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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새해가 되었다 해도 새로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빈곤, 갈등, 안보, 환경, 교역 등에서 획기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하면서 아프리카에서도 경제 성장률이 확대되고 있지만 극심한 빈곤을 이겨 낼 정도는 아니다. 이라크를 비롯해서 중동의 전운도 쉽게 끝날 것 같지 않으며, 아프리카에서는 수단 남부 다르푸르(Darfur)에서 발생한 비극이 점점 더 넓은 지역으로 확대되어가고 있다. 또 좌파 정권의 바람이 남아메리카를 강타했지만 그것은 단지 사람들의 분노감만 표출시킬 뿐이지 빈곤이나 불평등 같은 문제는 해결해 줄 수 없다.
돌아오는 6월, 독일의 메르켈 수상이 주도할 G8 정상회의에 대해서도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 도하 라운드(Doha trade round)에 이어 새로운 시도가 이루어진다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고든 브라운(Gordon Brown)이 새 수상으로 취임할 예정인데 그도 영국 경제의 오랜 침체를 극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상하 양원을 모두 민주당에 내 준 미국의 부시 역시 2008년 대선 때까지는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지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보면 2007년의 세계에 대해 어떤 기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것 같다.
풀지 못한 "역사의 매듭"
동아시아의 2007년도 별로 다를 것은 없다. 어느 면에서는 한층 더 심각한 상황으로 내몰리게 될런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는 공존과 연대의 세계적인 흐름에서 빗겨나 있으며, 아직도 지난 날의 “역사의 매듭”을 풀지 못한 채 그 역사의 바람에 휘둘리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에서는 19세기 말과 20세기가 침략과 투쟁의 기간이었다. 당시 프러시아를 모델로 하여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무력으로 이웃 나라들을 침공했다. 그 바람에 1900년대에는 애꿎게 수많은 아시아 국가들이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히고 말았다. 그러나 묘하게도 2차 대전 이후 냉전 체제가 이룩된 사이에 전범 국가였던 일본은 발 빠르게 경제 회복에 성공하게 되었다. 따라서 일본은 스스로 “역사의 매듭”을 풀 수 없게 되고 말았다.
일본에서는 2차 대전 전범들 중 대다수가 복권되었고, 그들에 의해 통치가 지속되었기 때문에 동아시아 침탈에 대한 자기 반성도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아니 오히려 2차 대전의 전범국이자 패전국인 일본이 큰 소리치는 상황으로 역전되어 버렸다.
새로운 문명의 충돌
지금 동아시아는 중국의 급부상으로 인해 새로운 문명의 충돌을 예비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국은 사회주의 후진국에 지나지 않았다. 게다가 마오쩌둥의 문화혁명은 사회주의의 변혁 열정에다 젊은이들의 광기가 접합되어 끝내 가장 반인간적인 상황을 조성시키고 말았다. 그런 중국이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제적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이야기 하면서 경제 침체에 놓여 있을 때 중국은 매년 9-10%대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했으며, 이제는 개인당 GNI가 $1,800에 육박하고 있다. 13억 인구를 생각한다면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경제 영역으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베이징은 더 이상 워싱턴과 대립적이지 않으며, 갈등 관계에 놓여 있지도 않다. 중국은 이미 WTO에도 가입했으며, 2008년에는 베이징에서 올림픽이 열리게 되어 있다.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거대한 중국 문명이 급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에 맞서는 일본 문명은 비록 워싱턴과 연계된 해양 문명이기는 해도 100년 전의 그때와 같지는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거대한 중국 문명이 해양 문명과의 대결을 통해 동아시아의 헤게모니를 장악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북아 균형자"의 앞날
지난 날 한국의 선택은 자명했다. 모스크바-베이징-평양을 잇는 대륙 세력에 맞서 워싱턴-도쿄-서울의 해양 세력이 필연적인 대립 전선으로 굳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전선에도 균열이 생겼으며, 대륙 세력의 연계도 느슨해졌다. 게다가 해양 세력도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느슨해진 전선이 한국에게는 오히려 어려운 선택 과제를 안겨 주고 있다.
기분 같아서는 민족주의에 입각해서 서울과 평양이 손을 잡고 베이징과 도쿄를 등거리에 두었으면 좋겠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도쿄와 워싱턴도 제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 그런 생각의 한 흐름이 “동북아 균형자”로 나타났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중국은 지금 한국에 대해 “동북아 공정”을 내걸었고, 평양은 핵무기를 개발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한국이 바라던 “동북아 균형자”도 이제는 희미한 꿈처럼 퇴색되고 말았다. 그것도 상황보다는 당위만을 생각하는 과대망상처럼 말이다.
2007년의 동아시아가 새로운 문명 충돌로 치달린다면 한국이 설 땅은 어디쯤 되어야 할까? 만일 “동북아 균형자”마저 물거품이 된다면 그것 때문에 지난 4년간 지불했던 대가가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한때의 당위론이나 학습 논리치고서는 굉장히 값비싼 경험을 한 셈이니까. 그런데 우리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는 것은, 아직도 그것의 비현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논리적 맹목성이 갖는 한계이다.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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