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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한번 가 보고 싶었던 대륙 아프리카를 2007년 1월에 다녀왔다. 보름 동안의 여정에서 아직까지 마음에 가장 생생하게 남는 곳은 17Km 에 걸쳐 한없는 물을 뿜어 내리는 그 웅장한 빅토리아 폭포도 아니고, 아프리카의 70%의 부를 지니며 아프리카의 관문 역할을 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미국이라 불리 우는 남아프리카공화국도 아니며, 그 유명한 동물의 왕국인 세렝게티 국립공원도 아니다. 이번 여행 중에 아직까지도 마음속에서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는 곳은 여정 중에 제일 힘들게 가 본 나미비아의 데드플라이(Deadvlei), 죽음의 평원 이다.
나미비아는 1990년에 남아공으로부터 독립된 나라이다. 이번에 방문했던 아프리카 중에 가장 원시적이고 세상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낮다는 나미비아는 빈트훅(Windhoek) 수도를 통해 입국하는 길도 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요하네스버그에서 경비행기를 타고 두 시간쯤 날아가 왈비스베이(Walvis Bay) 공항으로 입국하였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생물이라고는 살 수 없을 것만 같은 빨간 사막의 대지에 붉은 먼지만 풀풀 날리고 있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아차 못 올 곳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기우에 불과하였다는 것은 왈비스베이를 보면서 금방 느낄 수 있었다. 고래만이라는 데서 이름이 붙여졌다는 왈비스베이는 대서양의 수많은 생물들을 잉태하고 있는 자연의 보고이다. 펠리칸 베이라고 불리 울 정도로 많은 펠리칸, 갈매기, 홍학을 비롯하여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조류들을 비롯하여 물개, 돌고래, 몰라몰라(Mola Mola) 물고기, 몇 백 년을 살았다는 거북이 등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은 생물들이 그들만의 최적의 조건에서 아주 건강하게 생존하고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몇 백 년은 되어 보이는 낡은 배는 바다밑바닥에서 모래를 흡입하여 다이아몬드를 채취하고 있었으며 바다 한쪽에 놓여있는 나무로 만든 다리와 같은 난간에는 새들의 오물이 축적되어 비싼 가격으로 화장품 원료로 팔리고 있었다. 왈비스베이의 한 모퉁이에서는 그곳에서 굴이 잘 자랄 수 있는 조건을 가추고 있다는데 착안하여 굴 양식도하고 있어 자연적인 보고에 인간 노력의 흔적이 보이는 보물과 같은 곳이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제일 큰 국립공원은 야생동물의 왕국이라고 불리우는 세렝게티 국립공원이다. 케냐와 탄자니아 두 나라에 걸쳐진 경상북도 크기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는 수 백 만년을 이어온 자연의 섭리에 따라 움직이는 동물의 모습들이 압권이었다. 하지만 마사이 족과 관광객의 사파리투어로 말미암은 인간들의 침입으로 동물들의 수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고 인간의 체취와 손길이 곳곳에서 느껴져 원시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없는 아쉬움이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두 번째로 큰 국립공원은 나미비아의 넉클러프트(Naukluft)국립공원이다. 이곳 넉클러프트 국립공원에는 사소스플라이(Sossusvlei)라는 곳이 있다. 사소스플라이에는 세계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붉은 색의 사구(모래언덕)들이 장엄하게 서있다. 이 사구들의 특징은 대서양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모래가 날아와 사구들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 모래의 무게와 입자가 일정하다는 것이다. 더구나 사소스플라이의 철분들이 모래와 합성되어 산화되는 과정에서 그 모래의 색이 붉게 변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여 신을 벗고 맨발로 그 중의 한 사구를 올라가 보았다. 그 모래의 부드러운 촉감이 발바닥과 손의 감촉으로 느껴질 때 태초의 원시를 경험하는 듯한 황홀한 과정이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빛의 각도에 따라 명암의 대조를 이루며 장엄하게 서 있는 사구들은 생명이 없는 것 같은 모래언덕에 불과하게 보이지만 사실상 그 안에 무한한 생명들이 그들의 방식대로 생을 꾸려가고 있었다. 그 보다도 더 한 매력은 묘하게도 사구 그 자체로써 신비한 생명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사소스플라이 의 한 부분인 데드플라이(죽음의 평원)는 900년 전에 대서양으로 브터 날아온 모래 때문에 그곳에 살던 모든 식물들이 모두 죽어 새까만 나무뼈대만 남아있는 곳이다. National Geography 잡지의 한 장면인 듯한 곳인데, 햇빛이 너무나 강렬하게 내려 쪼이는 섭씨 45도의 더위에 몸에서 수분이 증발해 그대로 미이라가 될 것만 같은 조건을 무릅쓰고 한 시간 정도 걸어서 (실제의 도보 시간은 한 시간이 못 되었을 것도 같은데 느낌으로는 훨씬 더 길게 느껴졌었다) 그곳에 도착하였다.
그곳의 하늘은 이 세상에서 처음 보는 듯 너무나 투명하게 파랬고, 붉은 사구들에 에워싸여 있는 데드플라이에는 900년 전에 죽은 나무들의 까만 나목들만이 듬성듬성 서 있었다. 이 들은 아마도 세월에 따라 점점 사라져 갈 것이다. 하지만 묘하게도 이 죽음에서 강한 생명의 힘이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아마도 생과 죽음은 이렇듯 항상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아프리카 사람들은 나이가 든 노인을 존경한다고 한다. 그들의 삶에 대한 경험을 존중하는 것이다. 죽은 사람들을 살아있는 사자(死者) 즉, living dead라고 아프리칸 들이 부르듯이 이 나무들도 우리의 마음속에서 living dead의 역할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듯 죽은 나무에서 생명의 힘을 얻은 자들은 세상에 나아가 각종의 문명의 이기 속에서 심신이 나약해져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력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나미비아, 생각만 해도 원시적인 생명력이 꿈틀대는 참으로 무한한 생명력을 분출하는 가능성의 대지이다.
- 아주대학교 교육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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