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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16일 프랑스 정계는 신선한 충격에 휩싸였다. 내년 4월에 있을 대통령 선거에서 올해 53세의 여성인 세골렌 루아얄(Segolene Royal)이 압도적 다수의 지지를 받으며 사회당 후보로 선출되었기 때문이다. 21만 명에 달하는 사회당원들의 직접 투표로 선출된 루아얄은 다른 두 명의 경쟁자에 비하면 무명의 정치인과 같았지만 그녀는 무려 60%를 넘는 득표율을 기록했다. 어느 외신은 “그녀는 전통이 속박일 때 그것에 맞섰으며, 해방이 치욕을 불러오면 그것을 파괴하는 데 자신을 내던졌다.”고 전했다.
그녀의 삶 역시 지극히 평범하면서도 비범하다는 평을 듣는다. 그녀의 아버지는 직업 군인이었는데 아프리카의 세네갈에서 무관으로 근무할 때 그녀를 낳았다. 그녀는 프랑스의 엘리트 관료 양성 기관인 국립행정학교(ENA)를 졸업했으며, ENA 동기인 올랑드 사회당 제1서기와 정식 결혼이 아닌 파트너 형태로 지내면서 4자녀를 출산해 키우고 있다. 프랑수아 미테랑 정권 때 정계에 들어가 가족장관과 환경장관을 역임했는데, 전통적인 가정의 가치를 수호하고 아동 보호와 여권 신장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으며, 지금은 푸아투 샤랑트 지방의회 의장을 맡고 있다.
평범과 비범의 공존
그녀의 특출한 재능과 세련된 외모는 유권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녀는 늘 나이보다 젊고 발랄해 보이는 모습으로 TV에서도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어 모으고 있다. 항상 미소로 응답하는 그녀의 자태는 “누이 같으면서도 이모 같은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그녀는 자신은 전통의 일상성을 중시하지만 미래의 변화도 갈구한다고 밝힐 만큼 양자의 공존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여성으로서의 어머니의 역할은 의무라기보다는 미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러한 성격은 그녀에게 정치적으로 놀라운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최근 프랑스 정계는 파탄 전야에 놓여 있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유럽연합(EU) 헌법 비준 실패와 대도시 외곽 지역 주민들의 소요 사태, 중동 출신 노동자와 이슬람 교도들의 저항 및 최초 고용 계약(CPE) 파동 등 집권당의 총체적인 정책 실패에 분노하는 서민들은 신선한 인물과 정책을 갈구하고 있는데, 바로 그 초점에서 루아얄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루아얄은 “다정한 이모 같으면서도 사랑스러운 누이와 같은 이미지”를 갖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그런 이미지만 주는 여성은 아니다. 내면적으로는 변혁과 개혁을 추구하는 불같은 “철의 여성”이기에 우리는 그녀에게서 평범과 비범의 공존을 발견하게 된다.
"개혁이 목표다!"
그녀의 구호는 단순하다. “개혁이 목표다!”라는 구절이 전부다. 그녀는 프랑스야말로 지금 절박한 개혁의 시점에 놓여 있다면서 이때를 놓치면 프랑스는 3등 국가로 추락하게 될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다. 그녀는 명료한 말로 “좌파는 게으른 사람을 위한 이념이 아니며, 사회당은 과격한 혁명주의자들의 온상이 아니다. 현실과 개혁을 접목하는 것만이 유일한 출구”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급진적인 변혁보다는 현실성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인 변화를 추구하려 한다.
자신이 사회당의 비주류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주류 문화나 지배 논리의 콘텍스트(context)를 철저히 무시한다. 그녀에게는 당위적인 논리가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당위가 아니라 현실이어야 하며, 논리가 아니라 실천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가 유달리 일반 서민들의 직접 참여를 강조하고, “함께 이룩하는 미래”를 기원하면서 자신의 정강 정책조차도 사회당 유권자들의 인터넷 참여를 통해 함께 만들었던 것은 이러한 성격을 반영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이루어진 그녀의 정책은 심의민주주의의 성격을 상당 부분 담고 있다. 정치인을 감시 비판할 수 있는 시민 배심원단의 설치와 주 35시간 노동제 폐지, 불량 청소년에 대한 군사 훈련 실시, 따뜻한 가정을 위한 사회보장 등은 종전의 사회당 노선과는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국민 다수가 원하기 때문에 이를 실천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돌아오는 4월의 대통령 선거에 그녀가 당선된다면 이제는 유럽 대륙도 남성 주도의 주류 정치로부터 여성 정치인의 시대로 변모될 수 있을 것 같다. "부더러움 속에서 강함"을 갈구하는 시대정신인의 증거인지도 모를일이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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