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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헌법 학자인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원 포인트’개헌론인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의 법적 개념은 오류가 있으며 잘못된 것이라는 이의를 제기했다.
허 교수는 20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 청와대 구상대로 4년 연임제 개헌이 된다면 중임이 금지되지 않기 때문에 (개정된 헌법에 의해 연임한) 현직 대통령이 추후에 또 출마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서 “청와대의 법 해석은 오류라는 게 헌법학자들의 일반적 견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중임제는 연임제의 상위개념이기 때문에 청와대가 개헌을 제안하며 사용한 연임개념은 엄격히 말해 중임으로 바뀌어야 한다”며 이같이 주장했다.
앞서 노 대통령은 지난 9일 대국민담화에서 “현행의 대통령 5년 단임제를 임기 4년으로 1회에 한해 연임할 수 있게 개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청와대 측은 연임제를 제안한 이유와 관련, “연임은 대통령이 1회에 한해 연이어 재임할수 있도록 하는 것이나 중임은 (개정된 헌법에 따른) 현직 대통령의 차차기 대선 출마가능성까지 열어두는 것이기 때문에 맞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허 교수는 “연임은 이어서 2번, 중임은 이어서 하건 간격을 두어서 하건 2번을 허용하는 것인데 청와대가 지금처럼 연임만 얘기하면, 이어서 2번 대통령을 한 사람이 10년 후 또 출마하겠다고 할 경우 중임을 금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면서 “연임제는 위험한 개념”이라고 말했다.<이미숙기자>
"개헌 목적은 사회통합… 지금은 부적절”
허영(70)교수는 헌법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온 헌법학의 원로다. 그가 쓴 ‘한국헌법론’은 헌법 연구자들뿐 아니라 고시준비생들에게도 인기가 높은 명저로 꼽힌다. 독일 뮌헨대에서 헌법학 박사, 바이로이트대에서 법학교수 자격증을 받은 뒤 지난 30여년간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한국의 대표적 헌법학자로 활동해 왔다. 박정희시대엔 ‘불온’한 글을 썼다는 이유로 ‘남산(중앙정보부)’에 끌려가는 수난을 당했고, 엄혹한 전두환시대엔 지식인의 소명의식에 따라 사회발언을 했던 그이지만 87년 민주화 이후엔 강단에서 헌법을 가르치고 연구하는 일에 충실해왔다. 그런 그가 개헌문제가 이슈로 제기된 요즘 ‘노무현식 개헌반대론’의 선봉에 서서 발언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리츠 칼튼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개헌론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지난 9일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 제안을 했을 때, 헌법전문가로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첫 소감은 이분이 참으로 엉뚱한 짓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헌법이란 정치적 공동체를 하나로 통합시키기 위한 근본규범이며 통합규범입니다. 개헌은 헌법 규범과 현실사이의 격차가 너무 커졌을 때, 헌법을 고치지 않고는 도저히 사회통합이 안되고 불안해진다고 할 때 헌법을 살아있는 규범으로 만들기 위해 고치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상황은 그런 갭이 큰 상황이 아닙니다. 헌법개정을 통해 오히려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헌법개정의 취지와 너무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금융실명제하듯이 갑자기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노 대통령이 불쑥 개헌을 제안한 이유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여러 상황에서 코너에 몰리니까 다목적인 정치적 카드로 개헌을 던졌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헌법은 다른것과 달라 정치규범이기 때문에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개헌제안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헌법 개정의 목적은 분명하게 사회통합을 위한 것이어야 하는데 지금은 오히려 개헌제안으로 인해 그 반대의 상황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은 오기로 권한행사를 위한 권한행사를 하겠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이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성립될 수 없는 일입니다.”
―헌법학자로서 87년 헌법의 공과를 얘기한다면.
“현행 87년 헌법은 헌정사상 9번째 개정된 것인데 여야합의에 의한 개헌은 이게 최초입니다. 또한 독재자 전두환이 호헌이라는 이름으로 막으려했던 대통령 직선제를 국민의 힘으로 도입했다는 점은 세계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그당시 정치상황을 대표했던 3김씨가 각자 대통령의 꿈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분위기를 제대로 헌법에 반영하지 못한게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당시 사회분위기를 여야합의로 몰아갔으면 좀더 나은 헌법, 지금처럼 고치자는 말이 안나올 수 있도록 충분히 좋은 헌법을 만들 수 있었는데 3김씨의 정치적 아집과 사욕이 그것을 막았습니다. 5년 단임제와 더불어 대통령선거방법으로 택한 상대다수대표제도는 결선투표없이 한표라도 많은 후보가 대통령이 되게 하는 제도인데 결함이 많습니다.”
―3김씨 때문에 한표라도 많이 받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상대다수대표제도가 굳어진 것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87년 개헌당시 나를 비롯한 여러 헌법학자들이 YS와 DJ에게 절대다수대표제 도입을 강하게 제안했는데 그 두사람 똑같이 “걱정할 게 없네. 그 제도 없이도 나는 60%이상 얻게 되어 있어”라며 거부했습니다. 이 제도를 87년 헌법에 도입했어야 하는데 3김씨의 망상때문에 안된게 유감입니다. 우리가 그때 절대다수대표선거제도를 도입했으면 우리 헌정사에 노태우라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을 겁니다. 노태우 5년은 잃어버린 시대인데 . 상대다수대표선거제 때문에 노태우 시대가 열린 겁니다. 아주 후진국들도 우리처럼 하지는 않는데 3김씨의 과대망상 때문에 1표만 많아도 당선되는 제도로 만든게 잘못입니다.우리 현대사에서 노태우 5년은 잃어버린 시대입니다.”
―87년 헌법은 시쳇말로 ‘1노3김’의 야합결과라는 비판이 맞는 측면이 있는거군요.
“현실적으로 그렇게 됐습니다. 그때 결선투표제도를 많이 언급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5년단임제에 대해선 국민들이 장기집권에 시달리다 보니까 한번씩 하도록 해야겠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이후 직선대통령 4명이 됐고 국민들 수준도 높아졌으니 이제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금과 같은 제도에서 청와대 제안처럼 4년 연임제로만 바꾼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럼 노 대통령이 제안한 원포인트 개헌은 말이 안되는 거네요.
“당연히 그렇습니다. 4년중임제와 절대다수대표선거제를 연계시키지 않는 것은 완전히 난센스입니다. 저는 4년중임제만 강조한 것이 아니라 절대다수대표선거제도도 같이 얘기했습니다. 개헌이란 정치적 게임도, 역사적 명분을 남기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사회통합을 위한 게 개헌입니다. 사회분열을 조장하는 개헌은 대통령으로서 할일이 아닙니다.”
―차기정부에서 바람직한 헌법개정이 이뤄지려면 어떤 프로세스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고 보시는지요?
“헌법개정이 필요하다는 공론이 형성됐을 때, 예컨대 1차에 한해 중임하도록 하고 절대다수대표선거제와 링크시켜 국민이 대통령을 뽑은 사람으로서 진정한 심판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고쳐야한다는 여론이 학계와 정치권에서 보편화할 때, 정치권이 주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시점이 아닙니다. 그런 컨센서스가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청와대는 개헌이 20년만에 돌아온 호기라고 주장하는데.
“대통령,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시켜야 한다는 얘긴데 여기엔 그렇게하면 당연히 여대야소가 된다는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일치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된다는 법은 없으며 설령 여대야소가 된다 해도 위험한 정치현상이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이 국회를 지배하게 되고, 여당이 대통령의 거수기 노릇만 하고 대통령이 헌법상 부여받은 권한이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은채 완전히 독재적으로 행사하게 되면 이것은 학문적으로는 공화적 군주제, 제왕적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다분합니다.”
―정치안정을 위해선 여대야소가 필요하다는 게 노 대통령의 주장인데.
“리더가 국정을 제대로 운영하면 여소야대가 되도 국정은 안정됩니다. 야당을 포용하고 정책을 추진하면 되는데 대통령 자신만 옳다고 독선하면 아무리 여대야소가 되도 안됩니다. 그것은 리더십 문제이지 제도 문제가 아닙니다. 제도를 탓하지 말고 현행 제도를 잘 운영해 나가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나쁜 개헌보다는 현행법 유지가 낫다는 말씀이죠.
“ 그럼요”
―변호사 출신인 노 대통령은 역대대통령중 탄핵, 헌법재판소장 지명철회, 개헌제안에 이르기까지 법과 관련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요. 그 원인이 어디있다고 보시는지요.
“선무당이 사람잡는 격이죠. 법도 제대로 해야하는데 노 대통령은 독학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뿐 법전반에 대해 이해가 깊지 않다고 봅니다. 노 대통령의 행태를 보면 법의 본질이나 통치의 본질, 국가의 본질을 제대로 알고있는 것 같지 않습니다. 사면권을 남용한다든가 인사를 제멋대로 한다든가, 헌법에 근거도 없는 각종 위원회를 만들어 위원회 정치를 하는 것 등은 정말 문제지요. 헌법재판소장 지명논란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효숙씨가 이미 재판관으로 있는데 임기 6년 헌재소장으로 만들기 위해 옷을 벗기고 재임명하려한 것은 외국 공법학자들에게 웃음거리가 될 대망신입니다. 노 대통령이 그간 해온 양태를 보면 정말 선무당인 것 같습니다.”
인터뷰=이미숙 정치부차장
<시대와 비전>
“대통령 중임제는 절대다수대표제와 반드시 연계해야”
절반이하 지지로 대통령 당선땐 국민협조 부족, 국정혼란 불가피
허영 명지대 초빙교수는 노무현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밀어붙이기식 개헌제안에 반대하면서, “개헌은 차기정부에서 사회적 공론화를 통해 진행되야하며 이 경우 대통령중임제 개헌과 함께 절대다수대표선거제도가 도입되야 한다”고 제안했다.
허 교수는 대통령중임제와 함께 절대다수대표선거제를 도입해야하는 이유로 “1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가 당선되는 현행 상대다수대표선거제가 지속될 경우 36%의 지지를 받아 당선된 대통령이 재선 때 32%를 지지로 당선됐을 경우 그 대통령이 신임을 받은 것이냐 불신임을 당한 것이냐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면서 “국민이 심판권을 갖기 위해 대통령중임제는 절대다수대표선거제와 반드시 연계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 교수는 특히 대통령제국가에서 절대다수대표 선거제를 택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막강한 파워를 갖는데 그 파워에 걸맞은 민주적 정당성이 확보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절반이하의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나머지 과반수 국민은 자신이 찍지 않은 대통령에게 협조하지 않을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정혼란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87년 헌법에 따른 4번의 대통령선거에 당선자의 득표율은 ▲노태우 36.6% ▲김영삼 42.0% ▲김대중 40.3% ▲노무현 48.9%로 모두 과반수 이하였다.
현재 대통령 직선제를 실시하는 국가들 가운데 완전 상대다수대표선거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멕시코뿐이다. 6년단임제 국가인 멕시코는 1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는 폐단을 줄이기 위해 결선투표제 도입이 검토중이다. 우리나라보다 정치적 후진국인 남미와 아프리카 국가들도 대부분 절대다수대표선거제도를 택하고 있다. 1차 대선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안나오면 1, 2위 득점자가 결선투표를 통해 과반수 득표자가 대통령이 되도록 하는 제도를 운용하고있다. 한편 남미의 빈국 에콰도르의 경우, 절대다수대표선거제와 상대다수대표선거제를 절충한 제한적 상대다수대표제를 실시하고 있다. 1차선거에서 과반수 득표를 얻은 후보가 있으면 대통령에 당선되지만, 없을 경우 한 후보가 적어도 40%를 득표하고 차점자와 10%이상 벌어지면 대통령에 당선시킨다.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약력
▲1936년 충남 부여 생 ▲경희대 법학과 졸업 (1959) ▲독일 뮌헨대 법학과 석사 (1968), 헌법학 박사 (1971) ▲독일 잘브뤼켄 조교수 (1971~72)▲경희대 법학과 교수(1972~75, 80~82) ▲바이로이트대 교수자격과정 이수 및 획득 (1976~78) ▲연세대 법학과 교수 (1982~2001) ▲뮌헨대 초빙교수 (2001) ▲ 명지대 법학과 초빙교수(2002~) ▲헌법재판소 자문위원 (1988~) ▲독일 본대명예법학박사(2007) ▲‘헌법이론과 헌법’‘한국헌법론’‘헌법소송법론’등 저서 다수
<문화일보 1월23일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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