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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럴드 포드 서거와 “도덕적 리더십”의 의미
진덕규   |  2007-01-10 07:57:06  |  조회 3441 인쇄하기
“사랑하는 남편이자 아버지이고, 할아버지이며, 증조할아버지인 제럴드 포드(Gerald R. Ford)가 향년 93세로 타계했다는 슬픈 소식을 가족과 함께 전합니다. 그 분의 인생은 하나님, 가족 그리고 나라 사랑으로 가득 했습니다.” 이 인용문은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제럴드 포드의 부인인 베티 포드(Betty Ford) 여사가 지난 12월 26일에 발표한 성명서 중의 한 구절이다.
그는 현존했던 미국의 전직 대통령 중 가장 많은 지지를 받았던 인물이었으며, 그에 대한 존경은 당적이 다른 사람들에게서도 하나의 양식처럼 이루어지고 있었다. 심지어는 대통령 선거에서 그와 맞서 승리를 거두었던 지미 커터조차도 “제럴드 포드는 미국적인 정신을 가진 가장 미국적인 지도자”였다고 칭찬할 정도이다. 흔히 전직 대통령은 그 후임자에 의해 공박의 대상이 되게 마련이지만 포드만은 예외였다. 그 만큼 그는 미국의 현대 정치사에서 중요한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선출되지 않았던 대통령

포드의 정치 이력은 별나다. 미시간 주 출신으로 24년간 하원 의원을 지낸 그는 “한 번 더 하원 의원을 한 다음에는 은퇴해서 고향으로 내려가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여생을 보내고 싶다”라고 술회했다. 그러나 당시 닉슨 행정부의 부통령인 스피로 에그뉴(Spiro Agnew)가 사임하자 그는 에그뉴의 뒤를 이어받아 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추문, Watergate Scandal]으로 물러나게 되자 이번에는 대통령직을 승계하게 되었다. 그는 미국 역사상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최초의 부통령이었고,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그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던 1974-1977년은 미국으로서는 심대한 위기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밖으로는 베트남 전쟁에서의 패배로 국민의 사기가 극도로 저하되었고, 안으로는 [워터게이트 추문]으로 국론이 극심하게 분열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경제마저 불경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에 미국 사회는 전반적으로 “침몰하는 거대한 함대”와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의 분열을 봉합시켰고, 추락된 국민의 사기를 진작시켜 새롭게 일어설 수 있게 했다.

이름난 미식 축구 선수

제럴드 포드는 네브라스카에서 출생했는데 양모 업자였던 그의 생부는 성격이 난폭해서 아내를 자주 구타하곤 했다. 결국 태어난 지 16일만에 부모가 이혼하자 그는 어머니를 따라 미시간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의 어머니는 그곳에서 페인트 업자를 만나 재혼했으며, 아들을 재혼한 남편의 성을 따라 제럴드 포드 2세라고 불렀다.
양부는 어린 포드에게 대단히 자상했다. 그는 양부에 대한 기억을 이렇게 밝혀 놓았다. “나의 양부는 말 그대로 신사였으며, 어머니는 너무나 완벽한 분이셨다. 이 두 분에 대해서는 그 어떤 찬사로도 적합한 말을 찾을 수가 없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 지방에서 이름난 미식 축구 선수였던 제럴드 포드는 미시간 대학에 진학하여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했지만 여전히 미식 축구 선수로 활약하곤 했다.
그 후 예일대학교 법과대학원에 진학한 그는 그곳 미식 축구팀의 코치 멤버로 일했으며, 채플 힐(Chapel Hill)의 노스 캐롤라이나 대학교 법과에서 청강하기도 했다. 2차 대전 때에는 해군 장교로 참전하여 무공을 세웠으나 제대 후에는 미시간으로 돌아와 정계에 투신했다. 그리고 35세 되던 1948년에는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는데, 그 후 계속 재선되면서 마침내 하원의 공화당 원내 총무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도덕적 리더십"

워싱턴 포스트는 제럴드 포드의 사망 소식을 전하면서 그에 대해 이렇게 묘사해 놓았다. “감히 자신이 대통령이 되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지만 제럴드 포드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으며,---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실로 '도덕적 리더십(Moral Leadership)'의 본보기라 해도 좋을 만한 인물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닉슨의 워터게이트 추문을 잠재워야 했으며, 베트남 전쟁의 뒷수습도 도맡아야 했고, 내려앉은 경제도 진작시켜야 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일들을 어떤 “꼼수” 같은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았으며, 언제나 정정 당당한 승부와 솔직한 언행으로 국민들을 설득시키려 했다. 그는 닉슨에 대해 워터게이트 추문에 따르는 그 모든 조사를 종결시키는 사면령을 내렸는데, 이 일로 인해 훗날 대통령 선거에서 카터에게 패배하기는 했지만 그로서는 그렇게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빠른 시일 내에 국론을 결집시키고 화해하게 하는 것, 그것이 그가 바랐던 "희망의 정치"였다. 그는 사이공에서의 미군의 “치욕적 참패”를 시인하고, 미국 대사관 철수를 감행하기도 했다. 그가 잘 쓰던 “천성적으로 반대론자가 아니라면 그렇게 반대할 이유가 없다!”라는 말은 의회주의자였던 포드의 진면목을 깨닫게 해 준다. “꼼수”가 정치 행위처럼 여겨지는 나라에서 그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만큼 “희망의 정치”가 사라졌음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듭 그의 영면을 기원하게 된다. 진덕규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특임교수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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