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나는 항변을 겸하여 불평한 심기를 수상자 쓰노타 후사코 여사에게 들어내고 말았다.

“그따위 심사평을 쓸려면 뽑질 말아야지, 뽑아놓았으면 최소한도 왜 뽑았는지는 입에 담아야지 심사위원장의 이름을 걸고 웬 헛소리랍니까!”

쓰노타 후사코 여사의 대답은 송곳 같은 날카로움으로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 사람 본래부터 그래요. 국수주의적인 오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인데도 한국인들은 그 사람의 소설만 좋아한다면서요?”

아, 쓰노타 후사코 여사의 마지막 말이 그로부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도 내 가슴에 되살아나곤 한다. ‘한국인들은 그 사람의 소설만 좋아 한다면서요.’ 그러나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시바 료타로의 역사소설을 일본어로 된 원문으로 읽고 감동하는 한국의 지식인들의 수는 날로 줄어들고 있음이 참으로 다행스럽기 때문이다.
-초당 신봉승 선생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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