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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참 오래 살았습니다. 아직 살아갈 세월이 창창한데 무슨 말이냐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제까지 사시면서 한 일들을 생각해보세요. 겪은 일들 헤아려 보세요. 참 ‘많이 오래’살았습니다. 그 세월들이 우리가 한 일로 꽉꽉 채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말이 많습니다. 어떤 책에 보았더니 ‘노인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야기 덩어리’라고 했더군요. 공감이 됩니다.
그런데 한결같지는 않습니다만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 인지 우리 이야기에 메아리가 없습니다. ‘세상’이, ‘젊은이’가, 그리고 ‘자식’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듣고도 침묵해 버립니다. 가끔 메아리가 없지 않지만 그 소리에는 ‘언짢음’이 실리곤 합니다. 서서히 외로워집니다. 변두리로 밀려나는 것이 실감됩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습니다. 겨우 친구를 찾아 ‘쌓인 이야기’를 풀어놓습니다. 그런데 그런 친구조차 하나 둘 사라집니다. 때로 우리는 옛날 노인들의 ‘먼산바라기’ 하시던 그런 모습의 자신을 발견하고는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우리 모습이 대체로 이러합니다. 그런데 ‘우리 이야기’의 거절은 ‘우리 삶’에 대한 총체적 부정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쯤 되면 우리는 이 정황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배신과 모욕에 직면하면서 분노가 치밉니다. 그러다 무엇을 잘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나하는 자책에 시달립니다. 참 허무합니다. 내 삶을 빈틈없이 가득 채워 온 세월 같은데 그 채움이 순간에 덧없어집니다. 게다가 죽음은 멀지 않습니다. 회복의 기회란 없습니다. 보람과 긍지, 성취와 만족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저리게 시린 허무함, 채우고 채우려 안달하며 가꾼 삶인데 이제는 텅 비어버린데 대한 허탈이야말로 발언을 거절당한 노인의 현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삶은 누가 비우라하지 않아도 늙어가면서 저절로 비워지는 것인 듯합니다. 그것이 삶의 본연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비워지는 삶을 원망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습니다. 그렇게 ‘밀려나다’ 사라지는 것이 자연인걸요.
훌륭한 어른들께서는 오래 전부터 삶을 채우려 하면 욕심에 찌들어 사람답지 못하게 되니 ‘비움(空)’을 이뤄 사람다운 사람이 되라하셨습니다. 비움은 미덕이기를 넘어 인간다움을 빚는 존재의 구조라고 말씀하신 거죠. 그런데 노인이 되면 애써 비우려 하지 않아도 결국 텅 비게 됩니다. ‘비움(空)’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노인이 된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저절로 도통을 이루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공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둘 수는 없습니다. 공은커녕 죽으리라는 것도 모르고 늙어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고, 죽지 않겠다고 기를 쓰는 노인들이 적지 않으니, 그 딱한 분들을 위해 그런 가르침 백번 되풀이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게다가 살아온 삶이 텅 비어가는 것을 못 견디게 아쉬워하기도 합니다. 비워지는 것이 자연이라 할지라도 텅 빈 공동(空洞)이 주는 늘그막의 처절한 고독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초조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렇게 겁만 낼 일은 아닙니다. 비워져 생길 공허가 두렵다면 이제는 비워도 상관없을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남이 무시해도 속상하지 않고, 다 잃어도 아쉽지 않는 것으로 채우면 됩니다. 사라지지도 않고 가득 쌓여 무게를 지니지 않는 것으로 채우면 그 채움은 실은 있는 듯 없고 없는 듯 있는 것이 됩니다. 그것이 곧 ‘공(空)’이지 않습니까?
노인은 살아온 영욕을 세월 따라 비워야 합니다. 그렇게 되게 되어있습니다. 억지를 쓰지 말아야 합니다. 대신 영욕의 빈자리를 감사와 용서로 채워 넣어야 합니다. 저절로 그렇게 되어야 노인입니다. 그러므로 노인은 있는 것, 이룬 것을 과시하며 자기를 증언해서는 아니 됩니다. 그저 텅 빈 말없는 웃음으로, 그런 따듯한 얼굴로, 나를 증언해야 합니다. 세월 따라 채워진 것 비우면 그 빈자리에 그 웃음이 채워지게 마련입니다.
공은 허무도 아니고 체념도 아닙니다. 일상 속에 담긴 그윽한 ‘자유’입니다. 살아온 삶의 밝음과 어두움을 모두 비우고 감사와 용서로 되채우는 ‘노인의 자유’입니다. 이 자유로운 날개 짓을 하면서 빙그레 웃으며 세상을 떠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것이 공의 실현, 공의 완성이 아닐는지요. 그것이 삶의 종국이어야 하지 않을는지요.
해가 저물고 새해가 오는데 이 기회에 내 살아온 삶을 비우고 새것으로 채워 자유로워지는 연습 좀 하면 어떨지요. 해가 아니라 곧 우리 삶이 저물 거니까요.
(한림대 과학원 교수, 종교학)
-월간 <공무원연금>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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