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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더 슐레진저의 서거 : 시대를 증언했던 사람
진덕규   |  2007-03-06 06:12:03  |  조회 3155 인쇄하기
며칠 전 외신은 아더 슐레진저(Arthur Schlesinger)가 서거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퓰리처(Pulitzer)상을 수상했던 역사학자였고, 미국 케네디 행정부의 최측근 참모였던 아더 슐레진저가 지난 수요일(2월 28일) 저녁 맨해튼의 한 식당에서 가족과 식사를 하다 갑자기 심장마비를 일으켜 뉴욕 다운타운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했다. 향년 89세였다.”라는 짧은 기사가 전부였다.

적어도 냉전 시대의 이름난 자유주의 사상가였고 뛰어난 문필가였으며 케네디 행정부의 최고 전략가였다는 사실만은 짚고 넘어가야 할 인물이었지만 실제로 그에게 내려진 평가는 대부분 비판에 머물렀다. 그를 “미국 중심주의의 냉전사상가”라고 비판할 수는 있겠지만 일부에서는 “KKK 단의 후원자”로 지목하기도 했고, 심지어는 “자신의 생각과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자비하게 공격했던 사악한 역사가”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케네디 가문과의 연계

그가 케네디 가문의 사람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보다는 오히려 한 시대의 유명한 역사가라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할 수 있 다. 그 만큼 그는 미국의 역사에 관한 한 뛰어난 저술가였다. 그가 집필한 책은 모두 20권이 넘는데 그 중에서도 두 번씩이나 퓰리처상을 안겨 준 [케네디 집권 1000일]과 [잭슨 대통령 시대] 등은 아직도 많은 독자를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케네디 가문과 한 통속”이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지나치게 케네디 가문을 미화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케네디 대통령의 문란한 사생활에 대해서도 눈을 감아 주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가 보여준 미국 자유주의의 지적 전통만은 높이 살 만하다. 냉전체제가 극단적인 사상체계로 흘러갔던 그 시절에도 그는 자유주의 사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제왕적 대통령]에서는 선거가 만능이 아니며 공화주의도 얼마든지 사악한 지도자를 몰고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역사 속에서 입증했다. 그는 제도나 과정이 문제가 아니라 본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다.

역사학자의 아들

어느 평론가는 그를 가리켜 “태어날 때부터 역사학자”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1917년 10월 15일에 오하이오 주 콜럼버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이름난 미국 사회사 학자였다. 그는 후일 그가 집필한 책에서 자신은 아버지의 사상을 그대로 전승받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그러한 전승 중에는 “미국 역사는 자유주의와 보수주의 사이의 순환 관계를 보여준다”는 명제도 들어 있다.

그의 외가 역시 이름난 역사학자 집안인 벤크로프트(Bancroft) 가문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아이오와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그리고 아버지가 하버드 대학으로 옮겨가자 그도 그곳으로 갔으며, 뉴햄프셔의 필립스 엑세터 아카데미(Phillips Exeter Academy)를 다녔다. 그 후 하버드에 입학했고, 1938년에는 최우수 논문상인 “수마 쿰 라우데(Suma Cum Laude)”을 받았다.

또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1년 동안 연구한 후에는 귀국하여 하버드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2차 대전 당시에는시력 때문에 현역으로 복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육군성 홍보처에서 일을 해야 했다. 그 뒤에는 CIA의 전신인 전략정보국(OSS) 소속으로 워싱턴, 런던, 파리 등지에서 활동했으며, 종전 후에는 한 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1946년에 하버드 대학교의 부교수로 취임하게 되었다.

자유주의자의 삶

슐레진저에게는 교수직이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에는 현기증이 날 때가 많았다. 가르치는 것은 나에게 고역이었다. 철저한 준비는 물론이고 수강생들이 보여줄 모습이 나를 압도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역사학 강의는 하버드 최대의 명강의라는 평을 얻었다.

비록 케네디 대통령의 최측근 참모로 일했다 해도 분명한 것은 그는 미국의 자유주의자 사상가였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에 대한 그의 대표적인 저술로는 [바이탈 센터, The Vital Center]를 들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의 사상을 그대로 받아들여 “실용적이고 개혁지향적인 자유주의야말로 희망의 정치를 가져오는 최대의 이념적 기반”임을 강조하였다.

그가 남겨 놓은 “문제가 항상 우리를 괴롭힌다. 그것은 풀 수 없는 것일 수도 있다.--막연하게 풀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보다는 그것을 풀려는 노력이야말로 가치 있는 선택이며 과정이다.”라는 말은 그가 믿는 자유주의 사상의 본질을 의미한다. 이 말을 거듭 되씹어 보면서 그의 영면을 기원한다. - srips.org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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