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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Silk Road)의 역사는 약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말은 1859년에 독일의 리치토펜 공작(Baron Ferdinand von Richtofen)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낙타를 탄 카라반들은 이 길을 따라 중국으로 들어가 비단을 구입한 후 천산 남북로와 중앙 아시아를 거쳐 유럽과 터키, 중동 등지로 가서 그것을 팔았으며, 그곳에서 유럽의 약제라든가 도자기를 구입하여 중국, 인도, 동남아 등에 판매했다.
이들 상단은 보통 낙타 50여 필로부터 100여 필이 넘는 대규모로 이루어졌는데, 한번 실크로드를 통과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평균 6개월이었다. 말하자면, 실크로드는 1년에 한번씩 중국을 다녀오는 상단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6세기경에는 이 상단에서도 유럽의 상인이나 군인들이 인도나 동인도에서 생산되는 향료를 유럽으로 실어 나르는 데 앞장섰으며, 때로는 페르시아의 금을, 때로는 유럽의 밀이나 곡물을 인도와 동남 아시아로 운송하기도 했다.
문명의 가교
실크로드가 단순히 상거래만 하는 통로는 아니었다. 그것을 통해 종교가 전파되기도 했고, 새로운 과학 기술이 유입되기도 했다. 실크로드는 곧 동서 문명의 가교였던 것이다. 과학 기술, 예를 들면 유리나 종이 제조법 같은 것도 이들 상단에 의해 동서로 유통되었기 때문에 이 교역로야말로 동서양의 문명의 흐름을 이끌었던 도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실크로드에 하나의 통로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여기서 가지를 쳐 러시아로 흘러들어가 흑해로 이어지는 통상로도 있었고, 남으로는 인도를 둘러 아라비아 반도로 펴져나가는 길도 있었다.
900년 경, 즉 중국 당나라 후반기에는 중국 대륙도 분열되기 시작했고, 중앙 아시아에서도 이슬람 제국이 분화하면서 중앙 아시아 사람들의 유민화가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 때부터 실크로드 주변 지역에서는 정치적 불안정이 이어졌고, 군사적 충돌도 잦아지게 되었다. 결국 14세기와 16세기에는 실크로드가 완전히 폐쇄되고 말았다. 그러나 실크로드에 치명적인 충격을 가한 것은 영국의 제국주의였다.
이 지역에 침투한 영국의 제국주의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하여 조직적으로 경제적 약탈을 감행했다. 그 결과 실코로드 지역은 영국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으며, 실크로드의 경제성은 영국의 동인도회사에 의해 대치되고 말았다. 동인도회사는 스스로를 실크로드라고 자처하기도 했다. 이 때부터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동인도회사의 독점 통상물로 전유되었으며, 그 결실도 런던으로 흘러들어갔다.
새로운 실크 로드와 그 이후
그러나 2차 대전 이후부터 일어난 변화로 1950년대에는 중국 대륙에도 공산 정권이 들어섰으며, 러시아의 공산 정권은 중앙 아시아를 소비에트 공산 정권에 통합시키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중동과 중앙 아시아의 몇몇 국가는 풍요로운 자원 덕에 새로운 변혁의 시기를 맞게 되었는데, 특히 1970년대 이후에는 중동 지역의 석유가 대표적인 관건으로 대두하게 되었다. 게다가 1993년부터 중국이 원유 수입국이 탈바꿈하자 중동과 중국의 관계도 돈독해지게 되었다.
1989-90년에 소비에트 공산 정권이 붕괴되면서 중앙 아시아와 중동 전역이 다원적인 체제로 발전됨에 따라 이들은 중국, 러시아, 인도, 일본, 한국 등과 한층 더 밀접한 교역 관계를 맺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이전의 실크로드가 이제는 중동을 중심으로 하여 동서 교역을 전개하는 새로운 상황, 즉 “신판 실크로드”의 등장을 보여주게 되었다.
사실 동아시아의 경제 성장은 중동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으며, 유럽 역시 중동 지역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 지역의 새 모습은 석유 같은 지하 자원과 여기서 비롯되는 막대한 오일 달러, 거대한 소비 시장, 과학 기술, 군사력 및 노동력의 이주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교역의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이슬람권과 유교권의 연대는
“신판 실크로드”로 등장한 중동 지역은 풍요로운 석유 자원과 이슬람 문명권의 강화라는 두 가지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중동의 석유 자원이 전제되지 않으면 오늘과 같은 “세계인의 삶”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중동은 그 나름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이슬람 문명권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방의 기독교 문명에 맞설 그들 나름의 특수성을 고집하고 있다.
이들이 1969년에 창립한 [이슬람회의기구, Organization of Islamic Conference, OIC]에는 57개 이슬람 국가가 참여하고 있는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 등도 이 기구의 회원국이다. 한편, 2001년에 창립된 [상하이 협력기구, Shanghai Cooperation Organization, SCO]는 이 기구와 밀접한 연대를 맺고 있는데, 여기에는 중국, 러시아, 카자흐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등이 참여하고 있다. 결국 OIC와 SCO는 기독교 중심의 서구 문명에 맞서기 위해 서로 연대 관계를 맺고 있는 셈이다.
이제는 새로 등장한 “신판 실크로드”인 중동의 OIC와 이것에 연계된 SCO가 손을 잡음으로써 이전에 영국의 제국주의 때문에 이루지 못 했던 실크로드의 꿈-공동의 번영과 연대를 위한 세계인의 협력-이 새롭게 그 위용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면에서는 그것이야말로 다원적 공존 사회로서의 [신세계 질서, New World Order]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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